본문으로 바로가기

이번에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이틀간 장로교회 시스템에 대해 강의했다. 아래는 그 강의 영상인데, 이 교회에서 했던 것은 아니고, 내가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 했던 강의 영상을 대신 링크한다.  : youtu.be/VkDY5j-V4tY 


강의 후에는 질문답변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원래 섭외할 때부터 이야기가 됐다.)

혹시 참고가 될 분이 계시려나 하고, 질문답변 녹취 요약본을 올려본다. 현장에서 즉답하다보니 답변이 좀 어설픈 면도 있으나, 널리 용서하며 봐주시기를... 복잡하게 말로 주고받은 것을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바꾸면서 적절히 설명을 가필했음을 밝힌다.

 

Q. 강의 잘 들었는데, 사실 현실과 너무 다른 듯하다. 한국 교회는 카리스마가 쎈(?) 목회자의 설교가 개혁교회의 전부인 것처럼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A. 그간 우리는 유교적, 전통적 관습에 따라 목사를 이해하여 왔다. 뭐 거기까지야 특별히 나쁘다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카리스마 만으로 교회를 끌고가는 것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민하지 못하고 그 정도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은 우리의 한계였다고 본다. 이틀간 강의했듯이 결국 극복의 길은 제도의 개혁이다. 물론 제도가 사람을 다 고칠 수는 없다. 교회를 주님 뜻대로 잘 바꾸자는 것, 즉 교회가 개혁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바뀌는 것인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기대'일 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안 바뀌면 어쩔 건가! 그래서, '사람이 좀 더 쉽게 바뀌게 돕는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종교개혁자들도 당시 그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종교개혁의 초기에, 선각자들이 정말 문자 그대로 생명을 바치면서 목숨을 걸고 교회를 개혁해왔고, 그들의 인생을 바쳤다. 그때 그들의 카리스마는 얼마나 대단했겠나. 루터 앞에서 칼뱅 앞에서 누가 뭐라 토달 수 있었을까. 그분들의 설교 앞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겠나. 그런 경험을 다 해봤던 분들이, 이래선 안 되겠다 해서 개혁한 제도가 그 이후의 교회정치 개혁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의 핵심은 결국 의사 결정권에 있어서 회의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거기 속한 사람은 바뀌어도, 회의체가 잘 작동해야 한다. 그 교회를 누가 끌어가느냐 어떤 지도자가 거기 있느냐가 아니라,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이냐가 더 중요하다. 당회가 있다면, 그 당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누구였느냐가 키포인트가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원리, 문제해결 능력과 기준 등이 세워지고, 그 당회의 항상성이 유지되는 방식으로의 개혁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Q. 말씀 대언 사역을 목사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신약의 증거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목사 중에는 말씀 연구를 소홀히 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가?

A. 말씀하신 것이 맞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서로 가르치고 심지어 상호 권면, 상호 권징까지 가능한 것이 신약의 교회이다. 다만, 직분론에서 목사가 설교한다는 의미는, 목사'만' 할 '수' 있다, 라는 권리나 권한의 측면보다는, 질서와 전문성의 측면이다. 예배 시간에 아무나 나서서 떠들게 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또한 50분 설교를 해야 한다 치면,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간다. 이 문제를 갈등론으로 풀지 말고, 무엇이 성도에게 더 유익한지를 놓고 판단해보시길 권한다.

 

Q. 직분 선출에 대해서 잘 들었다. 그러면 면직에 대해서는 어떤 수단이 있는가?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목사도 여전히 강단에서 내려오지 않고, 노회는 손을 놓고 있는 듯한데,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직분론은 이에 대해 뭐라고 답하는가?

 

A. 그간 우리가 놓친 직분에 대한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그 직분이 수행할 '기능'이다. 강의를 통해 이것을 새롭게 강조하려다보니 중요한 것을 하나 놓칠 수 있겠다.

기능이란 바꿔 말하면 은사인데,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결국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것인데, 그래서 한 직분이 세워지는 것을, 저 사람을 우리가 필요해서 써먹기 위해 뽑았다, 라고 생각하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이것도 기억하셔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면직이라 하면.. 우리가 보통 회사에서 사람을 뽑아다 쓰거나 선출직 공무원을 세우는 것처럼, 일을 시키고 일을 못하면 너 내려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교회는 그런 경우에 '치리'를 한다. 권징을 수단으로. 목적은 그 사람의 회복에 있다. 그래서 교회정치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도 바로 권징에 관한 논쟁과 직접 연결된다.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의 열쇠를,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치리회'가 소유하게 되는데, 그 치리회가 무엇이며 어떤 권한을 갖느냐 문제로 총회에서 오랜 토론이 진행되었다.

직분자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교회는 그에 대한 권징을 통해 그 잘못을 지적하고 때로는 벌을 주고 때로는 직무를 중단 혹은 복권시키며 혹은 영구히 면직을 시킴으로서 그 사람의 영혼을 회복시킨다. 그리스도의 관심은 신자의 영혼에 있다.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 개혁의 최종 과제일 것이다.

 

Q. 강의 만으로는 노회의 성경적 근거들이 납득되지 않는다. 좀 더 알려달라.

A. 강의 때 잠깐 말씀드렸던, 에베소에서 마술사들의 책 '은 오만 냥'을 불태우는 장면은 흥미 요소로 하나만 언급한 것이고, 사실 Grand debate 라고 불리는 오랜 논쟁이 총회 때 있었다. 주로 에베소교회와 예루살렘교회의 사례들을 가지고 주해작업을 했는데, 일단 한 교회에 설교자가 여럿이고, 실제로 모임장소도 여럿이었다는 증거들이 본문 속에 분명히 나타난다. 누구네 집, 누구네 집, 이렇게... 그리고 항상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여기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런 식의 길고 긴 토론을 거쳐 결국 독립파의 논증은 실패하고, 장로파(노회파)의 주장이 총회 내에서 받아들여진다.

 

Q. 크롬웰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야박한 것은 아닌가?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내용을 파기한 무효법은 왕정복고 뒤 찰스2세 때의 일이 아닌가.

 

A. 역사적 인물의 평가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 크롬웰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로 영국사의 "사관"이 달라질 정도로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개혁교회들의 부정적인 면을 오래, 그리고 다양하게 경험한 입장에서, 크롬웰이 통치하던 청교도 이상국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혁명 전쟁 당시의 부하 장수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영국의 각 지역을 분할해서 통치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그들이 맡은 지역에 속한 교회를 다스리는 말하자면 최고 권징 권한을 부여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정신과 아주 거리가 멀다. 주교제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종교개혁은 한 개인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는 것을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크롬웰 10년 통치 기간에 국가적 합의로 이뤄낸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결과물이 시행되지 못하고 잊혀진 것도 실제 사실이다. 총회 10년 쯤 뒤에 런던의 젊은 목사들 중심으로 총회의 결과물을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기도 했다. 이는 그 10년 통치 기간에 대한 반성이라 볼 수 있는데, 우리는 370년이 지난 지금 반성하고 있지만, 이미 그 당시에도 현 세태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단 뜻이다. 심지어 총회가 끝나고 고작 2년 정도가 흘렀을 때 누군가 쓴 글에, '오호라 이제 장로교회는 올드패션이 되었구나' 라는 투의 탄식이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꽉 막힌 방식의 청교도적 국정 운영과 통치가 국민들로부터 종교개혁 그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만든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오이다. 그 시절이 너무 안타까워서, 저는 아무래도 크롬웰에 대해 박한 평가를 줄 수밖에 없었다.

 

Q.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면 강의 내용과 다른 점들이 있다. 강의 중에도 나온 그림 중에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그린 장면 속에 크롬웰과 존 오웬이 등장한다. 저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미국 대표단도 참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럼 이분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

 

A. 우선 그 그림은 후대의 화가가 나름대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표현하려고 그린 상상화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 자리에 없던 사람도 의도를 가지고 그려넣었다. 가운데 노란 옷을 입고 가장 크게 그려진 인물이 크롬웰이고, 존 오웬은 우측상단에 작게 그려진 두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크롬웰은 의회군(철기군)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래서 전쟁터에 있지, 이곳에 있을 수 없다. 런던에 있었다 하더라도 신학자 총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존 오웬은 나이가 어려서 참석을 못했다. 당시 참석자 가운데 최연소자는 30살 정도 된 스코틀랜드 총대 조지 길레스피이다. 말씀하신 미국측 대표단은 초청을 받았으나 실제로 참석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 중에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대부분 남아있는 기록을 어떻게 정확히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총회에 누가 있었는가 하는 것은 참석자 명단을 보고 알아야 하는데, 기록 중에는 초청자 명단이 있고, 실제 참석자 명단이 있다. 이건 서로 다른 거니까 구분해줘야 된다. 그러나 이를 우리는 그냥, 아,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있었던 사람들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여버린다. 한 예로, 우린 그동안 웨스트민스터 총회 참석자 숫자를 121명의 신학자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실제로 찰스1세의 눈치를 보며 참석하지 않은 30여 명이 포함되어 있다. 어떤 곳에는 151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상하원 의원 30명의 숫자가 포함된 것이다. 이들은 간혹 참관을 했을 뿐 총회 기간 내내 자리를 지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최종 참석자 숫자는 평균 70명정도, 가장 많이 모인 날도 100명을 넘지 않았다. 자료가 있더라도 전후 내용을 확인하면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Q. 강의 중 소개된 도표에 시편찬송이 있는데, 제가 알기로 시편 150편을 모두 그 기간에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어떤 곡이었고, 지금까지 혹시 남아있는지, 부연설명 부탁한다.

 

A. 총회에서 시편찬송 150편을 작곡하고 그랬던 건 아니고, 이때는 이미 수많은 시편찬송가가 사적으로 출간되어 이곳 저곳에서 활용되고 있던 때이다. 그런데 마침 총회 기간 중에 프란시스 라우스라는 분(잉글랜드 의원)이 시편찬송가를 편찬했고, 의회에서 총회에 이 찬송가가 적절한지 검토해달라고 문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총회는 50편씩 세 위원회로 나눠서, 찬송가의 가사가 시편 말씀을 제대로 운율화 했는지를 검증한다. 총회는 그 작업을 한 것이고, 잘 된 작품이라고 판단되어, 의회에 이것을 써도 좋겠다는 의견을 낸다. 의회는 이 시편찬송가를 전국의 교회가 사용하도록 결정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중후반부에 이르러서 총회는 의회에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였을 뿐이고, 그 조언을 받아서 의회가 판단하여 법령으로 선포하는 프로세스였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문제 하나가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 교회는 이미 공인된 시편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잉글랜드에서 새롭게 시편찬송가를 만들어서 보급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코틀랜드가 브리튼 섬의 종교개혁을 위하여 잉글랜드와 총회를 함께 했는데, 거기서 찬송가를 하나 공인한 것이다. 그러면 스코틀랜드는 여기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저는 개인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총회 전체 기간 중 가장 감동받았던 지점이 이곳인데, 스코틀랜드는 바로 이 찬송가를 자기들의 찬송가로 쓰기로 결정한다. 이미 잉글랜드보다 훨씬 더 높은 종교개혁을 경험하고 유지하고 있는 스코틀랜드가, 한 목소리로 하나의 찬송을 부르기 위하여, 자기들이 쓰던 찬송가를 버리고 잉글랜드가 만든 찬송가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때 이런 일들이 있었다. 배울 점들이 많았다.

 

Q. 종교개혁을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분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어보인다. 이걸 피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은 뭐가 있겠는가.

 

A. 지혜롭게 하시기 바란다. ㅎㅎㅎ 맞다. 사실 이런 게 큰 고민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강의 중에 "우리가 한 명의 장로교인으로서 성숙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게 바로 이런 의미이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기득권이라 하면 일차 타겟은 목사를 포함한 당회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실 때는 반드시, 내가, 지금, 그 자리에 들어가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란다. 특히 이 말씀은 더 나이가 어린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인데, 실제로 더 잘 해야 되니까 그렇다. 개혁이란 게 더 잘 하자는 것인데 실제로 더 잘 할 능력이 있어야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래서 항상 "대안"을 만들고 제시했다. 기존에 잘못된 제도에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 총회의 교회정치 개혁이었고, 잘못된 예배였던 제사화 되었던 미사와 형식화 되었던 공동기도서를 대체할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 총회의 예배모범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완성된, 완성품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갔을 것 아닌가. 그런 노력을 우리도 충분히 하면서 기득권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기존에 잘못된 것을 지적은 잘 하지만, 대안을 만들거나, 나 자신이 대안이 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 아닌가.

종교개혁 당시 교회의 문제점은 대부분 이미 루터 때 다 언급한다. 루터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종교개혁 전체 기간에 개혁자들이 문제삼으며 고쳐나갔던 주제들을 거의 다 말했다. 이건 루터가 훌륭하다는 말이 아니라, 바꿔 말하면 문제 제기는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싸우며 종교개혁의 200년이 흐르는 것이다. 우리도 함께 그 길을 가야 한다. 실제로 내가 교회를 세우고 바른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열심히 대안을 만드시기 바란다.

 

Q. 예배의 스타일이 그 교회의 취향일 수 있을까. 최근에 우리 교회도 예배 순서에 변화를 주었는데. 특정 예배 순서들이 들어가고 빠지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원리가 있을까.

 

A.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에도 그게 참 고민이었다. 수많은 스타일의 교회가 일치를 위해 노력했던 것이 총회이며, 이미 총회는 세 왕국이 참여하는 국제회의였다. 뿐만 아니라, 이를 주시하는 국제 사회의 눈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각 나라의, 오늘날로 치면 기자들이, 총회의 내용을 수시로 기록하여 자국의 교회에 알리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총회는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을 내야만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개혁의 핵심은 예배가 제사화, 형식화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총회가 만약 새로운 형식(Form)을 짜서 대안으로 제출하면,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취향이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을 거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총회는 이미 그 고민을 하고, Form을 제공하지 "않았다." 대신에 모범(Directory)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세한 사항은 각 교구의 당회에 맡긴다는 결정을 한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오랜 세월을 국가교회로 살아오던 그들이, 이제 더 정확한 폼을 제시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에 담긴 깊은 가치와 의미에 집중하도록 하는 모범을, 무려 370년 전에 제시했다는 사실에서 저는 전율을 느꼈다.

교회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예배 스타일이 다 있다. 교회 정치엔 그런가부다 하는 분들도 예배 문제는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저도 그런 아픔이 많았다. 그래서 총회는 도대체 어떤 폼을 제시했을까 봤더니, 이분들은 놀랍게도, "폼을 제시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대신에, 각 예배 순서마다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이게 성도들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지, 거기에 어떤 태도로 참석해야 하는지, 인도자는 또한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자리에 준비하며 설 것인지를 막 적어둔 것이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든 예배모범의 실체이다. 그분들의 이 놀라운 결정 앞에서, 우리들의 관심사인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싸움들이 참으로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 문서를 꼭 읽어보시기를 강권드린다. (이번에 책이 나왔다!)

첨언하자면, 역사적으로 올바른 예배 방식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이 - 물론 훌륭한 분들이었으나 - 개중에는 집착에 가까운 분들도 계신다. 성찬 방식을 놓고 난투극을 벌인 케이스도 있고... 이런 일들이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주로 어떤 분들이 여기에 민감하냐면, "잘해보려는 분들"이 그렇게 하신다. 뭔가를 더 잘 해보려다가 하는 실수이다. 사람은 항상 뭔가를 엄격하게 하려다보면 경직되곤 하는데, 칼뱅이 잘 지적했던 말이 있다. 엄격한 것이 곧 경건한 것은 아니다. 그런 오해를 평소에 우리가 잘 피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