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불완전하고 잘못된 모습들은 결국 성경적인 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입니다. 어떤 현상 뒤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그 잘못된 모습 ‘뒤에 숨은’ 잘못된 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고, 혹시 오늘날 우리에게도 비슷한 모습은 없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애써 교회사를 배우는 이유입니다.
- 글 :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
지난 호에서 우리는 중세 교회의 핵심 문제가 “사제주의”이고, 그로 인해 신자들이 우민화 되었다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교회에 성경적인 가르침이 약화되었고, 올바른 복음 전파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성경적인 가르침이 중단된 교회, 혹은 복음적인 교리가 사라진 교회를 상상해보세요.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런 흐름은 당연히 여러 가지 폐단을 낳게 되는데요. 앞으로 우리는 연말까지 그 대표적인 폐단 세 가지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금욕주의와 수도원 생활”입니다.
너무나 타락한 세상... 벗어날 수 없을까?
기독교 초기에 신자들은 대부분 로마제국 안에 속하여 살았습니다. 로마의 지배에 속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기들 고유의 문화를 지키려 했지만, 차츰 로마의 문명과 문화에 젖어들었습니다. 그것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하고 발전된 모습이긴 했지만, 동시에 추악하고 문란하기 그지없는 타락한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문화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땅에서 살아야 했던 신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눈을 감고 외면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면, 하루하루가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겠지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런 속된 세상에 대한 언급이 보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악하여 곧 멸망과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고, 끝까지 정결함을 유지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극단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땅은 더러운 것, 그러므로 우리가 있어서는 안 될 곳,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어차피 멸망당할 사탄의 무리,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교제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도시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다보면 서로 엮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혼자 숨어서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삶이 딱히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수도사들이 나름대로 경건한 삶을 살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수도원의 긍정적인 기능이 꽤 많습니다. 성경을 필사한다거나, 순수한 신앙을 보전한다거나...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도 이바지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수도사들은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살다보니 위생적으로 더러운 몰골이 될 수밖에 없었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오래 지내면서 정신이 이상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보다 오히려 동물들과 더 잘 소통하는 수도사들도 생겨났습니다.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열이 올라 몽롱한 정신으로 지내다가, 잘못된 환상을 보고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커져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것’과 ‘신비한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떠나 구별된 삶을 살면 죄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여전히 똑같은 죄인인 것을 보며 절망하여 자살을 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오히려 더욱 방종하고 타락한 생활로 빠져든 수도사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사례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애초에 불필요하고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타락한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정결함을 유지하려는 자세는 좋은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수도사가 실패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애초에 그 근거가 잘못되었다면? 즉, 수도원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원인이 잘못된 성경해석에 있다면 문제가 됩니다. 사실, 사람이 세상을 떠나 혼자(혹은 단체로) 숨어서 고립되어 살면서 정결함을 유지해야겠다는 발상 자체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 이런 생각과 비슷한 개념은 오히려 동방의 이방종교에 더 많습니다. 금욕과 고행, 특별히 구분된 삶을 통해 선을 이루고자 하는 원리 등은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에 훨씬 더 많습니다. 많다 뿐인가요? 그들이 훨씬 더 잘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자세에는 ‘신비주의’라는 관념이 깔려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종교에는 신께 가까이 다가가려 하거나 혹은 신적인 어떤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법칙들을 초월하는 어떤 신기한 일이나 현상, 기적, 경험 등을 자꾸만 추구하는 종교적인 양태가 신비주의입니다. 건전한 신앙은 신비주의를 분명하게 거절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을 오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은 신비주의에 늘 빠져들곤 합니다.
물론, 누구나 그런 세계가 궁금하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호기심보다는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에 더 집중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미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영적인 세계에 대해, 신자의 삶과 미래에 대해, 충분히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과 다른 어떤 새로운 신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란 겁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런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 가운데서 신자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현장은 산속이나 동굴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현장 그곳입니다. 특별히 구원받은 신자는 십계명을 통해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으며, 그것을 공부하고 이해하여 삶에 적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실, 일상이 고난이며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방국가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대로 철저히 살고자 하는 진실한 기독교인이 살기 편한 나라일까요? 우리가 믿는 대로 살 수 있을까요? 믿는 대로 경제활동을 하고, 믿는 대로 교육을 받고, 믿는 대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나라일까요?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핍박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그저 외면하지 않고, 그곳에 발붙이고 살면서, 신자다운 모습으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범입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쉽지 않기에 그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삶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을까요? 놀랍게도 존재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교회만이 고결하다며,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몸은 떨어져 지내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며 지내는 사람들도 사실상 수도사들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상의 삶이 훨씬 더 소중하다
더러운 세상이 싫다며 꼭꼭 숨어버렸던 사람들... 어떻습니까? 숨는 것은 가장 쉽고 편한 길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철저한 금욕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놀라워 보이십니까?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위대해보이십니까? 그런 일은 영적으로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셨다면 이번 기회에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신자답게 사는 삶이 훨씬 소중합니다.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학교에서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매순간을 신앙인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 가장 유명한 수도사의 삶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삶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청소년 매일성경에 6부작으로 연재된 교회사 시리즈 중에서 네 번째 글입니다. 2016년 7-8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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