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악의 바이러스는 1991년도에 내 PC의 30메가 하드디스크와 플로피디스켓 30여장에 감염되었던 "다크어벤저"였다. 어둠의 복수자라니, 이름도 무시무시한 그놈은 내가 사랑하던 수많은 게임들도 싹 망가뜨렸고, 하드를 다시 포멧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쓰던 소설 파일을 날려버렸다. 큰 충격에 빠진 나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치를 떨어서 그날 이후로 백신 프로그램에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0년 뒤에 어른이 되었을 때 마이폴더에서 재직하면서 "백신4대천황"이라는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직업으로 극복한 셈이다. ㅋㅋㅋ
근데 생각해보니 이 다크어벤저의 속성이 지금 코로나19랑 상당히 비슷하다. 새삼 신기해서 적어본다.
1. 일단 당시에 나왔던 유명 바이러스들에 비해 전파력이 엄청났다. 80년대 말,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바이러스들은 귀염둥이에 불과했다. 바이러스에 걸린 파일을 실행하지만 않으면 안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컴 좀 한다는 친구들은 바이러스에 걸린 파일을 확인하면 기념삼아 전리품처럼 특별한 디스켓에 "보관"해놓고, 마치 바이러스를 감금해놓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골탕먹이고 싶은 친구에게 그걸 최신 게임 혹은 공략집 파일인 것처럼 건네주기도 했다. 근데 이 다크어벤저는 디스켓을 넣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기만 해도 감염되곤 했다. 당시 인터넷도 없고 PC통신도 하지 않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 게임 디스크를 서로서로 빌려주고 카피해주던 문화 때문에, 며칠 사이에 온 학교 애들 PC가 죄다 감염되었으니, 엄청난 전파력이었다. (물론 집에 PC가 있는 애들은 10~15%에 불과했지만)
2. 게다가 이놈이 처음엔 무증상이라서, 바이러스에 걸린 줄을 몰라서 문제였다. 파일을 실행해도 일정 횟수가 될 때까지는 이놈이 가만히 잠복해 있다가, 특정 횟수가 되면 화면에 다크 어벤저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파일을 임의로 삭제하거나 디스크의 아무 공간에나 자신을 덮어쓰는 바람에, 멀쩡한 파일(주로 게임)이 깨지거나 심지어 부팅이 안 되는 상태가 되어 우리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무증상 상태에서 자기 PC가 바이러스에 걸린 줄도 모르고 이것 저것 디스켓을 넣고 빌려주고......
3. 끝으로, 변종이 쉽게 일어났다. 당시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은 지금처럼 지능형이 아니라서 바이러스 특유의 코드를 스캔해서 찾는 방식이었고, 따라서 코드가 알려진 것과 1글자만 달라도 못 잡아내곤 했다. 근데 한국에 들어온 다크어벤저가 바로 그 변종부터 들어왔으니... 정말 기념비적인 바이러스였지 않나 싶다.
#추억팔이 #30년전 #컴퓨터바이러스의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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