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22.11.13. 싱가포르 OO교회 종교개혁 기념주일 대담회 녹취록이다.
이 대담회는 전교인 대상으로, 강사와 담임목사 간에 온라인 화상대화를 청중에게 중계하는 방식이었다.
참석자들은 미리 2주간에 걸쳐 아래 강의(유튜브 재생)를 숙지하고 참석했다.
"종교개혁의 정점, 웨스트민스터 총회" - 장로교회 직분론 : https://youtu.be/VkDY5j-V4tY
대담
1. 모티브 : 이런 책을 쓰고 강의를 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나 계기가 있는가?
보통 강의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중고등부 때 회칙에서 본 그 웨민 어쩌고 하는 문구가 궁금해서라고 말씀드리는데 - 사실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
대학 시절 알게 된 친구가, 지방에 아주 유명한 대형교회 / 거기 대학부 담당으로 슬그머니 들어온 이상한 목사에게 속아서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혼란. 그 목사는 예수님의 사역을 흉내내며 대학부에서 33명을 선정해서 산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방언기도를 시키고 뭐 그런 식이었. 그중에 한 명이던 제 친구만 그때 소위 말하는 방언이 터지지 않았고, 이걸 수습하려고 너는 대신에 병이 나았다~라고. 마침 또 그 친구는 결핵 치료중. 신뢰하던 목사가 병이 나았다고 하니까 의기양양하게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했는데 문제는 그게 한 1주일 전에 이미 한번 찍었던 것. 의사가 왜 또 왔냐 추궁하고, 친구는 하나님이 낫게 해주셨다고... 의사와 간호사의 조롱 속에서 마치 신앙의 투쟁인 줄 알고 엑스레이를 찍었으나 결과는 당연히 그대로…
혼란에 빠져, 그렇다면 이거는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내가 버림받았거나 둘 중 하나니까, 이러나저러나 살 필요가 없다며 자살까지 하려고 했던… 그 친구가 누구냐. 지금 제 아내입니다. 그땐 아직 사귀기 전이었지만. 그런 스토리를 어쩌다 알게 된 제가 옆에서 친구로서 살살 달래면서 상황을 파악해 보니까, 이 교회는 교리공부라는 것이 일절 없었고, 신앙에 대한 너무나도 기초적인 교육조차 되어있지 않았던 것. 사실상 하나님과 산신령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의 대학생들이 많았… 이건 아니다 싶었고, 그때부터 신앙이란 뭔가 이 기본적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되겠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찾고 그러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
다행히도 그런 결과물을 살아오면서 교회 후배들과 나누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의 인생이 달라지고 회복되는 것을 여러차례 경험. 일종의 '임상실험 성공'. 거기서 확신을 갖고, 책까지 내게 되었다. (그 청년 중에 한 명이 여러분 아시는 김양민 형제 ㅎㅎ)
물론 그 과정에서 제가 이런 걸 하는 모습이 당시에는 주위 분들께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 심지어 책을 다 쓰고 출판을 하기 위해서 신학대학원 졸업도 해야겠다 싶어서 입학을 했는데, 대부분 뭐하러 그런 걸 연구하느냐, 그런 책 안 팔린다, 그런 낡은 걸 하지 말고 요즘 나오는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져라는 분위기였고, 약간의 오기가 생겨서 전 재산이었던 아파트 전세금까지 털어넣어서 책을 찍어 냈습니다. 아내는 당연히 어린시절의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지지해주었고 오히려 지금은 더욱 적극적이어서 저희 출판사 대표를 맡아서 저를 부리고 계신다. ㅎㅎ
2. 사제주의 극복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걸 교회에서 제거하려면 구체적으로 뭘 하면 좋을까?
청중에게 사제주의 설명을 그림으로 그려주고 '맞냐 틀리냐' 질문하면 다들 잘 대답하신다. 유일한 중보자는 그리스도 뿐! 이걸 머리로는 다 아는데..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걸 지우기가 참 쉽지 않.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꿔준 것. 목사를 특별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장치들은 일단 좀 안 보이게. 목사 스스로도 생각과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생각과 태도 역시 보이는 것에서 영향을 받는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바꿔줘야 생각의 전환에 도움.
이를테면 목사만 특별한 복장을 입는다든지 - 가운 같은 것 - 목소리를 일부러 신령해 보이는 목소리로 쫘악 깔고 말을 한다든지, 등등 이런 게 사실상 사제주의를 이 다 해당된다. 장례나 결혼식, 심방 등에서 따로 봉투에 사례를 받는다든지 하는 것도 그 근원적인 사상은 사제주의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걸 맘 먹고 없애는 노력도 일종의 제도적인 개선. 당회를 운영할 때 좌석을 원탁으로 해본다든지... 또 공동의회나 제직회를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거 조심하고, 하다못해 어디 뭐 커피숍을 가도 상석에 앉힌다든지 이런 것부터 굳이 불필요한 것은 빼고 좀 자연스럽게 해야.. 이런 사소한 것부터 교회 안에서 모두 함께 애써야 한다. 목사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과하게 떠받드는 언행은 목사를 망치고 결국엔 교회를 망치는 것이니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하겠다.
물론 이런 게 공감을 얻어내서 모두의 노력이 되려면 그 근거가 되는 교리교육이 우선적으로 실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여튼, 오랜 관습과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 늘 의식을 깨우치려는 마음과 적용, 서로 언어 표현을 고쳐주고… 이런 걸 할 때는 지적질이나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서로 예의를 지키는 가운데 격려하는 차원에서 바르게 해야겠죠.
3. 현대 한국 교회의 직분론에서 고쳐야 할 것들은 직접적으로 무엇 무엇이 있을까?
특히 무엇보다 사제주의 개혁은 직분론의 회복이 중요. 장로와 집사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강의에서도 강조했듯이, 역할에 걸맞는 직분론의 정립이야말로 교회 안에서 사제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결국 직분론,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늘 돌아가야. 종교개혁자들이 촛점을 두었던 “오직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시는 형태”가 되려면, 구체적으로 내가 지금 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다. 우리 인간들이 변해야 하지만, 그것도 힘드니까 그 인간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
그래서 아이디어를 짜 내서 제도를 설계했고, 이걸 중세 당시의 그 교육받지 못한 수많은 일반 신자들까지도 다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관련된 교육을 철저히 했던 것. 사람이 잘 안 바뀌니까. 그렇게 해서 만든 제도가 장로교회 제도. 그런데 수백년이 지나면서 이 제도의 본래 의미가 상실되고, 잊혀져 가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니까,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게 된 것.
예를 들어서 ‘항존직’이란 말은 교회 안에 그 직분이 항상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근데 꽤 많은 분들이 이걸, 누가 한 번 그 직분을 받으면 죽을 때까지 그 직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알고 계신다. 한 번 목사가 되면 끝까지 목사라거나, 장로가 되면 교회를 옮겨도 장로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이러한 오해는 교회의 직분을 어떤 승급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더욱 고착화 되는 것 같다. "서리집사" 다음이 안수집사고 그 다음이 장로다 이런 식의 개념. 장로나 목사 안수 때 과도한 구별의식(?)을 가지면서, 이제는 평범한 신자가 아닌 어떤 특수 계층으로 진입(승급)하는 것처럼들 느끼는 것도 이러한 오해의 한 단면이다. 신학교를 선지동산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직분은 "역할"을 위해 존재하고 철저히 그 역할을 섬기는 것이다. 직분자가 소중한 것은 그가 맡은 역할이 소중하기에 그 도구로서 소중히 쓰임 받는 것이다. 그 직분을 누가 맡느냐는, 그 역할을 가장 잘 할 사람이 맡으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이 직분론을 배우고, 배웠으면 더 나아가 실제로 그렇게 해봐야 한다. 지금 직분에 있어서.. 목사 장로 집사를 놓고 보면..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주로 한국 교회가 목사에게 권력이 집중되는데, 그 이유는, 권력이 강하다는 건 결국 그가 가진 권한이 커졌다는 거거든요, 그럼 그 권한을 누가 줬냐면 결국 따지고 보면 성도들이 준 겁니다. 강의에서도 언급했지만, 집사가 할 일이 장로에게 가고 장로가 할 일이 목사에게 가버리니, 일은 다 넘어왔는데 목사가 넘길 사람은 없어요. 그러면 목사는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설교준비에 쓸 시간이 부족해서 설교 품질이 저하되고… 다같이 피해를 보는 거죠.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우리가 무슨 수를 씁니까? 교회가 하는 선택은? 대체로 부교역자를 ‘고용’해서, 좀 표현이 그렇지만, 돈으로 해결하는 거 아닌가. 이런 모습은 교회안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직분론이 엉망이다, 라고 판단될 수도 있는데, 그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이상적인 장로, 제대로 된 집사가 교회 안에 아주 많아지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갑자기 좋은 장로깜, 집사깜이 막 나오는 게 아니죠. 키워야죠. 사람을 키우는 덴 시간이 걸려요. 오래 걸려요.
결국 각 직분의 의미를 잘 알고 그것을 수행할 사람을 몇 년이 걸리든지 지금부터라도 키워 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4. 교회에서 치리가 익숙하지 않은데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문제가 있는 직분자에 대해 재신임을 거는 게 맞나?
사실 소명이란 바꿔 말하면 그에게 그 일을 감당할 은사가 있느냐 인데,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결국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것인데, 그래서 한 직분이 세워지는 것을, 저 사람을 우리가 필요해서 써먹기 위해 뽑았다, 라고 생각하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이것도 기억하셔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면직이라 하면.. 우리가 보통 회사에서 사람을 뽑아다 쓰거나 선출직 공무원을 세우는 것처럼, 일을 시키고 일을 못하면 너 내려와, 이렇게 하는 거랑은 좀 달라요.
교회는 그런 경우에 권징이라는 제도로서 '치리'를 하는데, 이때 우리가 권징, 치리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긴장하게 된다. 누구를 정죄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인데 사실 이것의 원래 목적은 그 사람을 회복케 해서 교회에 유익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혼내키는 게 아니고.
직분자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교회는 그에 대한 권징을 통해 그 잘못을 지적하고 때로는 벌을 주고 때로는 직무를 중단 혹은 복권시키며 혹은 영구히 면직을 시킴으로서 뭘하려는 거냐면 그 사람의 ‘영혼을 회복’시킨다. 그리스도의 관심은 신자의 영혼에 있어요. 그러니까, 자존심은 좀 상하게 하더라도, 그의 영혼을 살리자는 것이다. 직분과 영혼, 무엇이 더 중요할까?
질서에 따라 그 치리의 절차와 주체 등이 다 마련되어 있다. 장로교회에서 목사는 노회 소속이므로 이런 문제는 노회에 올려서 처리한다. 장로는 노회 소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적인 일을 다루는 직분이므로 노회에서 다룰 문제. 집사의 경우에는 개별 교구의 일이므로 당회 선에서 치리하면 된다. 물론 법에 따라 항소도 가능하고 삼심제도까지도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건 각 교단헌법에 준한다.)
** 재신임은 그런 권징의 여러 방식 중에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지, 모든 문제를 이걸로 푸는 건 아님. 만약에 위와 같은 권징의 개념이 없이, 매사에 교회가 재신임을 물어서 직분자를 탄핵시키는 방식으로 일이 돌아간다면 그것은 회중교회의 방식. 저에게 평가하라면, 저는 장로교회 시스템이 회중교회 시스템보다 더 안전하다고 보는 입장. 회중교회의 문제는 평소엔 괜찮은데 양극단으로 치달을 때 문제가 심각. 목사가 회중 장악력이 어느정도 커지다가 51%만 넘어서면 그 독재를 막을 길이 없다. 반대로 목사가 힘이 없으면, 늘 성도들 눈치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길이 없다. 재신임 받으려고 비위 맞추며 적당히 말씀을 전하게 된다. 특히 성도들의 죄 문제를 지적해서 고치도록 하는 영적 아버지 역할을 해야 되는데 재신임 무서워서 말씀 선포를 제대로 못한다면, 누가 손핸가?
여기서 포인트는 권징의 바른 기능이 회복되는 것. 권징도 결국 사람이 한다. 그렇다면 권징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을 키워야 되겠고, 이는 앞에서 직분론 이야기 때 했던 바로 그 이야기. 당회가 성숙해야 되고, 그 당회에서 파송한 총대들이 모이는 노회가 또한 성숙해야, 성도들이 믿고 그 치리를 따르고 받지 않겠는가. / 확대하면 노회에는 지역 시찰회라는 게 있어서 평소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각 교구들을 다니면서 교회 차원에서의 심방을 합니다. 그러면 평소에 내부적으로만 문제가 곪아 터지기 전에 아무래도 대응이 가능하다.
회의체에 관하여 부연설명 : 더 나아가 치리는 언제나 누구 한 사람의 독단에 의해서 진행되는 게 아니고, 당회면 당회, 노회면 노회, 이렇게 회의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장로교회 제도. 말 나온 김에 회의체에 대해 잠깐 보충설명 하자면,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등등, 각 회의체는 어느 특정 직분이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거기 속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서 바뀌더라도, 그 회의체는 여전히 작동해야 한다. 그 교회를 누가 끌어가느냐 어떤 지도자가 거기 있느냐가 아니라, 그 교회의 회의체가 평소에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당회가 있다면, 그 당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누구였느냐가 키포인트가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원리, 문제해결 능력과 기준 등이 세워지고, 그 당회의 항상성이 유지되는 방식으로의 개혁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를 위해 회의를 잘 하는 방법, 젠틀한 태도로 자기 주장을 펴고 상대방의 주장과 타협하는 방법, 협력하는 방법,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자가 있다면 잘 위로하는 방법, 이런 노하우가 한 해 두 해 쌓여가는 교회가 직분론을 제대로 알고 써먹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5. 가르치는 권한은 목사에게만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왜 나오는가 보면 요즘 특히 성도들의 지식 수준이 높아지면서부터 많이 나오고 있다. 사실, 신약의 교회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서로 가르치고 심지어 상호 권면, 상호 권징까지 가능했다. 다만, 직분론 차원에서 목사가 설교한다는 의미는, 목사'만' 할 '수' 있다, 라는 권리나 권한의 측면보다는, 질서와 전문성의 측면이다. 예배 시간에 아무나 나서서 떠들게 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또한 50분 설교를 해야 한다 치면,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누구 힘이 크냐 하는 갈등론으로 풀지 말고, 무엇이 성도에게 더 유익한지를 놓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
목사라는 직분을 특별히 교회 안에 ‘전업’으로 두는 이유는, 강의 때도 강조했지만, 모든 생업에 쏟을 에너지를 성경공부에 집중시키는 한 사람을 교회에 두려는 목적에서였다. 즉, 목사의 직업은 뭐다? 질문이 이상하지만, 목사의 직업은 백수. 더 정확하게는, 학생이에요. 공부하는 학생. 그렇게 1주일 내내 공부하다가, 주일에 와서 말씀 봉사하는. 우리가 1주일 내내 각자의 처소에서 생업에 열심히 임하다가도 주일에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를 하는 것과 똑같. 사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성도니까요. 성경에 투자하는 시간을 많아야, 양질의 설교가 나옴. 우리의 시간은 24시간으로 한정, 지혜롭게 분배해야. 누군가는 손, 누군가는 발, 누군가는 무릎의 역할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즉 이것도 누구 좋으라고? 바로 우리들 좋으라고, 한 사람을 빡쎄게 공부시키자는 것. 어떤 특정 성도가 특정 분야에서 특출날 수는 있으나, 지속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6. 우리네 예배의 전통에는 무슨 문제가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면 좋은가?
교회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예배 스타일이 다 있다. 교회 정치엔 그런가부다 하는 분들도 예배 문제는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뭐 예배 순서 좀 바꾼다 그러면 들고 일어난다. 그래서 종교개혁 당시에는 어땠나,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여기에 대해 뭐에 집중했나 봤어요,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 두 번째로 중요했던 문제가 바로 이 예배개혁 (웨민 일정에서 착안한 공동기도서 문제를 설명) 그래서 만든 것이 예배모범.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에 담긴 깊은 가치와 의미에 집중하도록 조근조근 안내해주는 정말 아름다운 문서.
각 예배 순서마다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이게 성도들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지, 거기에 어떤 태도로 참석해야 하는지, 인도자는 또한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자리에 준비하며 설 것인지, 기도는 어떻게 하면 좋고 무얼 기도하면 좋은지 등을 정말 자세히 적어주셨다. 그 문서를 꼭 읽어보시기를 강권드린다. (특강 예배모범 소개)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럼 뭘 고치면 되냐… 책 보시면 되고요 ㅎㅎ 왜냐면, 뭘 빼고 뭘 넣고 이런 논의를 하기 이전에, 우리가 과연 그 모범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다만 그걸 경직된 마음으로 그래 우리가 이렇게 무조건 해야 해, 지금까지 한 건 다 틀렸어! 이러지 말고, 말 그대로 기왕에 예배하는 김에 더 좋은 모범을 따르자, 내가 편하고 좋은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실 하나님이 받으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예배를 드려보자, 이런 태도로 접근하면 좋겠다.
제가 싱가포르 OO교회의 예배 실황을 본 적이 없어서 만약 봤으면 하나씩 언급하면서 조언을 드릴 수는 있겠으나 그러지 못하고 또 이게 제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우리 모범을 보면서 하나씩 채크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7. 개혁의 태도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강의 중에 "우리가 한 명의 장로교인으로서 성숙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게 바로 이런 의미이다. 장로교회 출신이 아닌 분들도 거부감 없이 들어주시면 되겠어요. 이걸 확장하면 이런 말이에요. 우리가 종교개혁의 후손으로서 - 즉, 장로교회든 감리교회든 침례교회든 성결교회든 다같이 우리가 종교개혁의 후손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결실은 장로교회만의 것이 아니라 개신교의 공유 재산입니다. 이걸 함께 누렸으면 좋겠어요. 싸우지 말고. 지금 싸우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어요. 다함께 힘을 모아서 종교개혁 해야 합니다. ㅎㅎㅎ
종교개혁의 후손으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숙해 가야 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름. 다른 게 아니라, 새로운 걸 배웠으면, 우리가 쥐고 있는 기존의 것들을 버려야 되는데 거기서 오는 고통이에요. 익숙함이라고 하는 타성을 벗어버리는 고통. 기득권을 포기하는 고통.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게, 예를 들어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목사를 포함한 당회원일 것. 그래서 저분들이 문제다, 기득권 내려 놔라, 갈아 치우면 좋겠네… 할 수 있으나, 그런 생각을 하실 때 반드시, 이걸 같이 생각하셔요. 내가 지금 그 자리에 들어가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요걸 생각하시기 바란다. 특히 이 말씀은 더 나이가 어린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인데, 실제로 앞으로 종교개혁을 더 잘 해야 되니까 그래요. 개혁이란 게 더 잘 하자는 것인데 실제로 더 잘 할 케파, ’능력’이 있어야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래서 뭘 비판할 때는 항상 "대안"을 만들어놓고 그걸 제시했어요.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 당시 교회의 문제점은 대부분 이미 루터 때 다 언급. 루터는 종교개혁 2백년 중에서 아주 초창기 사람. 그런 루터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종교개혁 전체 기간에 개혁자들이 문제삼으며 고쳐나갔던 주제들을 거의 다 말했. 이건 루터가 훌륭하다는 말이 아니라, 바꿔 말하면 문제 제기까지는 쉽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제시하고 까이고 다시 고쳐서 만들고 하면서 싸우다 보니 종교개혁의 200년이 흐르는 것.
웨스트민스터 총회 때도 그랬어요. 기존에 잘못된 제도에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 총회의 교회정치 개혁이었고, 예배도 잘못된 예배였던, 제사화 되었던 미사와 / 형식화 되었던 공동기도서를 대체할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 총회의 예배모범. 그럼 교육은 어떻게 해요 하니까 교리문답을 그것도 어른용 아이용 두 개를 만들어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이렇게 제공. 그런 완성품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갔. 그런 노력을 우리도 뭐 10분의 1이라도 따라가면서, 실제로 대안을 만들면서, 기득권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기존에 잘못된 것을 지적은 잘 하지만, 대안을 만들거나, 나 자신이 대안이 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
결국 성도들 각자가 지금보다 더 헌신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교회가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게 바로 신비주의. 종교개혁에 참여자가 되셔야 합니다. 이 교회를 목사님 개인의 소유로 보거나, 더 심한 경우 목사의 사업장으로 보고, 내가 고객으로 방문해서 서비스를 받고 간다, 라고 생각하는 한, 교회는 결코 성숙해 갈 수 없다.
제가 즐겨쓰는 표현으로, 우리는 우리 몫의 종교개혁을 실제로 해야지, 하지도 않으면서 종교개혁의 후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교회를 세우고 바른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열심히 ‘대안’을 만드시기 바란다.
아울러, 기다림이다. 제도의 개혁은 오히려 쉽다. 그 제도가 몸에 맞도록 사람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그 한 사람의 평생이 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장 눈앞에서 고쳐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종교개혁은 500년 전에 시작은 되었으나 지금까지도 우리 안에서 계속되고 앞으로도 계속 될 일이라고 생각하시자.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기도하고 마침
'위즈덤 프로젝트 > 히스토리(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 장기의회 (하원) 기록물 전집 - 전9권 출간 ㅎㅎㅎ (0) | 2023.01.18 |
---|---|
개혁주의 관점에서 성탄절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0) | 2022.12.24 |
종교개혁지 탐방 가이드(세움북스) 황희상 정설 공저 출간! (0) | 2022.02.04 |
기독교인이 세계사, 특히 근대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0) | 2021.03.19 |
16, 17세기를 하나로 퉁쳐서 이해하는 신학계의 문제점 (0) | 2021.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