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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년쯤 전에 대구의 모 학회에서 까메오로 발표한 것입니다.

 

네덜란드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 자리에는 거기서 유학을 하고 오신 분도 계실텐데, 3~4일 밖에 안 가본 제가 말한다는 게 우습지만, 아무튼 필요하니까 이야기 하겠습니다. 땅보다 높은 바다, 바다보다 낮은 땅. 그래서 둑을 쌓고 간척사업으로 국토를 넓혀온 역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네덜란드는 초보적인 간척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여전히 위험한 땅, 질퍽질퍽한 땅, 척박한 땅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자연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고, 더욱이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식민지로 경제적 수탈과 종교 탄압이 극심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운동은 자연환경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스위스와 프랑스를 거쳐 벨기에의 북부지방 네덜란드로도 번져나간 종교개혁 덕분에, 그곳에도 신교도들이 교회를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귀도 드 브레’ 목사는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벨기에의 투르네(Tournai)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의 신앙을 위로하고 변호하기 위해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했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A.D. 1561)

 

그런데 여기에는 가슴 아픈 일화가 있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이 도시에서 은밀하고 조용히 종교개혁 운동을 펼치려 했으나,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도심에서 일부 신교도들이 시편찬송을 부르며 공개적으로 행진하는 사건이 있었고, 식민지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총독은 신교도들의 배후와 근거지를 찾는다며 도시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신교를 믿는다는 것은 이단자가 되는 셈이고, 동시에 스페인의 통치에 반항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성도들은 잡히면 곧장 사형을 당하곤 했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이렇게 악화된 상황 속에서 개신교 교리가 이단적인 것이 아니고, 불법적인 것도 아니며, 반역을 꾀하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신앙고백서의 형태로 총독에게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총독을 만나러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잡히면 바로 죽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는 신앙고백서 인쇄본 한 부를 야밤에 몰래 성벽 너머의 총독 관저로 던져 넣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독과 스페인 당국이 이 신앙고백서를 보고 오해를 풀었을까요? 그랬으면 참 좋았겠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오랜 시간을 변장한 도망자 신분으로 지내다가 - 이 과정은 그야말로 첩보영화 같은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 결국 잡혀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종교개혁자 한 분은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의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역사 속에 남겨졌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아주 유명하지 않지만, 유럽, 특히 네덜란드의 개혁교회에서 이 신앙고백서는 표준문서입니다. 물론 그 내용도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가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공부할 때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함께 이해한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제 경우 함께 공부하는 구성원들과 ‘역할극’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귀도 드 브레가 성벽 너머로 집어 던진 신앙고백서를 우리가 성벽 안에서 ‘발견한’ 입장이 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성벽 안에는 로마 가톨릭을 따르는 총독과 그의 부하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보니까 웬 꾸러미가 떨어져 있습니다. 펴보니 이단자들의 신앙고백서입니다. 총독에게 가지고 갑니다. “이런 게 떨어져 있네요?” 총독은 로마 가톨릭 신학 입장에서 이 문서를 분석할 수사관들을 모집합니다. “분석해봐라, 무엇이 틀렸는지, 얼마나 이단적인 문서인지 밝혀내라!” 함께 공부하는 구성원들은 바로 그렇게 구교 입장에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조사하는 수사관 역할을 맡습니다. 연구결과를 총독에게 보고하라! 이것은 제가 실제로 어느 공부 모임에서 제시했던 미션수행 과제였습니다.

 

이제는 저를 빼고 구성원들이 다음과 같이 진행합니다. 한국 천주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천주교의 교리문답서를 다운로드 받아서 벨기에 신앙고백서와 서로 비교해봅니다.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점을 잘 정리해서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들은 이단입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거꾸로 해봤을 때 개신교의 신학적 입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부 모임 구성원들이 고민을 합니다. 지금 상황은 모두 가정된 것이며, 역할극을 하고 있는 중인 줄은 잘 알지만, 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마음이 너무 아픈 것입니다. 자신은 올바른 개신교 신앙을 배우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데, 수사관 입장이 되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이단이라고 쓰자니, 내키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 미운 겁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최종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총독 폐하! 우리가 분석해 본 결과 우리의 교리와 이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굉장히 다릅니다. 이러이러한 부분이 다르고 또 저런 부분이 다르고…. 그런데 폐하,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에 비추어보면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개신교로 개종하겠습니다, 혹은 야반도주를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저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존경하는 왕이시여. 본 수사관들이 폐하를 통해 신께 부여받은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때, 그것은 폐하의 통치를 도와 백성의 안위와 국가의 원대한 미래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본 보고서는 왕께서 이번 사안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적절한 조처를 내릴 수 있도록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논증은 온전하고 타당하며, 논거의 출처 또한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 취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서는 수백 년간 이어져온 가톨릭 세계의 핵심적인 신앙을 개혁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서를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양심에 따라 우리 교회의 운영과 가르침에 대해 순수한 의문을 표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 이래 기존 체계에 대한 질문들과 호기심은 백성들 개인의 것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인 형태로, 사회, 문화, 정치 등의 여러 형태로 드러나곤 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회가 사람들의 질문을 수용하여 적절한 변증을 취하지 않고 모르는 채 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할 경우 이것은 양심에 거리낌을 낳게 되고, 질문의 순수함은 반발심으로 번져 더욱 큰 흥분과 충돌이 일어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충돌은 내부적인 분열을 낳게 될 것이며,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폭력사태로 이어질 것이 자명합니다. 이는 또한 굳건해야할 저희 왕국의 국고와 국력의 손실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 그러므로 본 수사관의 대표로서, 폐하께 충심으로 다음과 같이 간청하옵니다. 개신교도들의 대표와 우리 교회가 함께 모여 동등하게 서로의 신앙을 변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신다면, 위와 같은 충돌과 혼선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말하자면 총독 역할을 맡은 저에게 오히려 제안을 한 것입니다. 종교회의를 열어서, 어떤 것이 정말 성경적인지 분별하는 역할을 해주십사 요청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저는 이 보고서를 받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분들은 이 역할극을 단순히 재미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을법한 신앙의 실제적 고민으로 삼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교리를 배우고 나서 맨 처음 하는 것이 주로 무엇입니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교리의 순수한 내용을 배우고 나면, 그 눈으로 기존 교회를 바라볼 때 얼마나 잘못된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화를 내거나 싸웁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도피합니다.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이 교회 정말 이상해!”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저는 정말 많이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공부 모임 구성원들은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취한 방식은 교회를 위하여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떠나지도, 자기를 부정하지도, 양심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반항하거나 질서를 깨뜨리는 파괴자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 무엇이 더 성경적인지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총독에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총독의 마음은 더없이 기뻤습니다.

 

 

이런 형태의 수업은 :

교리를 역사와 통합적으로 공부하며 실천까지 고민하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도 교리교육을 하게 되신다면, 이러한 기쁨을 한껏 누리는 기회가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