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대(大)참사였던 십자군 전쟁을 어떤 세계관으로 해석해야 할까? 대답은 하나가 아니다. 동기와 목표를 분리해서 바라볼 때, 대답이 두 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대답을 하나로 통합해서 말할 방법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십자군은 '이원론적 인식'으로 발화되어 '일원론적 목표'를 추구했던, 기이하고 틀려먹은 역사적 실험이었다.

십자군 운동은 흑백 논리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이분법적 사고를 동력으로 삼았다. 서유럽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 세력을 단순히 이웃나라 혹은 정치 / 경제적 경쟁자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슬람을 '악(Evil)'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선'의 위치에 놓았다. 극단적 이분법은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적 기반이 된다. 전쟁의 잔혹함과 약탈은 신의 이름을 입고 성스러운 의무로 둔갑한다.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이원론적 인식의 틀 없이는 이같은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십자군은 단순히 나와 다른 적을 배제하고 밀어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움직임의 궁극적인 비전은 하나의 기독교적 질서를 지구상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질서에 어긋나는 존재는 "싹 다 쓸어버려"야 된다. 이는 십자군전쟁이 일원론적 목표를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십자군의 목표는 문자적 예루살렘의 영토 회복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세속 권력 위에 교황권과 기독교의 절대적 권위를 세우고, 세상 모든 영역을 교회(의 힘을 입은 기독교 정치세력)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두기를 원했다.

즉, 십자군 전쟁은 이원론적 인식이 낳았지만, 그 목표를 일원론적 통일에 두었던, 역설적 괴물의 폭주였다. 이 괴물은 이분법으로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섬멸하여 세상을 단 하나의 질서로 통합하는 것을 '선행'이라고 믿는다. 그 목표를 지지하고 따르면 주님의 자녀들, 반대하면 사탄의 하수인들이라고 믿는다.
슬프게도, 이 괴물은 중세 판타지의 캐릭터가 아니라 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네 사고방식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극우정치세력을 수단화하여 자신만의 유니버스에서 성전(지하드)을 수행 중이다.


극단적 이원론이 극단적 일원론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비극은 극대화된다. 타협 없는 절대적 진리의 강요가 마치 기독교의 실체인 것처럼 오해되고,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마치 주님 뜻을 따르는 거룩한 봉사인 것처럼 오해되는, 바로 지금 이땅 교회들의 현실이 참담하고 참람하다.......
(2025년 11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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