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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강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교회가 한 단계 성숙한 성도들을 길러내고 싶다면 반드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채로 무언가(?)를 믿으며 교회를 다니는 괴물들이 교회 안에 양산된다. 진정 그러하다.

이때, 역사 교육은 세계사와 교회사를 나누지 말고 최대한 융합하여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신구약 교회사를 포괄하여 가르치되, 일반 역사(고고학 등)를 함께 동원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교회 역사를 가르치다가 사도행전이나 요한계시록 부근에 오더라도 거기서 끊지 말고 자연스럽게 초대교회사로 이어지고, 계속해서 제국교회와 중세교회로 이어지도록, 그렇게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다.

(노파심에 적어두지만, 그렇게 성경의 기록과 일반 문명사의 기록을 함께 가르치는 방식으로 역사를 교육하는 것은 성경의 자증성 뭐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니 제발 오해 마시길!)

그리고 교육 단계는 가장 넓은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좁혀나가는 것이 좋다. 그 과정에서 독특성이 부각된다. '왜 좁아져야 했는가??' 중세의 끝자락에서 개신교로 좁혀지는 16, 17세기의 종교개혁사 교육이 특별히 잘 이루어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사제주의에 대한 저항, 공로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한 저항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신교인으로서 개신교가 무엇인지를 드디어 이해한 성도들에게 다음 단계로 '더 좁혀서' 가르칠 내용이 바로 '개혁파의 독특성' 되겠다. (루터파는 루터파, 성공회는 성공회 등 각자의 교파로 바꿔 읽으시면 되겠다) 개혁파의 독특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자기가 왜 많고 많은 교회 중에 하필 이 교파에 속하였는지 알 수 있음은 물론, 더 바른 신앙을 위해 애쓰는 것이 왜 소중한지에 대한 '심정적이고 실체적인 체험'이 이루어진다. 비로소 말이다.

이렇게 개혁파의 독특성을 교육할 때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성경 해석, 즉, 개혁파가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의 독특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교회의 모든 역사는 성경해석의 싸움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개혁파의 성경해석 원리에 근거한 주요 교리들이 드디어 가르쳐지는 것이다. (애초부터 교리가 성경과 떼어서 설명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이것임!) 물론 만만치 않은 작업을 해야 하지만, 다행히 개혁파의 교리라 하면 5솔라, 튤립 등 이미 잘 정리된 교육 재료들이 즐비하니 잘 도움 받자.



그 다음, 거기서 더 좁혀 들어가서, 이제 개혁파 중에서도 장로교회란 무엇인지, 그런 시스템이 내 신앙에 왜 유익한지를 교육한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및 그 주변부의 역사에 대해 싹 가르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를 위해 이미 겁나 쪄는 책이 출간되어 있으니 누구도 핑계치 못하리!)

여기까지 왔으면 비로소 그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정립한 교리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배운 개혁파 교리들보다 더 공교히, 더 정규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 두드러진 교회론 및 율법의 제3사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는 여기서 이 땅의 교회에 주어진 풍성한 은혜와 영광, 그리고 신자의 실천적 삶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역사를 가르치는 목적이 성도의 한 단계 성숙이라고 하면, 그 성숙의 실증은 이 단계에서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그간 오래 참으셨다!) 예를 들어 십계명 6, 8, 10계명에 기초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 등... 아주 구체적인 신앙고백의 표현들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를 때... 구원받은 신자의 삶이 구체적으로 변화하되, 억지로 함이나 보이기 위함이 아니요, 스스로 더 좋은 신자가 되려는 마음에서 행함이 이끌려 나올 때... 그 때가 바로 교역자에게 빛나는 영광의 순간이 아닐까.

이 모든 교육이 이루어진 뒤에 비로소 현행 헌법(직분론, 치리회, 교회질서 등)을 가르치는 감격스러운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렇다. 드디어 직분자 교육의 순간이다. (직분자 하나가 나오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귀한 일이다) 솔직히, 이쯤 되어서 직분자 교육이 이루어짐이 참으로 합당하고 '말이 되는' 그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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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하나님의 섭리가 세상에 기록된 흔적이자 그 터를 살아간 신자의 고백이다. 신앙고백서는 어쩌면 그 가장 첨예한 끝단에 기록된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인 셈이고 말이다. 우리가 교회의 질서와 공회의 결의를 따르는 이유 또한 역사와 연결된다. 역사에 기록된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때로는 내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일도 견디고 기다릴 줄 안다. 때로는 법과 질서에 어긋나는 일에 저항할 줄도 안다.

그런 성도를 길러내는 것... 내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굳이 누가 일러주고 외우도록 하는 게 아니라, 역사 교육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교회교육의 넥스트 레벨 아니겠는가,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