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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털 이야기

category 위즈덤 프로젝트/ETC 2019. 7. 4. 18:53

황희상

나에게는 털이 있다. 굵기와 색상도 매우 다양하다. 특히 수염의 경우 워낙 강인하고 풍성한 탓에, 웬만한 전기면도기 따위는 한두 달 내로 망가뜨릴 수 있다. 면도기에 지출되는 재정이 부담이 되어 한때는 수염을 계속 뽑아보기도 했으나, 이는 수염의 기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하였고, 단지 피부노화를 재촉할 뿐이었다.

수염만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늘은 블루클럽 헤어디자이너 아주머니의 손가락에 내 머리털이 박히는 바람에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털은 내 털임에 분명했고, 책임감을 느낀 나는 속히 쪽집개를 가지고 오시라고, 빼드리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프로 정신이 투철한 그분은, 먼저 손님 머리부터 완성해야 된다며, 고통을 참으며 어거지로 내 머리 손질을 마쳤다. 좌불안석이었다.

상호 고통스런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나는 다른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쪽집개로 내 머리털을 그분의 손가락에서 제거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문제의 털은 생각보다 작았고,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었다. 뭉툭한 쪽집개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그분은 눈을 질끈 감고 "그냥 콱 눌러서 빼세요. 괜찮아요! 아파도 되요! 아얏! 아파요!"라고 소리치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나의 손을 더욱 떨리게 만들었다. 손님들은 더욱 몰려들었으며, 한순간 나는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로 손톱깎이로 도구를 바꾸었고, 가까운 물체를 더 잘 보기 위해 안경까지 벗어 던졌다. 사람들은 "손톱깎이로 하면 잘못해서 털이 잘려버려 더 어려울텐데..."라며 수군댔다. 여기서 실패하면 낭패였다. 마지막이다, 하고 손가락에 정신을 집중하자, 작은 털의 첨예한 끄트머리가 드디어 내 작은 눈에 큼지막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단숨에 그 작고 날카로운 머리털 끄트머리를 손톱깎이로 잡아챘고, 피부에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숨죽여 지켜보던 동네 꼬마들이 탄성을 질렀다. "나왔다!", "예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손톱깎이를 돌려드리고, 요금을 지불하고, 흐뭇한 미소를 띈채 블루클럽을 나섰다. 거리에는 밝은 햇살이 가득하였다.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하늘은 맑고 쾌청하였고, 서늘한 바람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그렇다. 비록 내 털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때가 있지만, 나는 내 털을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118정설, Jun Young Shin, 외 116명

댓글 32개


안용호 ㅎㅎㅎ 병 주고, 약 주고^^

이웅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석현 대단한 묘사~ㅋㅋㅋㅋ

이웅석 막 감정 이입되서 내 손에 손톱깎이 들고 있는 것처럼 정신집중하면서 읽게 되는 글입니다. ㅋㅋㅋㅋ
글을 다 읽고 나니 흐뭇한 미소와 함께 깊은 안도의 한숨까지 나오는군요. ㅋㅋㅋㅋ

권선진 털털하시네요 ㅋㅋ

최재호 아이고~대단한 사건이 발생했었군요. 대형참사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소형참사?? ㅋㅋㅋ

Jun Young Shin 진짜 엄청 웃으며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
고생하셨습니다 ㅋㅋ

박은제 쇠털...ㅎ

원도연 한참을 진지하게 보다가 마지막 내용들에서 '아 이건 진지하게 볼 글이 아니었구나' 를 깨달았습니다

Byoung Ju Jang ㅎㅎ 전 한 번은 손톱 밑으로 머리카락이 박혀서 아주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Joshua Bae 신소재 ㅎㅎ

YeongCheol Sima Choe 풉! ㅎㅎㅎ

Eddie Yoon 철사 일지도...

Jini Kim 레이져 제모하시면 털이 얇아져열 ㅎㅎㅎ

김정미 손톱깍기...저만 아는 방법인데 
힘 조절에 성공하셨네요 ㅎㅎㅎ

황교진 아웅~^^ 진짜 너무 재미있어요.^^

서성욱 이건 가슴뛰는 털 빼기(?) 현장보고..?ㄷㄷㄷ

장은아 ㅋㅋㅋㅋㅋㅋ 털이 손가락에 박히다니요!! ㅋㅋㅋㅋ 상상이 안가요 ㅋㅋㅋ

고봉현 머리털로 수세미를 만들어 보심이 .....

안수지 ㅎㅎㅎ 너무나도 재밌어서 숨죽이며 읽었네요 ㅋ

김인환 철모 황군님... ㅋㅋㅋ

윤영상 미용실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주로 남성 컷을 할때 흔히 일어나는데, 남성의 머리털이 손가락이나 발바닥에 많이 박힙니다.

Young Ahn ㅎㅎㅎ

강순일 흑곰의 강인한 '모'의 세계
경이롭습니다^^

Hyunju Oh 대표님 저 이거 저장하고 한번씩 꺼내 읽을께요. 어려운 이 시대에 이리 유쾌하고 진지한분 필요합니다 ..같은 시대에 살아주셔 감사합니다.

John Ahn ㅋㅋㅋㅋ

정성국 철사털 ㅋㅋ

김난희 진지하게
숨죽여 읽고 .............
마무리는 ㅋㅋㅋㅋㅋ


황규환 부럽다능...ㅎㅎㅎㅎ

홍성훈 나 뼈대 있는 집안은 봤어도 모대(?) 있는 집안은... ㅎ

Yongdai Park 수염은 이발기계(바리깡이라고 하나요?)로 짤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