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버리고 뜻을 향해 달려간 흑곰북스 (1부) - 가스펠투데이 / 황교진 객원기자
교리 교육서의 탁월한 존재감, 흑곰북스
교리로 회복을 경험한 출판인 황희상, 정설 부부
출판계는 매년 “단군 이래 최고의 불황”이란 말을 한다. 경기부진과 출판 불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기독 출판과 서점은 더욱 벼랑 끝에 있다. 이런 불황 가운데도 책으로 건강해지는 교회와 세상을 꿈꾸며 창의적인 방법과 새로운 접근으로 활약하는 이들이 있다. 책은 시대를 선도하는 힘과 가치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이 매력적이면서도 의미와 가치 있는 산업에 신선한 기획과 열정으로 도전하고 버텨 내고 결실을 얻는다.
첫 출판사 탐방은 흑곰북스이다. 매출이 담보돼 있지 않던 교리 책에 주목하여 한국 교회에 교리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흑곰북스는 황희상, 정설 부부가 저자이며 대표이다. 두 사람은 캠퍼스 커플로 만나 20년의 인생을 함께해 왔다. 필자가 흑곰북스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초다. 지금은 마포로 사무실을 옮겼지만 당시 안산의 예술인아파트가 이들의 사무실이면서 주거지였다. 예쁜 신혼집 같은 따뜻한 분위기와 출판 업무에 좋은 감성의 아담한 공간에서 《특강 소요리문답》 상, 하 2권의 유통과 강의, 다음 책들의 계약과 디자인, 편집을 진행 중이었다. 사무 공간이자 가정집에서 부부 출판인은 삶과 일을 온전히 공유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기독교 잡지 편집팀으로 만나서 하루 종일 함께 일했다. 결혼 전에는 눈 뜨면 만나서 잠 자는 시간에만 떨어져 있다가, 결혼 후에도 하루 종일 재택근무로 함께 한다. 밤이고 낮이고 함께하는 시간에 학교, 직장, 교회 등 모든 영역에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어냈다. 연애 시기와 신혼 초까지 무수한 마찰을 이겨내면서도 질리지 않았고, 이젠 일과 가정에 있어서 완벽한 팀워크를 갖춘 천생연분으로 산다.
전세금을 빼서 출판사 창업을
두 사람은 신문방송학과 동기이다. 대학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 웹진을 만든 경험을 살려 졸업 즈음 닷컴 열풍이 불 때 벤처 회사를 창업해 10년간 IT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지만 변화무쌍한 인터넷 산업에서 은퇴시기를 맞았다. 10년차가 되면 벌써 발상과 사고방식에서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에 벌어지는 간극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결과는 참담했고, 출석하던 교회마저 갈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사기까지 당해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움직이는 곳마다 망한다는 징크스를 느낄만큼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시골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출석한 교회에서 청년들을 만나 교제하며 교리문답을 깊이 공부한 것이 회복의 비결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그들이 남겨 준 신앙 유산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가치를 누려왔다. 교리 공부와 나눔이 이들이 겪은 실패와 낙망에서 일어서게 해 주었고, 함께한 청년들 또한 신앙과 삶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을 목도했다.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전하는 자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에 유익을 준다는 가치를 재발견하고는, 이를 좀 더 공교하게 정돈해서 책으로 만들 결심까지 가게 됐다.
교리는 쉽게 가르치고 배우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방법이 중요하다. 삶과 동떨어진 교리는 현실에서 능력이 없다. 그래서 황희상 저자는 교리 교육의 방법론을 고민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내용으로 논문을 쓰고, 최적의 방법론을 적용한 교리 학습 원고를 쓰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집필을 시작했다. 집필을 마치고 나서는 저자로서의 신뢰도를 갖추기 위해 신학교에도 들어갔다. 아내는 남편의 결심을 돕기 위해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했다. 운전면허를 따고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외국계 회사에 취직했다. 결국 그들은 기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전 재산이던 전세금을 빼서 흑곰북스를 창업해 《특강 소요리문답》을 출간해 냈다. 모든 것을 던지다시피 한 열정과 모험으로 시도한 이들의 첫 책은 많은 사랑과 극찬을 받았다. 책 출간 후 황희상 저자는 강의봇이라 불릴 만큼 무수한 강의를 하면서 한국 교회에 교리 공부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전세금 투입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아내가 어렵게 입사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 경영을 맡아줘야 했다. 출간을 의뢰한 출판사들마다 원고는 반려되었다. 직접 출판을 해보겠다고 전 재산을 털어 넣으려는 남편의 도전에 동의하기도 힘든 일인데, 편집과 출판 경영까지 맡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할 아내가 어디 있을까. 급기야 책 제작비로 쓰기 위해 전세금을 뺀 뒤, 친구네 집 거실에서 살기로 했다. 남편은 날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 길에 함께 걸음해 주는 아내는 또 무슨 고생인가. 오랜 기간 아무 수입이 없으니 경제적 어려움은 당연했다. 밥값을 아끼는 것은 기본이고 모든 지출을 철저히 단속하며 지냈다. 모든 고통은 책이 나온 뒤 씻은 듯 사라졌다. 팥빙수 한 그릇, 과일 하나 제대로 사먹지 못한 일화들은 웃으며 떠올리는 추억이 되었다. 책 출간 이후로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단코 후회는 없다. 흑곰북스를 창업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그 고생길을 다시 걷는다. 무조건!
흑곰북스는 무슨 뜻
종교개혁 신앙을 주제로 하는 책의 출판사 명을 짓자면 ‘진리의 기둥’이라든지 ‘신앙의 전통’이라든지 하는 고상한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부부가 처음 생각한 이름은 ‘리폼드코리아’(Reformed Korea)이다. 그런데 만들고 싶은 책의 1차 독자는 초신자나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청소년, 청년들이다. 진리, 리폼드, 전통 이런 단어들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사연이 있는 이름’을 구상했다. 문득 칼뱅이 《기독교 강요》 초판을 인쇄한 인쇄소 간판이 흑곰 문양이고, 별명이 블랙베어 프린팅 하우스였던 사실이 떠올랐다. 거기에 모티브를 얻어 출판사 이름을 ‘블랙베어북스’(BBB)라고 지으려 했다. 디자이너들과 컨셉 회의를 하면서 출판사 네이밍을 제시했더니 가장 어린 디자이너가 “블랙베어? 흑곰? 흑곰북스?”라고 말하자 모두 크게 웃었다. 기존의 후보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갑자기 귀엽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흑곰북스'는 디자인팀의 프로젝트명에서, 최종적으로 출판사 이름을 꿰찼다.
첫 책, 《특강 소요리문답》의 독특한 판형과 디자인
《특강 소요리문답》은 크고 무거워서 호신용 무기로 쓸 수 있으며, 들고 다니다 보면 이두박근이 나온다는 애정 어린 불평이 있다. 부부는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본문에 넣고 싶은 모든 것을 넣어 보기로 했다. 디자인 작업은 두 사람이 모두 신뢰하는 친구가 이끄는 팀과 협업했다. 이 팀은 업계의 탑클래스였다. 방송국이나 공연, 전시, 박물관 등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출판 디자인 경험도 많았다. 문제는 디자인비 책정을 넉넉히 할 수 없는 형편. 디자이너들은 대형 프로젝트를 하면서, 흑곰북스 일은 퇴근하고 집에 가기 전 자투리 시간을 내어 진행해 주었다. 특이한 점은, 디자이너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 용어나 개념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것을 질문하고 거기에 대답해 주는 과정을 거쳐서, 책이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친절한 구성으로 나왔다.
황희상, 정설 부부는 인생에 한 번 만들고 끝날지 모를 책에 아낌없이 투자해 보기로 했다. 상하권 한 세트 제작에 6,500만 원을 투입했다. 고급용지를 쓰고 전면칼라로 제작하다 보니 디자인비를 비롯해 제작 단가가 높아졌다. 초판을 3천부 찍으면서 덜덜 떨었다. 다행히 책 반응이 좋았고, 중쇄할 때마다 5천부씩 찍고 있다. 재쇄 분량을 천 부 내지 천오백 부 잡고 있는 기독 출판계에 《특강 소요리문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디자인 컨셉 회의에서 아름답고 박력 있고 의외성의 디자인 요소가 가득하길 주문했고 종교색을 최대한 빼줄 것을 제안했다. 기독 도서 디자인 특징은 파스텔 톤이 흔하고 캐릭터는 항상 행복하게 웃고 있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모두가 손잡고 노래 부르며 뛰어다닌다. 그러나 교리의 문체는 그런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삶과 함께, 일상을 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일상의 캐릭터로 수정했다. 무표정하게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길을 걷고, 울기도 하는 등 인생의 다면적인 모습을 담았다. 정설 대표는 기독교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아이디어로 디자인을 제안했다. 어느새 아내는 창의적인 사장이자 신선한 출판 기획자로 들어섰다. 저자이자 강연가로 흑곰북스를 알리는 일에 탄력을 붙이는 남편과 유통과 경영으로 베이스를 구성한 아내의 호흡은 척척 맞았다. 흑곰북스의 첫 결과물은 교리 책의 부흥기를 일궈 냈다.
흑곰북스의 행보와 출판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한 더 깊은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 다룬다.
안정을 버리고 뜻을 향해 달려간 흑곰북스 (2부)
1부에서 교리 교육에 탁월한 콘텐츠를 공급해 보기로 한 흑곰북스의 탄생 과정을 다루었다. 부부가 전세금을 빼서 차린 출판사라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흑곰북스가 기존 기독 출판계와 다른 크리에이티브를 이어서 소개한다.
《특강 소요리문답》을 만나다
가제본을 받았던 순간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4도 컬러의 책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동안의 땀과 눈물이 배인 뿌듯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 두꺼운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일은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섰다. 약간의 자포자기 느낌도 일었다. 그 불안과 의구심은 곧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페이스북 홍보를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특답이(황희상, 정설 부부는 첫 책을 이 애칭으로 부른다)를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밤늦게 페이스북에 올린 특답이 사진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공유 230개를 기록했다. 당시 황희상 저자의 페친 숫자가 300명 수준이었으니, 엄청난 반응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한 출판 운영과 기획
책에 대한 애착으로 진행한 흑곰북스의 유통 방식
제본소 마당에 쌓여 있는 3천 권의 규모를 본 순간 심장이 덜컥 했다. 대체 이 많은 책을 어디다 어떻게 소진시키나…. 다행히 거실을 빌려 준 친구가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날마다 셋이 모여서 갑론을박 했다. 가진 것을 다 쏟아 부어 만든 책이라 한 권 한 권을 신중하게 판매하고 싶었다.
이들은 기독 총판을 통하지 않고 일반 물류 업체를 알아보았다. 지금은 개선됐지만 당시만 해도 기독 물류업체들 중에 책을 세밀하게 다루는 디테일 부족으로 운반 중에 표지가 찌그러지거나 이물질이 묻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물류 협력사로 고른 신생 일반 업체는 감동할 정도로 성실하고 소중하게 특답이를 다루어 주었다. 이후 흑곰북스 신간들을 지금까지 사고 없이 배송해 주고 있다.
총판 계약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친구의 조언 때문이다. 첫 거래부터 현장을 익히는 차원에서 직접 발로 뛰면서 직거래를 해보는 것이다. 우선 교보부터 찾아갔고, 신생 출판사 책은 받아주지 않는 분위기를 뚫고 계약을 이뤄냈다. 엠디가 특답이의 디자인과 가능성을 보고 예외로 받아 준 것이다. 교보에 들어간 뒤로는 다른 온라인 서점들의 계약은 손쉬웠다.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자 독자들은 자신들이 구매하는 기독서점에 왜 특답이가 없냐며 요청하기 시작했고 연달아 주문량이 늘어갔다.
독자들이 영업해 준 특답이
출판 유통은 다른 제조사들의 유통과 다른 점이 많다. 외상으로 책을 받아 비치해서 판매된 만큼 공급가를 정산한다. 유통 과정에서 일어난 파본과 판매되지 않은 재고는 고스란히 반품시킨다. 게다가 판매대금을 수금하는 것도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서점마다 정산일도 다르다. 대형 서점이 손님들이 오래 머무는 곳으로 매장 콘셉트를 바꾼 후 많은 방문객이 책을 서점에서 꺼내 읽다가 구매하지 않고 돌아간다. 손 때 묻은 그 책들이 출판사 재산인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렇게 출판사는 잘 만들어 놓은 책의 파본과 반품 관리라는 과제를 떠안고 어렵게 책을 공급해야 한다. 비출판인이 출판사를 창업하고 접하는 이런 유통의 당혹스러움에 흑곰북스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흑곰북스는 기본적으로 책값을 먼저 받고 책을 보내 주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상식이었다. 1부에서 말했듯이 창업 부부는 인터넷 쪽에서 일했기 때문에, 결제가 이루어진 뒤에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ID가 어느 시간에 무슨 결제수단을 통해 얼마를 지불했는지 데이터베이스로 정확히 쌓이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러나 출판계에는 그런 시스템이 자리 잡히지 않았다. 책값을 받기 전에 책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워 현매, 매절, 직거래를 고수했다. 서점주들은 황당해했지만 독자가 분명히 있었기에 외상없는 주문은 하나 둘 이어졌다. 결국 독자가 서점을 압박해서 책을 비치한 셈이다.
출판 유통의 통상적인 관습에 정면으로 거스르며 공급하는 방식에, 처음엔 다들 망할 거라 했다. 어떤 분은 건방지다며 화를 내기도 했지만, 흑곰북스는 정성껏 만든 책이 어느 서점에서 어떤 독자에게 팔리는지 확인하며 선배송하고 싶었다. 단 한 권을 팔더라도 투명하게 거래하고 싶었다. 실은 현실적으로 빨리 현금을 확보하지 않으면 다음 책을 제작할 수 없었다. 얼른 이어서 하권을 제작해야 했다. 페이스북에 “특답이 상권을 다 사주셔야 하권을 만든다”고 홍보했다. 독자들은 흑곰북스가 ‘협박 마케팅’을 하는 거냐고 하면서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직접 홍보대사가 되어 한 권이라도 더 팔리도록 도와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가슴 뭉클하다.
지금도 흑곰북스는 선금을 받고 책을 공급한다. 물론 이렇게 하면 전국 서점에 특답이가 쫙 깔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서점은 진열 후 판매로 거래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동네 서점에 책이 없으면 출판사가 책을 안 갖다놨다고 생각한다. 저자로서 서점에 책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바심이 났지만 경영을 맡은 아내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국 서점에 깔리고 신문 방송에 노출해서 판매를 끌어내기보다 실제로 책을 읽고 유익을 얻은 분들의 입소문으로 천천히 퍼지는 것이 옳다는 신념을 지켰다. 지나고 보니 그 신념이 옳았다.
전세금 회수, 강소 출판사로 성장
흑곰북스의 유통, 마케팅 행보는 자신감 있는 고집보다는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책이 많이 팔리니까 이것이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평가받아 SNS 북마케팅의 선구자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유별나게 보일지라도 자신이 만든 소중한 책을 조금 더 깊은 애정으로 대하는 방식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니 마케팅 전략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흑곰북스는 그 흔한 공유이벤트도 하지 않았다. 신간이 나오면 매번 엄청난 공유가 일어나는데 이벤트 상품이 걸려 있지 않은 자발적인 독자들의 관심이다. 신간 목록이 많지 않아도 믿고 읽는 흑곰북스로 교계에 퍼져나갔다.
《특강 소요리문답》 상권 이후 5개월 만에 하권을 제작했다. 그 뒤로 1년쯤 지나서 1만 권 판매를 돌파한 시점에 투자한 전세금을 회수했다. 하지만 보통 책의 4~5배의 제작비가 들어가 그 뒤로 증쇄할 때마다 제작비를 대느라 손에 쥐는 이익금은 많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책에 대한 호평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특강 소요리문답이 수많은 교회에서 신학기 교재로 채택되었다. 이런 일이 3년쯤 반복되자 회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재무에 어려움은 없다. 신간 개발에도 조금씩 투자가 가능한 수준이다. 사무실은 출판 일을 하기에 가장 편리한 마포구로 옮겼다. 마포구에 활동하고 있는 출판사가 4천여 개라고 한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출판업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가 높아 세무 등 각종 업무가 편리했다. 이렇게 흑곰북스는 강소 출판사로 성장했다. 특답이 세트에 이어서 《특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세트, 《특강 종교개혁사》,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등 한국교회에 필요한 학술서와 교리서를 정선하여 정성껏 만들어 공급했다.
출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흑곰북스에게 출판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창업 7년차인 황희상, 정설 부부는 조언하기를 조심스러워 했다. 경험은 단 하나의 사례일 뿐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가 일종의 성공담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뭔가 잘해서 얻은 성과도 아니고, 흑곰북스의 방식이 정답이란 보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굳이 해줄 말을 고르라면, 출판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왜(WHY) 출판을 하려 하는지 고심하기를 권유했다. 출판 창업의 기업가 정신을 분명히 해야 일을 잘할 수 있고 결과도 따라온다. 기술이나 의지는 다음 문제다. 황희상, 정설 부부는 출판 창업에 도전할 때 사전 지식과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게으르고, 몸도 약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무엇을 왜 할 것인지 분명하므로 하루하루 꾸역꾸역 견디고 버텨낼 수 있었다.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게 했고, 독자들이 흑곰북스의 진정성을 먼저 알아봐 주었다.
기독교 출판을 돈을 벌겠다는 목적만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체는 돈이 돌아야 지속가능하다. 독자들의 책 구입량은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이를 독자 탓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독자들이 지갑을 열만큼 기꺼이 살만한 책은 얼마나 많을까? 이에 대한 고민을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책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산다. 그런데 타깃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이유로, 책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경향이 있다. 너무 학술적이거나 유명한 저자만을 컨택하거나 식상한 주제의 책들이 반복된다. 학자는 학문을 과시하려고만 하고, 저자는 이름을 내려고만 하고, 출판사는 이윤을 극대화하려고만 한다면, 독자의 만족도에 초점을 맞추는 쪽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한 사람의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정말로 변화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도록. 이제는 이전보다 더, 책 한 권에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많은 책을 만들어서 뿌리는 것, 소위 밀어내기로 책을 팔아 매출을 맞추는 시대는 지났다.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도 전부를 걸고 해보고자 했던 열정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덧입힌 결과물이 흑곰북스가 되었다.
어떤 책이 나올까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는 출판사, 흑곰북스의 현재와 미래는 독자들이 도와준다.
책의 불황이 걱정되어도 독자들이 있는 출판사의 현실은 재밌고, 밝다.
글: 객원기자 황교진 / 가스펠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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