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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세미 트럭이란 트럭의 뒷부분(짐칸)이 없이 앞부분만 있는 트럭을 대략 의미한다. 뒷쪽에는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을 연결해서 곧바로 다른 물류 수단과 연계하기 좋고, 컨테이너 박스가 아닌 다른 것을 연결해서 끌 수도 있다. 개념상 우리에게 익숙한 '트럭'보다는 '트랙터'에 해당한다.

대충 요런 거에서, 운전석이 있는 앞 대가리 부분을 세미트럭이라고 부름

그런데 요게 물류에서 엄청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차세대 운송 시장에서 헤게모니를 쥐려고 전기 세미 트럭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테슬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테슬라가 그동안 생산한 세미트럭 몇 대를 첫 인도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식 발표하는 행사를 가졌다.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기존 물류 환경의 문제점
대형 트럭은 전 세계 물류에서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기차나 배가 훨씬 더 많은 물량을 소화할 것 같지만 이는 철도나 항만 등의 인프라가 갖추어진 지점과 지점을 연계하는 수단이고, 실제로 실핏줄처럼 연결된 지역 도로를 커버하는 것은 결국 트럭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디젤 트럭은 물류의 80%가 넘는 물량을 커버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의 디젤 트럭이 연비가 떨어지고 노후화 되었다. 그래서 전체 차량에서 트럭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인데 탄소 배출은 20%, 미세먼지 배출은 36%나 잡아먹는다고 한다. 즉, 트럭이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였던 것.

2. 그밖의 문제점
최근 우리나라 화물연대의 파업에서도 드러났지만, 이 트럭 운전이라는 업무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을 해야 하므로 피로가 누적되어 근무 만족도가 높고, 그래서 트럭 운전사 구하기도 쉽지 않으며, 졸음 운전 등으로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무척 높은 것이 이 분야이다.

더구나 최근 연료비 폭등 및 각종 부속품 교체비, 요소수 - 오일류 교체비 등 차량 유지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그로 인한 수송 비용의 지속적인 증가는 결국 물건을 나르는 물류회사는 물론 그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의 원가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3.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 세미트럭 출시의 의미는
전기 트럭이 성공만 한다면 위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그동안 이게 과연 될까 의심하는 시각이 많았다. 성공하려면 한번 충전으로 장거리를 달리는 고용량 배터리가 나와줘야 하는데,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 무게가 증가하고, 그러면 화물차의 무게 또한 늘어나서 정작 장거리를 달리기 어려워지는 딜레마를 풀어낼 회사가 그동안 없었던 것. 빌 게이츠 같은 천재조차도 순수 전기 트럭은 장거리 운송 수단에 맞지 않고, 수소 연료전지가 적합하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테슬라가 그걸 해냈다. 테슬라가 내놓은 세미 트럭은 대략 아래와 같다.

※ 오해가 있을까봐 굳이 영어로 썼다. (당연히 번역은 구글번역으로 ㅋㅋ) 한국인들은 유독 테슬라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주식을 사라는 말이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이야기할 때 부담이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야기를 잘 안하려 하지만, 사실 테슬라는 내 관심사와 관련해서 이야깃꺼리가 무궁무진한 기업이다.

 

위 그래프에서 중요한 것은 4천피트 넘는 고지대를 주행한 실제 데이터이다. 실험실 결과값이 아니란 소리다. 내리막이나 평지에서 800키로 간 것이 아니라, 실제로 트럭이 달려야 할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모두 포함된 도로 환경에서의 데이터 값이다. 레알이라는 뜻이다.

이 정보를 구글맵에 직접 입력해서 어떤 코스로 갔나 봤더니 아래와 같다. 몇 년 전 부모님과 샌프란시스코-LA 여행을 했을 때 비슷한 코스로 달려본 적이 있어서 대충 어떤 길인지 감이 온다. 그라페빈 직전부터 사막 지형이 나오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실제로 달려본 기억에 의하면 상당히 경사가 있고, 구간도 길다. 


그것 말고도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멋진 디자인이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하는 유선형에 더하여, 단순히 심미적으로 멋진 게 아니라, 이게 가만 보면 운전석 쪽이 'KTX'처럼 생겼다. 얘는 애초에 트럭을 개조한 게 아니라 철도 물류를 대체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테슬라 세미 트럭이 자율주행 기능 및 트럭간 소통을 기본 전제로, 여러 대의 세미 트럭이 함께 통신을 하면서 앞 뒤로 나란히 운전하는 군집 운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즉 고속도로 위로 여러 대의 컨테이너 박스가 마치 기차처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출처 : 한국국토정보공사

 

연료비 절감 및 부품 단순화로 고장빈도도 낮아져서, 물류 비용 면에서 혁신적인 절감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한 번 충전으로 500마일, 즉 800키로미터를 고속도로 최고 속도로 주행한다. 서울-부산 왕복이 재충전 없이 얼추 가능하다. 언덕길도 거침없이 오르는데, 소음도, 진동도, 매연도 없다..

기존 인프라(고속도로)를 그대로 활용하는 친환경 물류 시스템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나와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운송 노동자의 근무 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느긋한 트럭 운전사 아저씨를 상상해보라. 난폭운전도 사라지고 운행 효율도 좋아져서, 결과적으로 고속도로 교통 체증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자, 그런데 그런 트럭을 경쟁사의 반값에 판다?? 눈치 빠른 펩시가 냉큼 계약했다.

두둥~ ㅎㅎㅎ

 

어쩌면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우리는 박 터지는(Mind Blowing) 혁신을 겪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