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약속, RE100
"알 이백이 뭐죠??"
우리 국민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웃픈 대사이다. RE100(리백)은 기업들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전량(100) 재생에너지(RE)"로 하자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의 총량을 측정하고, 그 중에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측정해서 지표로 만들어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청정에너지 발전시설을 갖춰서 전력을 생산하여 충당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청정에너지로 만들어진 전력을 "더 비싸게 구매(녹색 프리미엄)"해주는 것도 그 데이터에 포함시켜, 너네가 한 것으로 쳐주겠다는 것이 세부 개념이다. 그러면 그런 기업에 전기를 만들어 파는 청정에너지 기업들이 돈을 쉽게 벌 수 있으므로, 넷제로 실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발상이다. 실제로 구글, 이케아,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펩시, 나이키, 레고 등이 발빠르게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구매하는 청정에너지 '인증서' 비용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기업들로 흘러 들어간다.
이 국제 약속은 돈을 많이 버는 기업들이 과거에 탄소배출을 싸질러놨던 잘못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이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차카게 살자'는 정신에 기초한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자발적인" 약속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간 분위기는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좋은 편이었다. 이러한 약속에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가 기업 평가에 있어서 ESG 투자와 직결되는 문제라(ex. 블랙록의 ESG 투자), 참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안 했다가는 투자금 다 빠져 나가서 망할 각오를 해야 했다. 글로벌 거대 경제 블록마다 자기들의 수출입 기준치를 계속 높이고 있어서, 이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물건도 못 팔게 된다. 사실 기업들은 이것을 부담으로 느낄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다.
빅테크 기업들을 예로 들어보자. 애플은 새로 지은 사옥의 전기를 100% 친환경 전기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폰 등을 생산하는 공장에서도 100% 청정에너지만 쓰겠다고 공언했고, 목표치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직접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것도 있지만 주로 녹색 프리미엄을 지불(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비싼 값으로 구매)하거나 인증서 구매(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임을 인증하는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충당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모아서 활용하면서 애플은 RE100 기준을 선도적으로 맞춰가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애플의 수익을 깎아먹지만, 청정에너지 산업 전반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어마어마한 자금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MS와 구글은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Ai와 클라우드 비즈니스를 선택했고, 서버를 식히기 위해서 바닷물 속에 담구는 등의 온갖 기발한 방법을 다 쓰면서까지 RE100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런 추세는 최근 각광받는 대화 생성형 Ai 때문에라도 더더욱 가속화 중이다. 알고보니 Ai를 돌리려면 엄청난 연산이 필요하고, 당연히 그만큼 전기를 많이 먹는다고.... 결국 앞으로 전기 에너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 화석연료 에너지가 줄어든 만큼에 더하여 - 더 많이 필요해질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에너지 자원은 곧 "힘"을 상징했고, 그렇다면 미래에는 청정에너지의 확보 그 자체가 새로운 권력이 될 거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겠다. 즉, 이런 대기업들이 꼭 지구를 살리자는 무슨 거창하고 선한 뜻에서만 이러는 건 아니고, 스스로에게도 필수적인 변혁이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다.
생산된 청정에너지의 보관 및 거래
이런 일들은 기본적으로 PPA(전력 직거래) 기반 하에 작동한다. 전기는 그 특성상, 쓰지 않는 전기는 그대로 버려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발전한 전기를 다 쓰거나, 아니면 남는 전기를 어디 저장해야 되고, 또 다른 곳에서 전기가 필요할 때 저장했던 전기를 부족한 곳으로 전달하는 등, 효율적인 거래 시스템이 붙어줘야 한다. 이것은 전력망 Grid 기술로 가능해진다.
전력망 그리드는 [연결] - [보관] - [거래]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연결은 그냥 쉽게 전깃줄이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되고, 보관은 배터리(#ESS)에 전기를 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거래의 개념이 붙으려면 정보통신 기술이 붙어줘야 한다. 얼마나 남았으며 얼마나 필요한지 측정하고(#AMI), 효율적으로 분배되는지 관리하는 시스템(#EMS)이 필요하다. (※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분들이 검색을 해보실 수 있도록 굳이 영문 약자 명칭을 적어놓는다.) 여기에 최근에는 Ai 기술이 접목되어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 시스템이 전 지구적으로 깔려서 낭비되는 전기가 없도록 한다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상황
자,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South Korea는 어떤 상황이며, 정부와 기업들은 뭘 하고 있을까? 한국은....... 하아... 자꾸 이번 시리즈에서 한국 이야기만 나오면 글을 더 쓰기 싫어진다. 내우외환. 이것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다.
한국은 세계 탄소배출량 7위를 찍는 국가이다. (* 참고로 상위 10개 나라가 전 지구 80%의 탄소배출을 다 하고 있음) 그러니까 GDP는 12등 정도 되는 애가 탄소배출은 어마무시하게 해서 7등까지 먹는 바람에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ㅠㅠ 게다가 한국은 탈탄소, 신재생에너지, 청정발전 등을 논하기 전에, 일단 "탈석탄"부터 해야 하는 처지이다. 국가 전력 전체의 45%가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무려' 7.2%에 불과. 이는 23% 정도에 달하는 선진국 평균 및 글로벌 평균 28.6%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 Update : 위 숫자들은 2022년 이전 데이터로서, 윤정부 들어선 뒤로 1년만에 급격히 악화되어 더욱 참담한 수준에 이르렀음.
한국의 가장 독특한 점은, 정부와 국민 모두 이걸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는 민관이 나서서 어떻게든 고칠려고 하고, 중국 같은 나라는 비록 관이 주도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실제로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탄소배출을 감축해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기후행동추적(CAT: Climate Action Tracker)에서 선정하는 "기후악당(빌런)" 국가 목록에, 한국은 버젓이(?)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BTS 어쩌고 하면서 국격이 한껏 높아졌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해외여행 하면서 여권 제시할 때 슬쩍 부끄러운 나라가 되게 생겼다.
물론 이게.... 난제이기는 하다. 우린 기술력은 최고인데, 정작 땅이 좁다. 청정에너지 확보에 근본적으로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풍력, 수력, 태양광 등 모두 넓은 땅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군 탓은 오일파동 때 그쯤 했으면 됐다....
여튼... 지금은 누구 탓을 할 때가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고, 어쨌거나 빨리 해결부터 해야 한다. 그만큼 절박하다. 뭐가 더 좋은지 계산할 때도 아니고, 하면 더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게임이 아니라, 좁아도, 짜실해도, 어떻게든 쪼가리라도 닥닥 긁어모아 합쳐서, 전체 파이를 키워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것도 천천히 하면 될 일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땅이 좁으면 건물 옥상, 농지, 간척지, 바다, 저수지, 양식장 등 어디라도 탈탈 털어넣어서 청정에너지 발전량을 늘여야 한다. 삼성, 현대, SK 등 RE100의 영향을 가장 많이, 치명적으로 받는 기업일수록 더더욱 노력해서,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이 분야 투자를 격하게 늘여야 한다.
다음 글 보기 : 기후위기 해결하기(7) - 탄소흡수 : 바다, 숲, 땅에서의 생태적 노력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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