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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에 처음 도착한 관광객이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곳은 단연코 이곳 해양 박물관이다. 개인적으로 전세계 3대 해양 박물관을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해양박물관 : Het Scheepvaartmuseum)
2. 프랑스 마르세유 (지중해 해양 유산 박물관 : Musée des civilisations de l'Europe et de la Méditerranée)
3. 이탈리아 제노바 (갈라타 해양 박물관 : Galata Museo del Mare)

세 도시 모두 역사적으로 바다를 주름잡았던 대표적인 도시들이고, 그들이 바다에 대해 가진 자부심만큼 박물관에도 힘을 빡 줬을 것이다. 규모 면에서나 시설에서는 미국, 영국, 호주 등의 박물관이 더 훌륭하겠지만, 아무래도 역사의 질곡을 훨씬 많이 겪은 도시들에 더 관심이 간다. 사실 2번은 아직 안 가봤지만 그만큼 기대가 크다. 전시 규모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해양박물관이기도 하다(전시물 10만 점 이상, 연간 방문자 80만 명 이상). 다음에 꼬옥 가야지!

제노바 여행자라면 왜 가장 먼저 해양 박물관부터 방문해야 하는지 잠깐 말하고 싶다. 솔직히 제노바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곳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여러 예쁜 도시들을 보다가 제노바에 온 사람은 지저분한 길거리와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 복잡한 골목길, 그리고 산만한 항구 뷰 때문에 관광 도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맞는 말이다. 아래 사진 두 장은 이틀간 제노바를 돌아다니며 찍은 가장 많은 사진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심지어 왼쪽 사진은 우리 숙소 들어가는 골목길이다. 별로 굳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어떤 도시든지 그 도시에 신속하게 애정을 붙이는 지름길은 그 도시의 역사박물관을 가보는 것이다. 밴쿠버 때가 그랬고, 시카고 때도 그랬고, 시애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노바는 역사 박물관이 마땅치 않았지만 해양박물관이 그것을 대신해준다. 이곳을 방문하면 제노바가 어떤 도시이며, 이 도시가 왜 지금 이런 모습인지까지 한방에 이해할 수 있다.

항구를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잠수함이 보이고 (뭔가 연상되는 숫자가 보이지만 그거랑 상관 없고 그냥 잠수함 번호임) 오른 쪽에 '갈라타 뮤지오 델 마레'라는 명칭이 붙은 건물이 보인다. 우리가 갈 곳이다.

1층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들어가면 이런 저런 안내를 해준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여기로 오면 잠수함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겠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입장하면 맨 먼저 현대의 제노바 위성지도가 보이며, 제노바가 얼마나 항구에 몰빵된 도시인지 바로 알게 해준다.

그리고 제노바 항구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렇게 부두 건설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초대형 그림과 인터렉티브한 키오스크, 그리고 디오라마 모형(아래)을 통해서 설명한다. 과거에 이런 공사가 얼마나 빡쎘을 것인지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찍은 사진은 대형 걸개그림의 극히 일부분이다.

제노바 하면 또 콜롬부스의 도시 아닌가. 콜롬부스의 각종 기록 및 친필 편지도 전시되어 있다. 편지 내용은 꽤 애처롭다.  탐사 프로젝트가 한창인데 하필 돈 줄이 끊겨서 괴로워하는 내용......

콜롬부스의 일련의 탐사 프로젝트를 표현한 그림. 덕분에 세계에 대한 서유럽인들의 지경이 넓어졌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땅에 이름 붙이며 키스하는 장면을 쪼꼬만 디오라마로 표현해 두었는데, 이걸 지켜보고 있었을 원주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되게 코믹한 장면이다. (물론 실제로 그 주민들은 무서웠을 수도 있겠다.)

바다를 장악한다는 것은 곧 바다 위에서 전쟁을 떠야 한다는 뜻이다. 함선과 항해술과 무기의 발전을 전시/설명하는 공간이 상당한 비중으로 이어진다.

더 넓은 바다로의 항해는 또한 지구에 대한 더 깊어진 이해로 연결된다. 각종 지도의 발전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전시한 공간. 천정은 쩍쩍 갈라지고 페인트가 벗겨졌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아래는 배를 만들고 무기를 장착하는 도크를 모형으로 표현한 것.

바다 소용돌이에 저항하는, 그리고 끌려가는 배들...

바다와의 싸움을 위한 처절한 노력이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이 박물관은 0층부터 한 층씩 올라가는 방식인데 몇 층 올라가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좀 지루했다. 그런데 계속 오르다 보니 찐 공간은 여기서부터였다. 바로 이민자들에 대한 공간이다.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이탈리아는 이민자(in & out 모두)의 나라이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전성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쳐지기 시작했고, 그런 역사가 쌓이고 쌓여 19세기 말부터 엄청난 이민자가 발생했다. 먹고 살 길을 향해서 해외로 - 특히 미국과 아르헨티나 등 신대륙으로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20세기에는 거꾸로 이탈리아로 이민 들어온 아프리카 /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정말 특별한 전시 장소였다. 우리 부부는 - 특히 국제개발학을 전공한 아내는 - 여기서 양손 엄지손가락이 척 올라갔다.

이민을 떠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하는 기획 전시공간. (좋은 아이디어였다.)
고압적인 공무원의 땍땍거리는 말투를 견디며 여권과 허가증을 받는 역할극을 유도하는 전시기법이다.

허가증을 손에 꼭 쥐고 배에 탑승한다. 여기서 나도 역할극을 해보았다. 아내를 부둣가에 두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나 홀로 배를 타봤는데, 그 순간 당사자가 아닌데도 그 느낌이... 기분이 묘하다.

선실 내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도록 꾸며두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이 비좁은 공간에 수십 명이 들어차서 오랜 날을 버텨야 한다.

여자들의 공간은 더욱 열악했다고 한다.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변변찮은 돌봄 없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죽어나갔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번엔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엔 이탈리아로 이민을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많은 인종이 지금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제노바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민자들은 주로 항만 노동자들이고, 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바로...

창밖에 보이는 저 지역, 우리가 숙소를 잡고 더럽다고 불평했던 바로 그 지역이었다. (정확한 동선에 맞춰 이곳 전시 공간에 창문을 뚫어두어서, 사진과 함께 실제로 저 지역이 보이도록 해놓았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관람 경험이었다.)

최근에 이탈리아는 이민자 문제로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업난이 생기자, 일부 정치권에서는 그 화살을 이민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박물관은 우리가 타국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저들도 우리 중 한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설득하고 있었다.

보트 피플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박물관은 이어서 이탈리아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었던 안드레아 도리아 호 해상 사고에 대해 상당한 규모로 전시해 두었다. 이곳은 한국인에게 어쩔 수 없이 세월호가 떠오르는 전시 공간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안드레아 도리아 호는 수많은 배들이 몰려와서 구조를 도왔다는 점...... 마음이 착찹해진다.

이제 거의 끝나간다. 자연스럽게 옥상 정원이 나타날 것만 같아서 계속 걸어가는데 이상하게 유리창이 뿌옇다. 청소를 안 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유리에 뭘 붙여서 반투명하게 만들었다. 아! 깨달음의 탄성이 나왔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꼭대기 층까지 가는 동안 일부러 시야를 가려두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보이는 장면들. 정면에 아까 그 동네. (왼쪽으로 조금 더 가면 우리 숙소)

지금 보이는 장면이 대충 어디쯤인지 알기 쉽게 그려두었다.

이제 박물관의 보너스로, 실제 운용되었던 잠수함 내부 탐방 순서이다. 매표소로 가면 안전모(노란 헬멧)을 준다. 좁은 잠수함 공간에서 이걸 안 쓰면 머리에서 피난다. 실제로 나도 한 번 텅 부딪혔다. 헬멧 없었으면 1땜빵 추가 각이다.

잠수함은 많이 봤던 거라서 특별하진 않았다. 하지만 제노바 해양박물관 그 자체는 제노바 방문자라면 누구든지 무적권 무족곤 추천이다. 특히 마지막 이민자 관련 코스는 정말 강추... 입장료 따위 생각하지 말고 지르시라.

진심으로 추천 드린다.


다음 글은 그렇게 해서 애정을 갖게 된 제노바 구도심의 골목골목을 싸돌아다닌 기록이다.

다음 글 : [이탈리아 9편] 제노바 - 구도심 구석구석 사진 찍으면서 돌아다니기 (tistory.com)

 

[이탈리아 9편] 제노바 - 구도심 구석구석 사진 찍으면서 돌아다니기

제노바에서 2박 3일 있으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두었다.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넓은 모니터에서, 창 크기 최대로 할 경우 ㅎㅎㅎ) 제노바는 정말 매혹적이고 지저분한 곳이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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