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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들이 워낙 사고를 쎄게 치고, 그 오명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바람에, 어디 가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들키기(?) 두려울 정도이다. 그렇다보니 요즘 더더욱 '제도화된 교회' 형태에 회의를 표하며, 보다 단순한 교회 모델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많다.
우리가 알다시피 기독교 전통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유기체이자 동시에 조직체이다. 교회는 성령 안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 질서 있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구조와 제도이다. 이는 신학 이전에 상식에 속한다. 조직과 제도는 교회가 혼란 없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필수 장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0장에서 교회의 권징을 다루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조직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과 구성원들의 영적 태도가 문제의 대부분이다. 제도는 본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보호하고 실현하는 수단이다.

신약 시대 교회들이 가정에서 모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의 특정 교회 형태가 초대교회의 유일한 원형이라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초대교회 역시 처음의 단순한 가정 모임을 넘어 점진적으로 제도적 틀을 갖춰 나갔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공적인 예배, 성찬, 그리고 필요에 따라 장로와 집사를 세우는 과정도 있었다. 그것을 타락으로 보아야 하나? 초대교회의 순수성이 훼손된 것인가? 이는 오히려 교회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그래야 함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성도들의 자발적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적 진리다. 그러나 이것이 직분과 제도의 불필요함으로 이어지거나 교회의 질서를 간과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위로부터나 아래로부터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 지체가 조화롭게 기능할 때 일어난다.

'에클레시아'는 신약 성경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다. 이 용어는 단순한 모임이나 공동체를 넘어선다. 특정 시대, 특정한 모임 형태만이 순수한 에클레시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체로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협소하게 만든다. 교회는 역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각각의 형태는 그 시대와 상황의 필요에 따라 나타났다. 모두 나름의 장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시대 전체의 계승자로서 바로 이전 세대의 결실을 무시한 채 수천 년의 간극을 뛰어넘을 수 없다.

건강한 교회는 제도와 영성, 질서와 자유, 리더십과 참여가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엇보다 겸손과 자중, 적정과 절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