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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 학습서를 개발한 경험을 토대로

들어가며 

 

   

▲ 황희상

'특강 소요리문답' 저자

고려신학대학원 신학과 M.A.

필자는 지난 2년의 시간동안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학습서(이성호 저, "특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흑곰북스)의 편집자를 맡았다. 기획 단계부터 원고의 분석과 페이지 구성, 그리고 최종 출간 작업에 이르기까지의 업무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이 작업은 큰 도전이었으며, 출판사로서도 1억 가까운 비용이 투자되는 커다란 프로젝트였다. 한국의 기독교 출판 상황에서 교리문답 학습서를, 그것도 아직까지는 대중적으로 생소하기 그지없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학습서를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어 출간한다는 것은, 좋게 말해서 모험이요 나쁘게 말하면 낭비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날마다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하는 이러한 계산적인 생각을 애써 지우면서 계속해서 출판 작업에만 매진해야 했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국 교회의 교육 현장에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학습서가 당장,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회현장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가르칠 때 발생하는 고충 

2년 전에 특강 소요리문답(황희상 저, 흑곰북스)을 출간한 뒤 독자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중에는 신기하게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학습서도 내주세요.” 라는 요청이 무척 많았다. 당시에만 해도 그런 요구가 있을 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필자는 꽤 당황하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잘 가르치는 문제에 대한 현장의 필요(Needs)가 크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수년 전 신대원 재학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모 교수님의 수업 시간이었다. 커다란 강의실에 목회자 후보생 120명이 앉아 있었다. 교수님이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지금 사역하는 교회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가르치는 사람 손 들어 보소.” 그러니까 120명 중에서 약 열다섯 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것이 학기 초의 일이었다. 생각보다 많다고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학기 말이 되었다. 교수님이 또 물으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딱 두 명이 손을 들었다. 필자의 기억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하여튼 2~3명에 불과했다. 도대체 그 한 학기 사이에 교회 현장에서 다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포기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 포기한 것이다. 즉 가르치는 사람도 힘들게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도 이것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교회에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을 수도 있다.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짐작이 된다.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준비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습 교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신대원에서 교리교육 방법론을 가르친 것도 아니다. 교회 현장에서는 교리문답에 대한 인식 자체도 빈약하다. 교리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있는 것이라고는 교리문답 본문과 몇 권의 설교집인데, 그것을 가지고 곧장 교육에 들어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교리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일부 교역자가 용감하게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 사례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은 고스란히 일반 신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을 못 받으면 그만큼 피교육자에게만 손해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교리교육 현장에는 두 가지 요소가 긴요했다. 첫째, 가르치기 쉬운 교재. 둘째, 교리를 가르치는 방법. 이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고, 그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과 재정의 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체 구조를 보여주는 학습 도구의 필요성 

새로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학습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했는데, 이 글에서는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전체 구조를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는 달리 분량이 꽤 많다. 그리고 반복되는 표현이 많고, 현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 체계가 쉽게 드러나는 문서가 아니다. 따라서 인과관계 등의 논리적 흐름에 따라 내용을 재구성하여 시각적으로 드러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교육자들은 물론 가르치는 사람도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지금 우리가 어느 부분을 공부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슨 맥락에서 지금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도무지 알기 어렵다. 일부 뛰어난 교수법을 가진 사람만이 겨우 진도를 나갈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지루해 하는 피교육자들을 달래가며 억지로 몇 달을 끌다가 결국에는 모임이 깨지고 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전통적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교육은 본문에 표기된 52주차 구분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적 상황에 이러한 주차 구분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우선 152주 동안 매주 빠짐없이 교리교육을 할 수 있는 교회 현장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현대인의 복합적인 궁금증을, 129개의 전체 문답을 52주로 나누어 한 주간에 2~3개씩 다루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년 전에 특강 소요리문답을 만들 때 사용했던 마인드맵(mind-map) 기법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분석에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을 읽다가 문맥이 전환되는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주제가 시작된다고 보고, 전체 본문을 몇 개의 큰 가지와 작은 가지로 구분한 뒤, 시각적으로 배치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방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전체 구조를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를 만든 것이다. 이 지도는 특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별책부록으로 만들어서 책에 첨부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교육할 때는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를 현장에서 사용하여, 피교육자들이 전체 구조를 먼저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꼭 필자가 만든 지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파워포인트나 프레지, 커다란 종이를 벽에 붙여서 직접 그리는 방식 등으로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전체 구조를 알고 본문을 공부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무작정 제1문부터 시작해서 매주 할당된 부분을 새롭게 맞닥뜨리면서 공부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한 밤중에 모르는 시골길을 갈 때 네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하는 것과 그냥 운전하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논리 흐름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교리문답을 교육하다 보면 피교육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이 계속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그 질문은 바로 다음에 공부할 내용일 때가 많다. 교리문답이 애초에 만들어질 때부터 그런 기본적인 논리적 연관성을 가지고 문답의 순서가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교역자나 교사가 만일 전체적인 구조를 그 머릿속에 품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질문을 받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질문자에게 어떤 지식이 부족해서, 혹은 어떤 부분에 혼동이 생겨서 이러한 질문이 나오는지도 곧바로 알 수 있다. 이것을 알고 있는 교역자/교사는 자연스럽게 여유가 넘치고, 금방 피교육자의 존경을 받게 된다. 심지어 다음 시간을 무척 기대하며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체계를 잡고 있지 못하다면? 민망한 것은 둘째 치고, 어떤 질문 앞에서 한 번 막히면 다른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그 의심의 벽을 치고 들어갈 방도가 없다.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교리교육은 논리적 흐름과 문맥을 파악하며 체계를 잡도록 해주는 것이 관건이다. 한 번 체계를 정리해 주면 머릿속에 개념이 잡히므로, 그 다음은 알아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이는 필자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 수차례 경험한 바이다. 피교육자들의 과제물이나 요약문 등에 이러한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교리문답을 쪼개어 살피고 구조화시키면서 큰 개념부터 차근차근 잡아주면, 세부적인 부분은 나중에라도 알아서 챙겨가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했다. 거시적인 눈을 길러주고, ‘생각하게해주는 교육의 효과라고 본다. 더 이상 교리문답을 단순히 외우게만 만드는 주입식 교육이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들의 근본적인 신앙교육에 필요한 진리들을 잘 담고 있는 커리큘럼이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가르치는 여부를 고민할 단계를 뛰어 넘어서, 가르치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하는 방법론의 개선과 효과적인 전달 방식을 놓고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마땅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교육은 투자라고들 말한다. 오늘날 교회교육 현장에 교리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전통적인 교리문답보다 더 뛰어난 커리큘럼을 창조할 실력이 아직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인정한다면, 지금이라도 전통적 교리문답의 균형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투자에 교단 차원의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교단 안에서 교회마다 가르치는 것이 서로 달라서 사실상 성도들이 서로 다른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을 속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더욱 가열차게 도전해 오는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이 시대에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일과, 진리의 기둥이자 터로서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일과 다음 세대를 기르는 일에 온 교회가 함께 협력하는 아름다운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