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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간 목적 중에서 첫 번째가 바로 바티칸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경험'이라고는 했지만 단순한 투어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도 보여주기 식으로 꾸며놓은 거란 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라도 경험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종교개혁사 책을 쓰기 위해, 종교개혁 이전이 과연 어떠했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바티칸 투어는 나에게 필수 코스였다.

담 너머가 바티칸이다. 이탈리아 내부에 설정된 국경선인 셈이다. 여기 말고도 전세계에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되고, 로마 시내에도 몇몇 성당 구역은 바티칸 소유라고 한다.

 

하지만 단 하루를 써서 바티칸을 투어하는 것에도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제한된 배경지식으로는, 가서 뭘 본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는 바... 내 선택은 검증된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유로 자전거나라 투어"에서 운영하는 "바티칸 전일 투어"를 예약했다.

대략 위의 화살표 방향으로 투어가 진행된다. (정확히 그린 건 아니다.) 바티칸의 주요 지점들은 얼추 다 보는 셈이다.

참고로, 이 자전거나라 투어는 신뢰하는 친구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는데,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바티칸 투어 상품과 함께, 폼페이와 포지타노 등을 당일치기로 둘러보는 "남부 환상투어"라는 상품도 신청했다. 그리고 타사와 비교를 위해 프랑스에서는 파리 시내 투어를 또 다른 가이드투어 업체로 선택해서 예약했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자전거나라의 압승이다. 가이드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됐다.

입장하자마자 건너편에 배경으로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돔이 보인다.
첫 코스는 피나코테카. 바티칸 미술관이다.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가이드의 수준 높은 설명도 한 몫 한다. 
진심 충격적이었던 카라바조의 작품, "매장". 그림에 이런 힘이 있구나 싶었던... 화가의 더러운 사생활과는 별개로, 정말 그의 작품 실력은 대단했다.


미술관은 노플래쉬 상태로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여기서 찍은 더 많은 사진들이 있지만, 예의상 블로그에 안 올리려 한다. 무엇보다, 미술 작품은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직접 가서 봐야 한다. 유럽에 가실 분이라면 이탈리아에 꼭 가셔야 하고, 이탈리아에 가실 분이라면 로마에 안 가실 수 없고, 로마에 가셨다면 바티칸을 빼놓을 수 없고, 바티칸에 가셨다면 피나코테카(Pinacoteca) 회화 미술관을 빠뜨리지 마시기를!!!

이번엔 조각상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역시, 수준 높은 가이드 해설이 함께 한다면 보람찬 시간이 될 것이다. ^^ 저 팔의 뒤틀림에 얽힌 이야기라든지, 토루소가 무엇인지, 토루소의 등씬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등을 현장에서 듣는 맛이 쏠쏠하다.
좁은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 복도 전체가 사실상 박물관이자 엄청난 전시물 그 자체였다. 사람이 많아서 차분히 서서 감상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가이드 투어의 유일한 단점은 내가 멈춰서 더 보고 싶을 때 못 본다는 점인데, 장점이 워낙 강렬해서 단점이 충분히 상쇄되고 남는다.
지도 갤러리(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 복도에는 세계지도가 가득했는데, 전 세계의 주교좌 성당 위치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글로벌 경영"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일찌감치 보여줬던 로마 교황청 ㅎㄷㄷㄷ
교황청의 집무 공간들에 이르면, 주문 제작해서 벽화나 천장화로 그려진 유명한 그림들이 보인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할 경우, 방마다 주요 그림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혼자 왔을  경우, 아마도 수시로 폰을 만지작 대면서 검색을 해야 할 것이다. '어! 저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뭐더라? 아~ 궁금해!!!' 하면서 ㅎㅎㅎ

 

이후에, 시스티나 소성당(Sistine Chapel)에 들어가서 벽화도 보고 천장화도 보고 그랬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라서 아쉽다. (사실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몰래 한 장 찍기는 했는데, 매너는 아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바티칸 대성당 앞에서 가이드 투어를 일단락 하고 주요 동선을 안내 받은 다음, 드디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우리는 마감시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맨 먼저 돔(두오모, 쿠폴라)에 올라가기로 했다. 엘베(유료)를 타면 계단을 조금 '덜' 오를 수 있다. 역시 이런 데서는 돈이 최고다. ㅎㅎㅎ

엘베에서 내려서 돔 안으로 들어간다.
하악....
돔 안쪽에서 대성당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엘베 타고 올라온 중간지점부터도 계속해서 한참을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게 좀 난코스이다. 돔의 안쪽 반구 부분을 타고 올라가는 식이라 점점 기울기가 생긴다. 다리도 아프고, 좁은 통로에 답답함이 느껴진다. 폐소공포증 있는 분은 살짝 힘든 시간이 될 듯하다.
그러나 다 오르면, 인내의 열매는 달다!!!
바로 이 장면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하는 열쇠구멍 모양의 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참으로 작위적이지만, 이런 걸 만들어낸 것 자체는 대단하다. 인정해준다. ㅋ
이 높은 곳에 기념품샵이 있는데, 심지어 이곳 점원 중에는 한국인 수녀들도 있다! 역시 관광대국의 클라쓰! ㅎㅎㅎ
다시 내려와서 대성당 내부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루 중 먼저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보고, 쿠폴라에 올라간 다음, 차분하게 대성당을 보는 순서가 좋은 듯하다.

돔 아래에는 글씨가 적혀있다. “TV ES PETRVS ET SV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M.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VM(“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부분 인용)” 물론 잘못된 성경해석이긴 하지만(천국 열쇠는 베드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로마 교황청이 전용할 자격이 없음) 어마어마한 작품이다. 이게 쪼끄매 보여도, 돔의 엄청난 높이 때문에, 아래에서 읽을 수 있도록 글씨를 크게 써야 한다. 글씨 하나의 크기가 6.5피트(2m) ㄷㄷㄷ 저기 보이는 천사상도 실물크기의 3배로 제작했다고 하니 5m가 넘는 셈이다.

성당 동쪽 끝에는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그 빛 앞에 비둘기 형상이 있다. 비둘기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한다. 정교한 설계이다.
이곳은 개념상 '성당'이므로 (개신교의 예배당과 다름) 신비감을 주기 위해 곳곳에 빛을 잘 활용했다.
사진으로 보면 그저 그래도, 저 공간이 주는 경외감과 신비감은 나처럼 종교개혁사 책을 쓴 사람으로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기법을 사용한 최종 목표가 바로 그것이기에...
저걸 돌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눈 앞에 두고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피에타" 상. 참고로,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보이는 예수의 얼굴 표정은 정말 정말 기가막히는 예술 작품이다. 직접 볼 수는 없어서 사진으로 봤는데,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였다.. 대단쓰...
회랑 가장자리에 기둥과 기둥 사이에 마련된 채플실마다 누군가(?) 누워있고, 카톨릭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기도하고 있다. 이런 것은 아무리 이해하고 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런 질감표현과 역동성을 대리석 조각으로 이뤄냈다니 놀라울 뿐이고 ... 아니, 대리석은 돌이잖아??!? 돌로 이런 걸 왜 만들어? 왜?? 어떻게???
신비감을 주기 위한 노력의 '디테일'은 현대에도 계속되는 듯하다. 스피커까지 대리석 색깔로 깔맞춤 했다..
지하에 매장된 베드로 묘 바로 위에 설치된 청동 조형물 덥개(발다키노)이다. 베드로 대성당이 베드로의 묘 위에 지어졌고 쿠폴라가 그 뚜껑(?)이라면, 이것은 속뚜껑인 셈이다. 17세기, 베르니니의 작품. 종교적 열정은 이해하나, 이걸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사치품이다. 이것 땜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말이 있으나, 시대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니 패스하자. 굳이 따지자면 베드로 대성당 건축(개축) 자체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었으니, 차라리 그쪽으로 원인을 돌리자.

 

밖으로 나왔다. 열쇠구멍 모양의 광장에 오후 햇살이 가득 담기고 있었다.
바티칸 경비는 전통적으로 스위스 용병이 맡는다. 이것도 다 역사적 스토리가 있다.

 

바티칸을 떠나며...

장소 그 자체로서도 어마어마한 곳이고, 알아야 할 - 알고 싶은 정보량도 엄청나서, 다음에 로마에 온다면 또 와보고 싶다. 그때는 투어에 속하지 않고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해서 단독 투어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곳의 '경험'은 내 인생의 여행 중에서 짜릿한 경험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 아래 링크는 바티칸에 대해서 종교개혁지 탐방 시리즈로 기고했던 글이니 함께 참조 바란다.

 

애증의 바티칸 - mytwelve

바티칸을 보기 위해 가장 편리하고 적당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개인적으로 티켓 끊고 들어가서 돌아다녀도 상관은 없지만, 숙련된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속 편하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바티칸은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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