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평택에 내려갔을 때다.
평택역 앞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소요리문답 학습서를 쓰는 젊은이가 있었다. 마침 교재가 필요해서 책을 한 권 사 가지고 가려고 빨리 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교리교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젊은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써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고쳐보고 저리 고쳐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교정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쓰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프린트 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쓴다는 말이오? 젊은이,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젊은이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써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교회교육 교재를 제대로 만들어야지, 대충 찍어내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노트북을 숫제 배 위에 놓고 태연스럽게 동영상을 다운 받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마우스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프린트 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원고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젊은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젊은이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평택역 앞 파리바게뜨를 바라보고 섰다.
교회에 와서 소요리문답 교재를 내놨더니 전도사들은 제대로 된 교재가 나왔다고 야단이다. 기존 공과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전도사들 설명을 들어 보니, 교재가 너무 어려우면 성도들이 공부하다가 지치기를 잘 하고 신학생이라도 힘이 들며, 교재가 너무 쉬우면 중요한 교리를 전달할 수 없고 머리만 굵어지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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