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뤼겔(피터르 브뤼헐)의 이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초딩 때 집에 있는 삼성판 '세계의 명화' 6권 시리즈에서 였다. 판형이 무척 크고 인쇄 품질이 좋으며, 중요한 작품은 부분 확대 사진까지 충실하게 실어두어서, 마치 박물관에서 코를 가까이 대고 관람하는 듯한 효과를 주는 도록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그림을 무심코 한 장씩 넘기다가 이 작품에서 어린 나는 그야말로 까무라치도록 놀라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때의 두근거리던 심장의 느낌이 기억날 정도다. 도록은 이 그림의 몇 장면을 확대해서 추가로 실어두었고, 나는 거기서 아마 더 큰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그만큼 디테일에 있어서 소름끼치도록 세밀한 작품이다. 구글링을 해보시면 가로픽셀 2418짜리 이미지를 다운받을 수 있으니 구해서 확대해보시기 바란다.
작품 해설
주제는 "죽음"이다. 보통 작품명을 "죽음의 승리"라고 번역한다. 주요 모티브는 흑사병이지만, 꼭 흑사병이 아니더라도 중세 후기의 유럽은 인프라의 붕괴와 죽음이 일상이었다. 물론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서 플랑드르 지방을 침략한 에스파냐 군대를 빗댄 것으로 보기도 한다. (※ 이 부분은 종교개혁사 공부가 별도로 필요함)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린 황량한 전쟁터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들이 좌상에서 우하 쪽으로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림의 디테일을 몇 시간이고 보면서, 광주의 초딩은 수차례 몸을 떨었었다.
1. 좌상부터
산 너머 붉게 물든 하늘은 석양이 아니고 거대한 불길이 하늘까지 물들이는 장면이다. 석양은 반대쪽 하늘이다. 이러한 죽음이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온 나라를 휩쓸고 있음을 보여준다. 들판에 풀은 한 포기도 없고, 그나마 남은 앙상한 나무조차 해골들이 뽑고 있다. 희망의 그루터기마저 남기지 않는 가혹한 죽음, 흑사병이다. 바다에는 난파선들이 보이고, 먼 바다로 나간 배에서조차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절망이다. 마을과 해안을 지키기 위해 건축한 망루도 이미 해골들이 꼭대기까지 점령했다. 항구에서 해골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온다.
2. 오른쪽 언덕에는
수레바퀴 처형대와 교수대에 시체가 방치되어 까마귀의 먹잇감이 되고 있고, 여전히 누군가의 목을 치는 해골이 보인다. 희생자는 헛되이 기도하고 있다. 나무등걸 속으로 숨으려 했던 누군가는, 그러나 어김없이 발각되어 등에 창이 꼽혀 죽었다. 도망치던 남자는 붙잡혀서 절벽 아래로 거꾸로 끌어당겨진다.
3. 다시 맨 왼쪽으로 와서
왼쪽 위에는 죽음의 종을 치는 해골 둘이 보이고, 곁에서는 다른 해골 둘이 매장된 관에서 해골을 꺼내고 있다. 이곳은 본래 마을의 성채 역할을 하는 건물인데 거꾸로 죽음의 전사들을 증식시키는 배아가 되어버렸다. 개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수중 생물도 올라와서 저주를 토해내고 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서 여기저기 쓰러지고, 아마도 생전에 경건한 사람들이었을 토가를 입은 해골들은 이 끔찍한 장면을 바라보며 마지막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을 불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해골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듯이 주저앉아 진저리를 치고 있다.
4. 그림의 중앙에는
이 마을에서 죽음을 막아보려는 최후의 보루였던 성벽이 뚤리고 죽음의 전사들이 큰 낫을 휘두르며 이미 귀신이 된 듯한 붉은 말을 타고 사람들을 몰아부치고 있다. 미쳐버린 말은 사람을 가차없이 발굽으로 밟는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과 아직 숨이 붙은 사람들이 뒤엉켜, 해골들의 그물질에 쓸려오고, 그 기세에 밀려 사람들은 넘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떠밀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향해 호소해보지만 듣는 이는 없고 해골들의 조롱 및 확인사살만 뒤따른다. 그 틈에 한 신사의 겉옷 단추를 푸르는 해골의 바쁜 손동작도 보인다. 그들은 컨테이너 박스와 같은 감옥으로 속절없이 몰려 들어가는데, 지레에 연결된 감옥 문을 신이 난 해골들이 힘껏 당겨 열고 있다. 그들의 생명 하나하나는 돈으로 환산되어 쌓이고, 압도적인 숫자의 해골군대는 관짝을 방패삼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항할 수 없는 압박감이다.
5. 다시 그림의 좌하단을 보면
무덤에서 파낸 해골을 잔뜩 실은 수레가 다가오는데 해골과 램프와 까마귀와 비파가 저승길을 재촉하는 듯하다. 생존자들을 깔아뭉게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기어가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죽음을 선고하고 있다. 그 아래는 심지어 이곳의 성주(왕)조차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데 해골이 그에게 죽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모레시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홀을 움켜쥐고 버둥거린다. 그 와중에 그가 모았던 재물은 해골 병사의 수중에 들어간다. 아기를 안고 있다가 쓰러져버린 딸을 보며 절망하던 어머니도 정신을 잃었다. 이미 염을 마친 시체를 관짝째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들도 보인다. 소지품을 모두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진 자의 목에 칼을 그어 마지막 숨통을 끊는 해골도 보인다.
6. 그림의 우하단은
가장 다이내믹하다. 몇몇 기사와 무사들이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으나 그들에게 희망은 없어보인다. 이미 바닥에 쓰러져서 한쪽 팔에 쥔 부러진 칼로 방어를 해보지만 1초 뒤에 거대한 낫에 희생당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인다. 그 와중에, 방금 전까지 신나는 파티 현장이었던 곳은 함께 놀고 있던 친구들이 사실은 이미 죽은 해골이었음이 밝혀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박판과 주사위 놀음판이 엎어지는 순간이 묘사된다. 그 틈에 식탁 밑으로 도망치는 광대와, 술을 부어버리는 해골, 그리고 방금까지 먹던 맛있는 음식이 사실은 해골이었음이 드러나자 경악하는 여자와, 너무 늦게 칼을 빼어들려 하는 무기력한 남자, 그리고 죽음이 코앞에 와서 이미 자신들과 함께 놀고 있었음을 아직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의 두 사람까지..... 그들은 혹시 나와 당신의 모습은 아닐지. 해골들은 이 웃픈 장면을 낄낄거리며 구경하고 있다.
이 작품을 다시 본 것은 재작년 마드리드에 갔을 때 프라도 미술관에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은 화폭에 이런 엄청난 드라마가 담겨있었다. 코로나와 흑사병은 유사점이 많지만 시대가 다른만큼 인류의 대응도 이제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변치 않는 무언가는 어쩌면 인간 군상들 안에 DNA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팬데믹 시대에 오랜만에 이 그림을 다시 보며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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