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총회의 위기"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총회는 <교회의 권징>에 대한 수많은 토론 끝에, 참석자들의 합의된 입장을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였고, 이것을 문서로 만들어서 의회에 보고했다.
잉글랜드 의회는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회는 기본적으로 권징의 권한을, 의회의 지시를 받는 공권력의 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총회의 결론은 그것이 교회(장로회:당회)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식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의회는 발끈했다. 당시 의회의 수많은 분과 중의 하나에 불과한 "종교 위원회"였던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감히" 의회의 권위에 토를 달았다고 생각한 의회는, 총회의 몇몇 총대들에게 일종의 경위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총회가 모이는 장소까지 찾아와서, 도도한 태도로 공개적인 질책까지 하고 갔다. 의회가 총회를 모이게 했으며, 해산할 권한도 의회에 있다는 것이었다. 수년째 매일같이 그야말로 헌신적인 노력을 해오던 총회, 특히 스코틀랜드 총대들은, 뜻밖의 이 사건으로 인해 심한 모욕감과 함께 좌절감까지 느끼게 된다.
실로 의회의 태도는 아주 오만한 것이었다. 총회를 개최할 때만 해도 의회는 총회의 합의사항을 겸손히 듣고 받아들이겠다며 추켜세웠고, 그것이 그들의 초심이었다. 하지만 내전에서 의회파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면서부터, 급한 불을 꺼서 여유를 찾은 의회는 마음을 바꿔 총회의 결정에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날의 사건도 바로 그런 정국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의회는 자신들의 총회를 거의 주도하다시피 하던 스코틀랜드 총대들을 슬슬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권징이 누구 권한이냐 하는 문제는 의회가 총회에 조언을 구했던 바이다. 이런 식으로 의회가 권위를 내세울 것이었으면 애초에 총회를 소집할 필요도 없지 않나. 기본적인 예의까지 상실한 의회의 이러한 태도에, 총회는 한순간 술렁였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날로 파장 분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도 하나님께서 총회를 지키셨다. 다행히 다수의 총대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치모범>, <예배모범>의 완성과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서>의 작성이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총대들은 의회로부터 받은 모욕을, "참아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억울하게 부당한 처우를 받은 것보다도, 괘씸하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보다도,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손에 맡겨진 더욱 중요한 사명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들은 겸손하게 의회의 처분을 받아들이고, 하루동안 금식하며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더욱 가열차게 작업을 계속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비롯한 표준 문서들은 웨스트민스터 총대들의 이와 같은 존경스러운 절제심의 결과물이다. 그들이 이런 마음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답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교회에 대한 사랑. 바로 사랑의 힘이었다.
오늘날 교회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우리도 이 마음을 품어야 한다. 비록 인정받지 못해도, 때로는 중상모략에 허황된 비난을 당하더라도, 대의를 위해 그것을 받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열 받아서 판을 엎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땐 하루쯤 금식하며 기도하면, 주께서 더 넓은 시야를 주신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우리가 겪도록 주시는 일이요, 어쩌면 훗날 상급을 위해 미리 살짝 맛보여주시는 자그마한 선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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