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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모습입니다. 많이들 접해보신 그림이지만, 제 나름의 작품해설을 해보겠습니다. 재미로 보시기 바랍니다. ^^

 


이 그림은 워낙 현장감이 있어서, 마치 기념사진처럼 당시 누군가가 기록용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19세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 목적을 위하여 (양심의 자유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화가에게 위탁하여 그린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는 '상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 없던 인물도 '의도적으로' 그려넣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면구성이라든지 디테일한 묘사 속에서 작가의 기발한 재치와 숨은 의도를 발견하며,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영국의 종교개혁 배경과 청교도혁명, 그 결과로 이루어진 크롬웰의 통치 10년과 그 후 왕정복고에 대한 지식이 좀 있는 분은 더욱 즐거운 관람(?)이 되실 것입니다.

우선, 이 그림에는 전체적으로 좌우의 인물들이 서로 대치하는 긴장감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그 주연으로 작가가 선택한 인물은, 왼쪽에 높은 의자에 앉아서 성경책을 쥐고 응시하고 있는 '윌리엄 트위스' 총회 의장과, 오른쪽에 일어서서 발언하고 있는, 독립파 중에서도 학식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던 '필립 나이'입니다. 왕정복고 이후 대표적으로 크게 핍박을 받았던 필립 나이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이 그림의 제목은 The Assertion of Liberty of Conscience By the Independents at the Westminster Assembly 인데, 말하자면 필립 나이가 양심의 자유를 총회의 총대들에게 주장하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화면 왼쪽의 인사들과 오른쪽 인사들의 대립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빛이 왼쪽 창에서 들어오고, 따라서 주로 왼쪽 사람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화가는 적어도 오른쪽의 발언자 쪽에 감정이입이 되어 있습니다. 얼굴에 그림자가 있는 사람은 어쨌든 부정적인 묘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뒤에서 좀 더 언급하겠습니다.

의장의 오른쪽(중요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바로 스코틀랜드 총대들입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배치했다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의 그들의 위상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이들의 역할은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표정을 보면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 발언자의 주장이 불쾌하거나, 적어도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특히 '사무엘 러더포드'는 양팔을 들어 거부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마치 "나는 받아들일 수 없소" 하고 말하는 듯하고, 그 왼쪽 옆 사람은 그의 눈치를(견해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 왼쪽에 있는 젊은 '조지 길레스피'는 그의 유순한 성품을 나타내듯이 턱에 손을 괴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의 중앙에는 가장 크고 화려하게 묘사된 '올리버 크롬웰'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이렇게 부각된 것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전반적인 입장은 크롬웰과는 달랐으나, 그 열매는 크롬웰이 가져갔고, 물론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바람에, 장로교 유산은 사실상 그 후로 잉글랜드에서 완전히 일망타진 되다시피 하고, 스코틀랜드에서만 빛을 발합니다. 크롬웰의 불안한 표정,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람에게 뭔가 자문을 구하는 모션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크롬웰 간의 긴장을 보여주고, 총회 이후 크롬웰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리고 그 이후 다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을 때의 온갖 광풍을 예고합니다.. 여기에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마치 거울처럼 비슷한 복장으로 대비되는 자리에 스코틀랜드에서 온 워리스턴 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크롬웰의 반대편에서, 보는 사람(우리들)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그림 기법입니다. 이는 화가가 스코틀랜드 총대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 줍니다. 또한 양자가 대립했던 역사적 배경을 암시합니다. 특히 두 사람은 긴 칼을 차고 모자까지 들고 불편하게 앉아있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또, 가운데 식탁에 둘러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하거나 인상을 찌푸린 것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발언자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완고한 입장을 견지하려는 모션(의자 깊숙히 등을 대고 물러서거나, 상의를 꼬옥 쥐고 있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발언자를 노려보는 등...)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특히! 저 식탁보의 컬러는, '시기'를 의미하는 초록색이란 점까지 ㅎㅎㅎ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서 가장 특이하고 재미있는 것은, 화면 속의 인물 중 핑크빛 옷을 입은 ‘헨리 베인’ 경입니다. 그의 시선은 특이하게도 그림을 보는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 벌어지는 일과는 직접적으로 상관 없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이쪽을 보는데, 이것 역시 독특한 그림기법 중 하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러한 시선처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관람자의 감정이입을 노리는 것입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네 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Tom Jones 1963)”에서 사용했고, 최근에 영국의 블랙코미디 드라마 '오피스'에서도 사용한 기법인데, 등장인물이 종종 카메라를 흘깃 쳐다봐서,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 현장에 내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도 그들의 친구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장치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이 그림의 화가가 바로 저 사람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화가는, 총회에서 '약자'에 해당했던(것으로 자신이 판단하고 있는) 독립파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감상자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유독 필립 나이의 바로 옆에 앉아있다는 점도 그런 추정을 하게 합니다. 실제로는 나중에 독립파가 정권을 잡아 장로파가 핍박을 받았고, 왕정복고 이후로는 독립파나 장로파 가릴 것 없이 핍박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아무튼 이 화가는 그러한 핍박을 받은 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장난스러운 장치인데, 그림의 맨 우측 가장자리에 벽난로를 등진 두 젊은 사람이 바로 존 밀튼과 존 오웬입니다. 이들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은 아니나(나이가 어림), 워낙 유명한 17세기 후반의 청교도로 대중적인 작품을 썼던 인물이라서 그림 속에 등장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기에, 저렇게 구석에 마치 '합성처럼' 처리했네요. 마찬가지로 왼쪽 창가에, 빛이 산란되어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들 중에 유독 까만 모자와 상의 칼라가 눈에 띄는 인물이 유명한 리차드 백스터입니다. 역시 이 사람도 현장에 없었습니다만 유명인사라서 등장했습니다. 일종의 깔대기?? ㅎㅎㅎ

이상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제 해설을 마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그림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곳곳에 담겨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역시 19세기는, 19세기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