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사우디아 항공을 첨 타봤다. 중동 항공사들은 주로 국영이다. 그래서인지 뭔가 품격(?)이 느껴지고, 고급스러운 편이다. 에티하드를 탔을 때 좋았던 기억에 사우디아 항공도 좋겠지 하고 타봤는데, 역시나 딱히 흠잡을 게 없고, 식사도 맛있고, 편안했다. 다만 내 쪽을 담당했던 남자 승무원은 고객 응대가 약간 어설펐고, 식사 메뉴 착오 등 실수도 많았다. 이건 승무원 각자 케바케일 듯.
사우디 경유해서 로마까지... 전쟁 전에는 러시아 항로 또는 북극 항로를 이용할 수 있어서 직항으로 가는 편이 저렴하고 운항편도 많았지만, 이제는 무조건 경유를 해야 되어서 시간도 많이 걸린다... 돈은 돈 대로 더 들고, 몸은 힘들고... 누가 얼른 푸틴 좀 잡아가면 좋겠다.
개꿀~. 마침 비행기에 승객이 적어서, 우리 둘은 각자 좌석 3개씩 차지하고 무려 11시간을 아~주 편안하게 누워서 타는 행운을 얻었다. 비즈니스석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ㅎㅎㅎ
사우디아 항공은 에티하드 때보다 종교성이 훨씬 더 강했다. 일단 출발하면서 기내 방송으로 '알라'에게 비행의 안전을 위한 기도를 하고 시작한다. ㅋㅋㅋ 승객 중에 다양한 종교인이 있을 수 있을텐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 본다. 게다가 비행기 안에 '기도처'가 꼬리 쪽에 널찍히 마련되어, 이슬람 신자들이 수시로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기내 화면 서비스에도 하루 중에 기도할 시간 안내 및 심지어 지금 메카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 등의 신앙정보(?)를 끊임없이 안내해주고 있었다.
24시간 중에 6회에 달하는 기도 시간 표시. 일출 기도 때 특히 분주했다. 그리고 다들 메카의 방향까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굳이 신경쓰지는 않는 듯했다. 주로 비행기 진행 방향 앞 쪽을 보고 절했다.
이렇게 수시로 사람들이 와서 커튼을 치고 기도한다. 대부분 조용히 절을 하고 속으로 기도하지만 가끔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 사람이 모여서 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실례가 될까 하여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눈치 빠른 승무원이 고갯짓으로 괜찮다며 알려준다.
다시 비행기 갈아타고 6시간 더 날아서 로마 피우미치노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 도착. 이탈리아도 쉥겐조약 회원국가라서 대한민국 여권의 힘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식간에 입국했다. 짐을 찾고 곧바로 예약한 렌터카를 수령하러 갔다. 그런데... 렌터카 회사가 조금 밥맛이었다.
분명히 '인수 안내'에 저렇게 건물 밖에서 셔틀을 기다리라고 똭 적어놓고는... 30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니... 렌터카 회사들의 통합 카운터가 바로 공항 단기주차장 건물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도착한 이메일을 뒤져보니 한쪽 구석탱이에, 그것도 버튼을 눌러서 따로 뜨는 페이지 하단에 쬐끄만 글씨로, 카운터 찾아오는 길이 적혀있었다. 차량도 바로 그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수령 가능했고...
잘못된 정보를 바우처에 안내해 놓은 탓에 헛된 시간을 보냈다. 카운터 직원에게 살짝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코멘트 했으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그저 나에게 추가 보험을 파는 것에만 몰두할 뿐... 게다가 그걸 안 하고 원래 계약대로만 하겠다 했더니 곧바로 인상을 쓰면서 싫은 티 팍팍 낸다. 여행 첫걸음부터 이런 서비스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바우처의 틀린 정보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나처럼 헷갈리는 사람들이 계속 발생 중일 듯.. 저 렌터카 회사는 저렴하긴 하지만 비추하는 걸로...
※ 참고로, 저번 영국 여행 때도 언급했지만, 부킹닷컴이나 렌탈카닷컴에서 계약할 때 풀커버 보험을 들었더라도, 대부분의 저가형 렌터카 회사들은 자기네 보험이 더 좋다면서 그걸로 바꾸든지 추가하도록 카운터에서 영업을 한다. 물론 제안을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객이 뭘 모른다는 식으로 다그치거나, 싫다고 해도 거듭 졸라서 불편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런 짓에는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 내 돈 내고 가는 여행의 첫 관문부터 내가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차량도 예약 때 약속한 푸조 208이 아니라 닛산 Micra를 줬는데.. 물론 통상적으로 동일 등급 내에서 차종은 바뀔 수 있지만, 내가 알기로 두 차종은 레벨이 다르다... (참조 : 유로 카 세그먼트 Segment..?) 엄연히 미니카와 스몰카의 차이. 실제로 운행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오르막에서 힘이 딸려 덜덜거리거나 비가 올 때 천장이 통통 울리는 등 싸구려 느낌이 너무 날 때마다 약간 짜증이 났다. ㅋ
암튼, 개인 블로그에서 툴툴거려봤자 무엇하랴. 나중에 보증금까지 다 돌려받은 뒤에 곧바로 렌탈카 플랫폼에 정성껏 악평과 별점 테러를 가함으로써 이 회사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마칠 계획이다. ㅋ
공항에서 나와서 곧장 북으로 달려 오늘 숙박할 몬테피아스코네의 B&B 숙소로 향했다. 도중에 유료도로 톨비 3유로를 두 번 냈다. 이탈리아는 렌터카를 저렴하게 빌려도, 톨비, 주유비, 주차비가 겁나 비싸다. 주유는 리터당 무려 2500원 꼴이었다. (공급망 악화 및 환율 급등 영향으로 유럽이 대체로 저런 수준)
휴게소에서 제로콜라 6캔 묶음을 저렴하게 팔고 있길래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는데, 이게 마지막 기회였다. 그보다 더 싸거나 혹은 비슷한 가격의 콜라조차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ㅋㅋㅋ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엄청난 콜라 값에 계속해서 당황하며 깜짝깜짝 놀라길 거듭했다. ;;;
몬테피아스코네는 중세 순례길에 쉬어가는 동네로 오래 전부터 나름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원래 내 일정엔 없던 곳이다. 첫째 날 공항에서 곧장 치비타 디 바뇨레조까지 달려서 거기서 묵으려고 숙소 예약까지 마쳤었는데, 그 숙소 주인장이 갑자기 그날 자기가 다른 데 가야 해서 예약 좀 취소해주면 안되까냐고 부탁하는 바람에... 그때는 이미 관광지 숙박요금이 치솟은 뒤라서... 멀리 떨어진 이곳 시골마을로 다시 알아본 것이다. (4월에 유럽은 부활절 휴가 시즌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와서 보니 동네도 이쁘고, 집도 넓고, 경치도 좋았다. 치비타 까지는 차로 20분 이내 거리다.
다만 주인장이 영어를 전혀 못해서 - 진짜 아예 못함. 예스 노 정도만 딱 아는 눈치였 - 구글 번역기와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그래도 시종일관 친절한 미소로 대해주시는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이착해보였어
치비타의 석양을 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사우디 경유로 날아온 피곤함에 무리하지 않고 일찍 쉬기로 했다. 어느 새 곯아떨어진 우리는 새벽 5시쯤 잠에서 깼다. 어제 기적적인 의사소통으로 조식을 8시에 차려달라 해서(손가락 열 개에서 하나씩 빼다가 여덟 개가 된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어드림;;) 침대에서 딩굴거리며 기다리다가 나갈 준비를 다 마치고 7시 45분에 빼꼼 나가봤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밥상을 깔끔하게 차려두셨다.
싱그러운 아침을 만끽하며 정갈하게 준비된 조식을 받았다. 시골 인심이 느껴지는 이탈리아 아주머니는 종종 뭐 더줄까 물어보면서 연신 챙겨주셨다. ^^
빵도 맛있고.. 특히 이탈리아 특유의 진한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 모닝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아침부터 각자 두 잔씩을 들이부었다. ㅋㅋㅋ 덕분에 아내는 나중에 배가 뒤틀려서 살짝 고생을 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집에 조식까지 다 해서 그날 환율로 8만 6천원 정도였으니~ 역시 렌터카 여행 중에 숙소는 시골 B&B가 최고다. ^^
자, 이제 아침도 든든히 먹었고...
이탈리아 중/북부 여행, 이제 본격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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