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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보다 보면 '특강 소요리문답'이나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에 대해 소개하거나 소감문을 남기는 분이 꽤 계신다. 사람에 따라 지겹기도 하겠지만, 정작 나는 흐뭇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글을 열심히 보고 또 본다. 그런데 댓글로 꼭 이런 글이 하나씩 올라온다. 댓글 쓰는 사람은 다 다른데 내용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른다. "교리도 좋지만 성경에 더 충실하시길요.^0^" 이런 댓글에는 대체로 사랑스러운 이모티콘이 함께 등장한다. 다들 매너 있는 분들이고, 신앙심 깊고, 성경을 사랑하는 분들임을 나는 의심치는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씀은, 틀렸다고는 볼 수 없으나 다소 교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성경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방법이 필요하다. 적어도 성경에 충실하라고 말할 때는 이것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성직자" 개념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성경 해석을 "맡기는" 방식을 택하였는데, 그런 황당한 발상 때문에 성경은 정말 오랜 세월동안 라틴어만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러한 발상은 당연히 교권을 지닌 자들의 타락과 교회의 우민화로 직결되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치욕스런 폐단을 낳게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본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인간적인 요소는 모두 치워버리고 "날것 그대로의 성경(nuda Scriptura)"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애시당초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다. 대단히 성경 중심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신비주의적인 발상인데, 이것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경건한 태도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위험하고 어리석은 이러한 발상들은 종교개혁을 통해 거부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일단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되, 성경과 함께 공교회의 결정, 교부들의 가르침, 이성과 과학적 지식까지도 함께 동원하여 성경을 "해석"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 해석의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교한 문체의 신앙고백서로 만들었다. 이것은 성경 해석을 도울 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경 해석이 도대체 어느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바운더리"를 제공해준다. 물론 이것이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는다거나 혹은 동일한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며, 성경이 그 모든 것에 대한 최종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철저히 일치된 입장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작업을 은근히, 혹은 대놓고 무시하며, 바른 신앙을 위해서는 성경만 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본의 아니게 교만한 주장을 펴는 셈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런 주장은 sola Scriptura가 아니라 nuda Scriptura에 해당한다. 물론 우리 주위엔 극단적인 형식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의 예의 없고 극성스런 활동으로 우리는 소위 '교리를 강조하는 자들'에 대한 인상이 그리 안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극단적인 자들은 논외로 두고 생각해야 생각과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어느 교수님은 신학교에서 "성경만 읽으면 이단 됩니다!"라고(정확하진 않다) 발언하셨는데, 많은 학생들이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성경을 사랑하는 자의 입장에서 앞뒤 없이 들으면 충분히 상처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사랑한다는 것은 저기 놓여있는 종이로 된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거기에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특강 소요리문답이 구석구석 팔려나가 그 일을 도왔으면 좋겠다. 성경을 보게 하고 성경을 사랑하게 되는 일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단지 그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