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가 얼마나 멋진 시절이었는가에 대해, 저는 평소 가까운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그만큼 그 시절의 매력에 빠진 탓인데요, 최근에는 17세기 관한 교계의 관심이 부쩍 늘면서, 특히 특강 종교개혁사 출간 이후로는 감사하게도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논의가 더러 생기면서, 그에 따라 '으레 회자되곤 하는 오해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오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라면 무려 350년 전인데, 먹고 살기도 바쁘던 환경 속에서 무슨 제대로 된 토의라도 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 때는 전쟁통이지 않았나?? 우리는 훨씬 더 좋은 환경에 있으므로, 충분히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 오늘날의 신학은 발전되어서, 웨스트민스터 당시보다 훨씬 더 잘 정돈되고 조직화 되었으니, 요즘 사람들의 논리에 맞게 개발된 커리큘럼을 쓰는 것이 좋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가! 당시 무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든 요리문답을 그대로 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 착오적이다.
-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 작성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 절대 주권, 율법에 순종, 택자냐 불택자냐 등등, 너무 차가운 지식만 강조하고 원리 원칙만 따지던 사람들이었기에, '인간'을 너무 몰랐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딱딱한 문서를 만들었다. 즉, 목회적인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 총회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해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엄밀하고 바른 신학적 논의를 포기하고 타협적이고 두루뭉술한 결과물을 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정확하고 엄밀하고 성경적인 신앙고백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은 애초에 성경을 상고하며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논리와 지혜로 작성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초안을 만들었을 때는 성경 구절이 각주로 붙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에 대한 반대가 일자, 다급하게 증거 구절들을 대충 가져다가 붙인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오해는 마치 정설처럼 굳어져,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모두 ‘속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강 종교개혁사(흑곰북스)를 통해서 이런 궁금증들을 개운하게 해소하시길 바랍니다.
혹시 책을 통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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