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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학 특강

category 위즈덤 프로젝트/히스토리(history) 2019. 5. 6. 12:02
이 강의안은 2008년 3월 새생명교회 청년부 특강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총신 신현우 교수님의 책 "사본학 이야기"를
발췌/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강의는 사해사본 전시회 관람과 함께 했으며,
박물관 앞 주차장에 앉아서 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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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트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공격들

어쩌고 저쩌고…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생략.

 

2. 강의를 위한 몇 가지 기본 정보

- 교회의 중요한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는 것

-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 성경의 기록자들은 사람이지만, 그들의 기록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 기계적으로 받아적거나, 반대로 저자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

- 성경의 원문은 오래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사본만 전해질 뿐이다.

- 성경 사본들은 인쇄술이 없는 시절 수도원에서 필사자들이 손으로 일일이 적는 인고의 과정을 통해 생성되었다.

- 지난 수백년간 온 세상의 성경 사본들을 모아 비교/검토한 수많은 사본학자들에 의해 성경 원문은 복원되어 왔다.

  

3. 사본을 연구하는 방법론의 전제들, 그리고 그 한계

주장 더 오래된 사본일수록 원문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당연히 추측할 수 있다.

주장 사본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본이 담고 있는 본문의 나이가 중요하다. 주후 10세기에 필사된 사본이 2세기 사본을 정확히 필사한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반대로 주후 4세기에 필사된 사본이 3세기 사본을 필사한 사본인지 누가 알겠는가?

주장 정상적 상황에서라면 오래된 사본일수록 더 많은 사본의 모체가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더 많은 사본들과 일치하는 텍스트가 더 적은 사본들에 기록된 텍스트보다 더 원문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주장 많은 수의 사본들이 소수의 불량한 사본들로부터 복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신약사본들은 "정상적 상황"에서 필사된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 상황에서 필사되었다. 예를 들면,

- 많은 초기 사본들이 로마 황제 Diocletian의 칙령에 의해 파괴되었다.

- 그나마 가이사랴에 남은 도서관마저 주후 638년에 모슬림에 의해 파괴되었다. (따라서, 소장된 초기 사본들이 함께 파괴되었을 것이다.)

- 주후 7세기에 모슬림들의 정복전쟁은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기독교 인구를 극감시켰고, 따라서 이 지역에서 사본필사도 줄어들게 되었다.

- 주후 6세기에 이르러서는 헬라어는 비잔틴 제국 이외에서는 거의 이해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후로는 헬라어 사본들이 비잔틴 제국에서만 주로 필사되었다.

 즉, 이렇게 사본들은 역사 속에서 필사된 것이고, 그 역사 공간은 비잔틴 제국에 한정된다.

 

그럼 어쩌라구? ,.

후기에 필사된 사본이 오래된 사본을 필사한 사본일 가능성이 있기에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면, 초기에 필사된 사본은 더 오래된 사본을 필사한 사본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

원본이 남아있었으면 참~ 좋았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본'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신 듯하다. ^^ 생각해보자. 성경 원문이 오늘날 무슨 유리병 같은 데에 잘 보관되어 전해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오늘날의 신앙생활 패턴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드라빔이나 우상처럼, 전쟁터에 들고 나갔던 법궤처럼, 어느 교회 어느 교단에서 그것을 보유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는 행위인 것으로 당연시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럼 어떤 노력들이 있는가? 상식적으로 알아두자. 이런 것을 모르면, 성경이 무오하다는 가르침을 그저 맹신으로 믿게 되고, 모래성과 같이 불안하여, 다빈치 코드라든지, 기타 성경을 공격하는 무리들에 자꾸만 휘둘리게 된다.

 

1. 파피루스학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종이의 역할을 한 것은 이집트에서 고안된 파피루스였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하구의 얕은 물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의 줄기를 얇게 썰어서 마치 합판을 만들듯이 붙여 만든 것이었다. 신약사본들의 경우, 파피루스로 된 사본들은 송아지나 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로 된 사본들보다 대개 오래된 것들이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신약사본학 중에서도 파피루스학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현대 신약 파피루스학 연구의 한 장을 한국 학자가 장식했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파피루스(P) 46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여 일약 세계 사본학계를 발칵 뒤집은 한국인이 바로 김영규 교수(현 대신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이다. 20세기 최고의 사본학자 메쯔거도 그의 사본학 입문서 3판 부록에 김영규 교수의 논문을 다루고 있다. 그의 논문은 로마에서 발간되는 세계 정상급 성서학 저널인 비블리카(Biblica) 69호(1988년도)에 실렸다. 그의 주장은 P46을 주후 20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믿는 국제학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김교수에 의하면, P46은 필체상 1세기 파피루스 필체로 쓰여졌으며, 따라서 주후 1세기(주후 80년경)에 필사된 것이 된다. 물론 자존심이 센 서양의 신약사본학계가 동양에서 온 한 유학생의 주장을 곧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주후 200년경을 고집하기를 그치고 반세기 이상 앞당겨 주후 2세기 초중반 정도로, 절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쉽게도 당시 한국에는 신약사본학계 자체가 형성되어있지 않아서 이런 사람을 알아볼 사람조차 없었다.)

 

2. 교부학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을 교부라고 부른다. 어거스틴, 오리겐, 터툴리안, 제롬 등 잘 알려진 교부들 외에도 수많은 교부들이 주로 헬라어나 라틴어로 저술을 남겼다. 이들은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놓으며,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조직)신학은 이 교부들과의 대화 없이는 제대로 전개되기 힘들다. 또한, 교부들에 대한 연구 없이는 그들을 인용하며 신학을 전개한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면, 어거스틴에 대한 이해 없이 칼빈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이렇듯 교부에 대한 연구는 사본학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헬라어로 저술을 한 초기 교부들은 헬라어 신약성서를 인용하면서 신학을 전개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서인용은 사본학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3. 본문비평학 또는 원문복원학

비잔틴 본문이 우월한가, 알렉산드리아 본문이 더 우월한가? 하는 문제는 파피루스나 교부 연구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알렉산드리아 본문과 비잔틴 본문이 차이 나는 부분들을 하나 하나 비교하면서 더 원문에 가까운 것을 통계를 내서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면, 사라진 원문이 우리에게 없는데, 어떻게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본문비평학 또는 원문복원학에서 사용하는 판단기준들을 가지고 일일이 사본들의 가치를 저울질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여기서는 패스~)

 

4. 셈어적인 문체와 사본학

예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는 당시 군중들을 상대로 사용하신 언어는 아람어였고, 유대 서민들도 아람어로 예수님의 말씀을 전승했다. 그 전승들은 헬라어로 다시 전승되다가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 결집되었다. 그러한 전승 과정은 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서에 아람어적 표현들이 나타나도록 했을 것이다. 이렇게 아람어 내지 히브리어 표현이 헬라어에 반영되는 경우, 사본 필사자들은 문체를 다듬고자 그러한 표현을 정상적인 헬라어 표현으로 고치곤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사본학자들은 그래서 아람어/히브리어적 표현과 헬라어적 표현이 있다면 둘 중에서 아람어/히브리어 표현이 있는 사본을 더 존중하게 된다. 한국에 와서 살던 미국 사람이 한국말을 배워서 "한국 하늘 가을 아름답습니다 참" 이렇게 적었을 경우에 필사자들은 "한국의 가을 하늘은 참 아름답습니다"로 고치려할 것이고, 이 두 가지 독법이 전승되어 필사본들에 나타날 경우, 현명한 사본학자는 저 어색한 "한국의 가을 하늘 아름답습니다 참"을 원문에 가까운 것으로 선택할 것이다.

ex. 마가 1:27에서 시내산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은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적고 있다. 반면, 비잔틴 사본들은 여기서 "웬 새로운 가르침이냐, 이것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헬라어로서 어순이 어색하긴 하지만, 주어가 뒤에 나올 수 있는 히브리어(또는 아람어)에서는 정상적이다. 그래서 이 어색한 헬라어를 다듬지 않고 보존한 비잔틴 사본들을 여기서 신뢰할 수밖에 없다. 저 표현은 비록 어색하고 투박해도, 예수 말씀에 대한 군중들의 반응을 마치 바로 옆에서 들은 사람이 전해주듯이 생생하게 전달한다. "웬 새로운 가르침이냐, 이것이?"

또한 마가 10:51를 보면,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대답하시며 그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적고 있는데, 비잔틴 사본들은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그에게 예수께서"라고 어색한 순서의 헬라어로 적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주어가 동사 뒤에 나오는 어순은 히브리어/아람어에서는 정상적인 것이다

 

마치며

사본학은 우리 이웃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욱 잘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이런 노력은 신학자들이나 사본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사본들은 성경을 불사르는 로마황제의 박해 속에 목숨을 걸고 성경을 보존한 이름 모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전수되어 왔다. 우리는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고 사는 성도라 한다면, 우리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바 교사로서, 신앙의 길을 조언하고 인도할 동료, 형제로서, 나중에 하나님의 자녀를 길러낼 부모로서…) 찾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각자가 마음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라도 갖게 된다면, 오늘 우리 강의는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