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환자를 가까이서 겪으면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전 세계가 부러워 미치는 가성비의 정점이다. 특히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암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5%로 낮춘 것은 정말 혁명적이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 이면에는 '가장 아픈 사람'보다 '가장 고치기 쉬운 사람'을 우대하는 기묘한 산술적 비정함이 숨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암의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ESD)'이다. 국가 보험 보장 범위 제한사항을 보면, 종양 크기 2cm 이하, 분화도가 좋은(Differentiated), 점막층에 국한된 암의 경우에만 급여가 인정된다. 그외에는 8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분화도가 나쁜(Undifferentiated) 암은 세포가 흩어지는 성질 때문에 수술이 더 어렵고 위험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고시 기준상 이런 '어려운 암'은 급여 인정 기준이 훨씬 까다롭거나 본인 부담률이 치솟는다. 즉, 현행 시스템은 "성공 확률이 높고 돈이 적게 드는" 케이스를 더 잘 보장한다. 뿌리가 깊거나 성질이 사나운 암을 가진 환자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속한다. 우리나라 의료복지가 대단한 건 맞는데, 이렇게 은근히 구멍들이 많다.

왜 그럴까. 이런 현상은 보건경제학의 핵심 원칙인 '비용-효과 분석(Cost-Effectiveness Analysis, CEA)'에 기인한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다'의 효과를 내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가장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에게 혜택에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효율'로 본 것이다. 다분히 시장경제(?)적이다. 1억 원을 들여 말기 암 환자의 수명을 1년 연장하는 것보다, 1억 원으로 초기 암 환자 10명을 완치시키는 것이 '사회적 이익'이 크다는 판단이다.
"요즘 다들 실비 들잖아??"라고 되묻는 분께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 한정된 자원으로 다수를 위하자는 판단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가 딱 이 정도에서 머무는 게 맞나, 그래도 괜찮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시스템의 효율성은 국가 전체로 보면 이득일지 모르나, 어떤 개인의 서사에서는 잔인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맞다.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은 성공했다. 특히 '다수를 위한 최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성공은 '소수의 극심한 불행'이라는 비극을 동시에 품고 있는 성공(?)이란 사실도 알고 있자. 그리고, 더 나아가자. 진정한 복지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을 멈추고,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환자의 '비효율적인' 생명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때 완성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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