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갈라파고스 한국에서는 크게 실감을 못하고 있지만) 자율주행은 이미 기술적 완성을 넘어, 단지 얼마나 더 편리한 기능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안 쓰면 바보'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미국 보험사 레모네이드가 테슬라 FSD 이용자에게 50% 보험료 할인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일회성 프로모션이 아니다. 이는 데이터 권력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리셋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인간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행위 자체가 '비용 페널티'가 되는 시대가 코앞에 와 있다.
몇 년 전에 워렌 버핏은 테슬라의 보험업 진출을 조롱한 적이 있다. 원래 전통적인 보험업계의 거물이었기에, 자동차 회사가 보험사업을 하겠다는 말이 욱기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 보험사가 지난 100년간 쌓아온 연령별 사고발생 통계를 기준으로 '20대 남성', '65세 이상' 등의 러프한 분류로 리스크를 짐작할 때, 테슬라는 운전자의 운전습관(교차로 통과 속도, 급브레이크 횟수, 깜빡이 예절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점수화 한다. 운전자마다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보험료. 개인별 현실 데이터가 당연히 인구통계학적 자료보다 정확하다.
레모네이드의 보험료 할인 정책이 가져올 나비효과가 또 있다. 미국 기준 한 달 보험료가 200달러 수준일 때, 50% 할인을 받으면 100달러를 아끼게 된다. 응?? 테슬라 FSD 구독료가 99달러였다! 자율주행이 무료가 되는 셈이다. 인간 운전보다 사고율이 26배 낮다는데, 어쩌겠나. 자율주행은 '나만 손해를 볼 수 없지'라는 자본주의적 강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이는 혁신이 시장에 침투하는 가장 빠르고 잔인한 방식이다.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경제 지능의 영역이다.
영국에 갔을 때, 지방도로에서 종종 말을 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교통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귀족적 취미로서 타는 것이다. 도로 위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는 행위는 높은 보험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의 불확실성'을 고집하는 일종의 사치로 분류될 것이다.
우리가 보험사에 내던 보험료는 자율주행 구독료로 이동할 것이다. 돈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인간보다 수십 배 안전하고, 심지어 돈까지 아껴주는 알고리즘을 거부할 명분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 없다.

라고 페북에 올렸더니 별 반응이 없다.
라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자율주행의 시대가 교회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연결해서 써야지. 지금은 주식투자 리딩방 같잖아"라고 따스하게 일갈하셔서, 추가해본다. ㅎㅎ
미국 보험사 레모네이드의 테슬라 FSD 이용자 보험료 할인 사례에서 보듯, 자율주행 시대는 효율성과 안전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모든 이동 비용(금전적, 시간적, 심리적)이 낮아지는 새로운 세상에서, 교회는 전례 없는 기회와 심각한 도전을 <동시에> 직면케 될 것이다.
자율주행의 보편화는 물리적 거리를 압축한다. 이는 전통적인 지역 교회 중심의 사역 패러다임을 흔들 것이다. 현재 대다수 중대형 교회는 막대한 부지를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주일 오전 2시간을 위해 주중 내내 비워두는 주차장은 앞으로 존재 의의를 재고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자율주행 택시로 교회당 바로 앞에서 하차한다. 그럼 이 막대한 유휴 부동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역 사회를 위한 공유 공간, 노인 주거 시설, 혹은 다음 세대를 위한 창업 센터 등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모이는 공간'에서 '지역 사회의 허브'로 교회의 물리적 기능을 빠르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도어 투 도어 목회에 대한 대응책과 준비(트레이닝)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동안 운전이 어려운 고령층, 장애인, 그리고 차가 없는 청년들에게 교회에 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포구 성산동에서 본당까지 휠체어로 혼자 힘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이 나눔교회 뿐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교회 차량 운행 봉사는 늘 일손이 부족한 영역이었다. 앞으로 이동 비용이 극도로 낮아지면, 교회는 거동이 불편한 성도들의 접근성이 강화될 것이며, 동시에 '찾아가는 목회'도 가능해진다. 그간 행사처럼 이루어지던 심방 사역의 물리적, 시간적 비용이 감소하면, 목양의 질적 향상도 기대해볼 수 있다. 목회자는 운전하느라 쓰던 에너지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성도의 데이터를 미리 살피고 준비할 수 있다.
또한, 자율주행차 내부 공간은 일종의 예배 준비실 혹은 기도실이 될 수 있다. (ㅋㅋ) 교회로 향하는 20~30분의 시간은 이제 짜증 나는 교통 체증의 시간이 아니라, 설교 본문을 미리 읽고 기도하는 공간이다. 아울러 교회는 이 시공간을 위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집사들은 교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구제와 선교와 나눔을 '물류'라는 기능적 요소를 고려해서 새롭게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락 배달, 구호 물품 전달 등은 모두 사람의 손과 운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더 효과적으로, 더 소외되던 곳까지, 더 자주 다가갈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
좋은 점만 열거한 것 같은데, 사실 기술의 축복 뒤에는 심각한 신학적 딜레마가 숨어 있다. 자율주행이 주는 극강의 편리함은 역설적으로 모이기에 힘쓰는 가치를 퇴색시킬 위험이 있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는 편리함(?)을 경험한 세대가, 추후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예배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너무도 편안해질 때, 굳이 물리적인 공간에 모여 부대끼는 불편함을 감수하려 할까? 바다가 나를 부르는데?? ...
새로운 세상에서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은 기술 자본 만능주의 및 효율성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인 희생과 번거로운 공동체성에 기반하여 지금까지 왔다. 자율주행 시대의 교회는 역설적으로 기술이 줄 수 없는 오프라인의 압도적인 경험과 진솔한 인간적 유대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편리함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고립된 섬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기술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그 기술이 인간을 고립시키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 그것이 미래 교회의 숙제 아닐까 싶다.
2026.1.24. 페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