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기왕 로마까지 온 김에 하루쯤 투자해서 들를만한 코스가 바로 폼페이다. 교통이 문제인데, 요즘은 로마에서 폼페이를 거쳐, 소렌토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지중해변 마을들을 둘러보고 유람선(하절기)도 타볼 수 있는 당일치기 투어 상품들이 굉장히 잘 나와 있다. 보통은 폼페이, 포지타노, 아말피, 살레르노 등을 묶어서 가고, 하절기에는 유람선도 탄다.

그런 상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지금의 "유로 자전거나라 투어"의 탄생을 가져온 기획상품이자, 해당 여행사의 첫 상품이 된 이탈리아 "남부환상투어"이다. 기대에 부풀어 아침 일찍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이미 몇 대의 버스에 손님이 가득했다. 선착순으로 버스에 태워서, 한 차가 다 차면 먼저 출발하고 그랬다. 그만큼 인기 상품! 

▲ 주요 동선 : 폼페이 - 쏘렌토 - 포지타노 - (하절기 유람선: 아말피 해변 경유) - 살레르노

편안한 버스를 타고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1시간쯤 달리자, 차창 밖으로 폼페이 베수비우스 화산이  보인다. 그리 높지도 않고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산이지만, 저 산이 폭발하여 한때 융성하던 지중해의 한 도시가 통째로 사라졌고, 그 안에 살던 시민의 10%가 함께 사라지고 말았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면, 스산한 느낌이 든다.
폼페이 도착. 매표소에서 진입하면서 왼쪽을 보면 벌써 고대 도시로 한걸음 내디딘 기분이 들 것이다. 곧바로 가이드의 환상적인 설명이 시작된다. 전문적인 가이드의 설명이 아니었으면 여기가 어디였는지 알 턱이 있겠나.
지금 보이는 곳은 원래 항구였다. 2천 년이 흘러, 지금은 해안선이 멀리 물러갔지만, 과거에는 이 지점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미류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곳이 과거엔 그러니까 바다였다는 소리. 배를 정박할 때 밧줄을 묶는 볼라드(bollard) 역할을 했던 돌 구조물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상상을 해 보았다. 배가 도착해서 항구에 정박하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진귀한 물건을 사고, 또 자신들의 상품을 앞다퉈 팔았을 것이다. 항구에서 도심까지는 커다란 직선 도로를 깔아서 물류 운송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수천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 잔해와 내장/외장재들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폼페이 답사를 시작했다.

 

토막 상식
폼페이는 로마 남쪽, 현 나폴리 근처에 있다. 지중해 중심부에 위치하여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개 대륙과 활발하게 교류하던 천혜의 국제 무역 항구도시였다. 그러던 폼페이는 베수비우스 화산폭발로 인해 말 그대로 지상에서 ‘사라졌다’. 4미터 높이의 화산재가 도시를 뒤덮었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일.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 지역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랬던 폼페이를 다시 발굴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비교적 순식간에 쌓였던 화산재 ‘덕분에’ 찬란했던 고대 로마 도시가 당시 모습과 흔적들, 즉 건물뿐만 아니라 생활 풍습을 짐작할 수 있는 수많은 가재도구, 심지어 사람들과 애완동물의 형체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땅속에 보존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며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갔으나, 그 사체가 있던 부근은 그대로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 그곳의 위치를 탐색해서 좁은 구멍을 뚫고 석고액을 부어 넣으면 어떻게 될까. 그 빈공간이 일종의 거푸집이 되어, 화산폭발 당시 죽어갔던 생명들의 형체가 고스란히 석고상으로 굳어서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고대 로마에 대해 현대인이 지금처럼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은 폼페이 발굴에 그 공을 돌려야 한다. 생각할수록 경이로운 일이다.

 

북적북적 활기찬 부두의 모습을 상상하며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무심코 걷는 지금 이 길이 고대 제국 로마가 건설했던 도로라는 생각에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 평평한 돌을 보도블럭처럼 깔아서 만든 로마의 도로들은 현대의 건설기술과 비교해도 기본 구성요소가 비슷할 정도로 큰 차이가 없는 최첨단 수준이다. 우선 로마의 도로는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다. 마차가 다니는 차도는 인도보다 높이가 낮아서 보행자들과 마차가 서로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또, 차도의 단면도로 볼 때, 중심부를 가장자리보다 살짝 높이 설계했다. 비가 오면 양 끝의 배수로로 물이 신속하게 빠져나가도록 말이다.

도로 중간에는 징검다리처럼 넓적한 돌들이 놓여있는데, 이것은 놀랍게도 비가 올 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횡단보도였다. 그렇다면 마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 이런 돌이 있어도 문제가 없었을까? 이것은 마차 바퀴 사이의 거리(바퀴 축의 길이)와 도로 폭이 규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신호등만 없다 뿐이지 현대의 도심 교통의 기본을 갖춘 고대 도시 폼페이였다. 이러한 규격화와 표준 설계는 도시 인프라의 입장에서 부가 가치를 창출한다. 상품을 운송할 때 폼페이 규격에 맞는 교통수단만을 이용해야 했을 것이고, 이런 교통 시스템은 폼페이의 수익모델이기도 했다. 오늘날 허브공항이나 국제 항구의 물류 시스템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이다.

차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얀 돌멩이가 박혀있다. 놀랍게도, 야광석이다. 전기가 없던 당시에 밤거리 통행을 유도해주는 시설물이다. 캄캄한 영화관에 설치되어 비상구를 안내하는 LED 조명을 생각해보자! 따로 횃불 조명을 밤새 설치/운영하지 않아도, 달빛에 반사된 야광석은 행인의 안전을 지켜주고 방향을 지시해준다. 그밖에도 주정차구역을 따로 표시해둔 작은 홈이라든지, 점토판에 채색된 그림을 그려서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표지판, 횡단보도나 교차로 부근에서 보도블럭의 높이를 살짝 낮추어 통행에 불편함을 줄이려 했던 섬세함 등을 관찰하다 보면, 로마라는 도시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에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바닥 포장석이 닳은 부분이 일정하다. 이것은 마차 바퀴가 규격품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고대 도시 폼페이의 핵심부라 할 수 있는 포럼(Forum)을 볼 차례다. 로마에서 답사했던 ‘포로 로마노(혹은 포룸 로마눔)’의 그 ‘포로(foro)’이다. 규모가 좀 되는 도시마다 이런 시설이 있었다. 포럼은 길쭉한 직사각형의 광장이며 양쪽 끝에는 신전이 있고, 그 사이에는 행정과 사법 기능을 담당하는 공공기관, 즉 평의회, 원로원, 재판정 등의 바실리카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포럼 주위에 남아 있는 돌기둥 유적들은, 그곳에 원래 아케이드(Arcade)가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런 기둥은 아치 형태의 지붕을 이고 있어서,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고도 마치 실내처럼 그곳에 있는 신전과 공공기관, 그리고 그곳에 입점한 상점들, 각종 편의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종교의식과 함께 정치에 대한 정보들도 공유했다. 이렇게 탄탄한 도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에, 로마가 전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이루고, 또한 그것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폼페이 유적은 매우 광활해서, 온종일 봐도 다 못 본다고 한다. 투어팀은 극히 일부 지역을 돌아볼 뿐이다. 물론 당일치기로 다녀가는 답사객들도 광활한 도시를 하루에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니, 애초에 욕심을 버리는 것이 좋겠다.

 

폼페이도 그저 폐허가 된 유적지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 여겼다면 생각을 바꾸셔야 한다. 이곳의 보존 상태는 "너무 좋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는다. 화산재가 급속도로(폭발 후 18시간 이내로 추정된다고 한다.) 온 도시를 덥치는 바람에, 쉽게 말해서 "순간 정지" 상태로 보존된 도시이다. 로마에서 보던 것은 세월의 흔적 속에서 닳고 낡아버린 바닥돌 정도였다면 – 그래서 상상력이 많이 필요했다면 – 이곳의 유적들은 심지어 지붕까지도 고스란히 보존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생생했다. 지붕이 보존되었으니 그 내부 공간이 더더욱 잘 보존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공공 목욕탕 건물이었다. 로마는 물을 잘 다스렸던 국가로 유명했다. 그들은 시내 곳곳과 저택들, 공공시설물과 광장 분수에 수도 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는데, 이를 활용하는 시설물 또한 대단했다. 

수증기는 빠져나가고 빛은 최대한 들어오도록 설계된 통기창.
초호화  목욕탕 시설물들

자연채광 및 수증기 배출을 동시에 담당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굴뚝형 창문. 게다가 이 건물은 목욕물의 온기와 훈훈한 실내온도를 보존하기 위해 두 겹의 벽으로 시공했다. 벽과 벽 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건물 자체가 보온통 효과를 냈다. 이중 구조의 아치형 지붕은 화산재가 무겁게 내리눌렀을 때 무너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아치형 지붕은 더욱 놀라운 기능을 품고 있었다. 천장에 응결된 수증기가 식어서 고객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불쾌함을 막기 위해, 가장자리로 자연스럽게 물방울이 흘러내리도록 설계되었다! 정말, 디테일 쪈다..

옷걸이와 개인 락커, 온수가 뿜어져 나오는 분수 등... 감각적이고 세밀하게 고려된 시설들을 보면서 해 아래 새것이 없음을 다시금 느꼈다. 게다가......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짜잔...

출출하고 갈증나는 고갱님들을 위해서 고급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Bar)가 준비되어 있다! -_-;;; 대박이다. 그렇지. 목욕 후에는 나와서 바나나 우유 한 잔씩 해줘야지.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폼페이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래 사진에 나오는 석고상이다. 화산재에 순간적으로 뒤덥힌 사람들과 동물들은, 죽은 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뼈까지 다 분해되었는데, 화산재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그 사체가 있던 부분이 텅 빈 공간으로 남았던 것이고, 발굴자들은 그곳에 혹시나 하고 석고를 부어넣어, 놀랍도록 생생한 형상이 되살아나게 했던 것이다.

주로 노약자나 이동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갔던 사람들과 애완동물들.

 

현관 출입구 바닥에 ‘Welcome’이란 뜻의 ‘HAVE’라는 글자가 야광석으로 꾸며져 있고 실내 분수와 정원까지 갖춘 부유층 저택.
복원도를 보면 더욱 이해하기 좋다.
택배업체를 알리는 간판.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국제도시였기에 그림언어(아이콘)로 소통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이 얼마나 현대적(?)인가!?

거리마다 붙어있는 그림 간판들과 당시의 채색이 남아있는 벽화들, 공직에 입후보한 정치인들의 선전물들, 수많은 질그릇과 도구들, 그리고 석고로 되살아난 폼페이 사람들과 동물들의 형상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곳 폼페이에 한 번 와보는 것은, 우리에게 단지 과거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유적지를 만나는 것 그 이상의 진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인생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너머까지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로마제국의 흥과 망, 성과 쇠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폼페이 유적은, 유럽여행 코스에 반드시 넣어야 할 여행지로서의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Q. 여기는 어딜까? - "폼페이: 최후의 날(2014)"이라는 영화를 보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