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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에서 도보로 판테온 신전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에도 볼 것이 엄청 많다. 여러 골목길 중에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을 거쳐 가는 골목길을 추천한다. 

이 성당을 들러야 하는 이유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날 하필 무슨 결혼식 촬영이 진행되고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으나 다음 날 근처에 왔다가 결국 들어갔다.

재미있게도, 카라바조의 작품을 자세히 보기 위해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데, 동전을 넣어야 불을 켜준다. ㅎㅎㅎ

이거 관련해서 페북에 썼던 글이다. ^^;

어린시절에 테이프로 듣던(요즘 유튜브 보고 자라는 친구들은 이런 거 알려나) 동화 중에 "플란다스의 개"라는 것이 있었다. 개 이름은 누구나 알 것이다. 파트라슈.. 그리고 개의 주인(?)이자 흙수저 화가지망생 네로의 슬픈 이야기. 어린 나에게 이 테이프 동화는 무척 실감나고 재미있었고,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수십 번을 반복 재생하며, 귀로만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 장면들을 그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중에 TV에서 만화영화로 방영되는 바람에, 상상의 여지랄 것이 죄다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무튼...

근데, 이 동화에는 당시 무척 똑또칸 어린이였던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상황 설정이 하나 있었다. 네로가 우유배달을 다니던 시내 성당에는 루벤스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평소에 네로가 그토록 보고싶어 했지만 그 그림은 휘장으로 가리워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돈을 내야만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혹은 크리스마스 때나 보여주는 그림이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나는 테이프를 들으면서, 아니, 멀쩡한 그림을 왜 가려두고 돈을 받는지, 어이가 없었고, 나중에 커서 <동심을 잃은> 뒤에는 얼추 이해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가 받았을 그 느낌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는 공감할 길이 없었다. (음, 이제보니 네로가 실존인물도 아닌데 감정이입을 매우 했다.. 그건 그렇고, 왜 우리네 어린시절 동화들은 그토록 비극 투성인지?? 쩝.)

나중에 로마 여행 중에 어느 성당에 들어갔을 때, 나는 비로소 네로의 마음을 100분의 1정도 실제로 느낄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성당 내부는 많이 낡기는 했지만 뭔가 예사롭지 않은 벽화와 조각들로 가득했는데, 대낮에도 실내라서 그런지 어두워서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동전을 넣는 장치가 있고[사진], 거기에 땡그랑 동전을 넣어서 일정 금액에 다다르면 조명이 확 켜지면서 그림의 느낌이 확 살아나는 거시었다. 허허.. (물론, 이 장치의 목적은 그림의 장기보존을 위한 저광도 조치였을 것으로 믿는다.)

그때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나는 그때
가슴 한 구석이 찌릿 하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어쩌면 나의 진정한 동심 파괴는 꽤 늦게야 이루어진 듯하다.

그밖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다. 저 휘장(오른쪽)이 돌로 조각해서 만들고 채색한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서도 내 눈을 믿기 힘들었다.

 

이어서 골목을 걷다보면 수퍼마켓과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으니 군것질도 해보자. 그리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똭!!!

 

거대하고 시커먼 통조림통이 보인다.

(이런 극적 효과를 위해 저 골목길을 추천한 것이다. ㅎㅎ)

 

"판-테온 신전". 판은 "모든"을 의미하고, 테온은 "신들". 이를 번역한즉 "만신전"이라. 모든 신들에게 종합선물세트로 제사를 바칠 수 있다는 "신개념 신전"이다. 그러니까는, 행여나 자기들이 몰라서 혹은 실수로라도, 특정 신에게 제사하는 걸 빠뜨려서, 그 신의 노여움을 살까봐.. (쿨럭;;) 아예 모든 신에게 일괄 Ctrl+A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신전을 지은 것이다. 하여튼 발상이 재밌는 친구들이다.ㅋ

내부는 완벽한 구형+원통형태로 되어 있다. 즉, 공의 절반이 원통에 담겨있는 듯한 형태.
내부의 조명 시스템이 이러하다. 천장에 뚤린(덜 막은) 둥근 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그러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비취는 지점이 변한다.
대놓고 신비롭다.
훗날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뒤, 이 신전은 성당으로 개축되었다. 또 세월이 흘러, 유명인사들이 이곳에 자신의 무덤을 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거의 2천년간, 이곳은 세계인의 관광지였다.
이런 설계가 노리는 신비주의적 효과는 종교와 종파를 떠나서 활용되었다. 아래 사진들을 보자.
지금도 계속된다. 이 비디오는 동전을 넣으면 상영이 되는데, 나는 동전이 아까워서 이분들이 돈을 넣을 때를 기다렸다. ㅎㅎㅎ
로마 가톨릭에서 장미는 소위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하늘에서 장미꽃잎이 쏟아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알고보면 천장에서 알바들이 삽으로 푸고 있다. 이걸 쏟아지게 하고 밑에서 그걸 얼굴에 맞으며 즐거워하는 행사를 지금도 한다.
곳곳에 있는 장식품들. 청동상에 박힌 보석이 아직 보존되어 있다. 박물관이 아닌 현장에서는드물게 보는 케이스다. 오른쪽 사진은 "빈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텅 빈 십자가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발상인 듯하다.
참 뭐라 말하기 어려운 희한한 매력을 풍기는 판테온...

 

※ 매체에 기고했던 판테온 관련 글 링크

 

신전이냐 교회냐 : 판테온, 아고스티노, 그리고 누오바 성당 - mytwelve

판테온(만신전)로마 구도심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광장에서 관광객의 시야를 사로잡는 거무튀튀한 건축물. 거대한 통조림통(?)처럼 보인다. 여기가 바로 판테온. 판(모든) 테온(신)은 ...

www.mytwelve.co.kr

 

 

판테온 앞 광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소매치기 주의하자. 요즘은 사복경찰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다는 말도 있긴 하다.
근처에, 무려 1375년부터 빵집이었다는 가게가 보인다. ㄷㄷㄷ 로마가 대충 이런 동네다.
근처 골목으로 살짝 진입하면 커피 맛집이 있다. Tazza d'oro Caffé. 아까 피오리 광장에서 이미 마셨겠지만, 여기서도 한 잔 해보자. 하루 두 잔이 무리가 아니라면!
그 방향으로 골목길을 자연스럽게 걷다 보면
느닷없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가 나올 것이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봤던 것보다 보존 상태가 좋아서 부조의 디테일이 선명하다.

 

자, 애초에 판테온에서 이쪽으로 걷는 방향을 잡은 이유는, 트레비 분수를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얼씨구. 공사중이네.
아주 야무지게 공사중이네.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라고 이렇게 임시 접근로를 설치해주었는데 참 감사하.. 기는 개뿔!! 뭐가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쉬움을 달래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응? 감정이입...)
이분들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신다. 우린 숙소로 왔다. 저녁에 음악회 예약을 했거덩.

 

판테온 이후 버스 정류소까지 걸은 경로는 이 지도상의 표시와 같다.

 

저녁에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음악회에 갔다.

어떤 성당(성공회)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해서, 아내가 미리 예약을 했었다. 근데 위치가 숙소 바로 앞 건물이었다. 신기~ 
1인당 5유로 정도였나?? 아무튼 입장료도 매우 저렴했다.
로마에서 성공회 성당이라.. 신기했다. 가톨릭 성당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
공동기도서도 보였다! 잽싸게 페이지를 넘기며 몇 군데를 사진으로 남겼다. 책에 쓸 자료사진이 되어주었다.

공연은 정말 멋졌다. 아저씨들도 귀여웠고 ㅎㅎ 특히, 1부와 2부 중간에 악기만 따로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분주하고 부담되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다가, 이렇게 바다 건너로 벗어나서 자유롭게 모험과, 탐험과, 자기 발견과, 휴식과, 힐링이 되는, 정말 정말 좋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이때 울컥 터진 모양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적당한 공연을 알아보고 예매한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지금까지 전형적인 로마 관광지 방문이었다면,
이제 내일은 '덜 전형적인' 관광지, 시내투어 심화코스를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