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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인간이 스톤헨지를 찾아갈 때 취해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하여

우선, 스톤헨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아실 것이다.... 사실 모르셔도 된다. 왜냐하면 스톤헨지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체가 무엇이든간에, 사람들은 예로부터 각자가 마음먹은 정의에 따라 '그 곳' 또는 '그 것'을 대해 왔고, 찾아가곤 했다. 이를 단순히 말해서 "순례"라고 한다.

오늘날 돈벌이에 궁한 영국은 스톤헨지를 철저한 상업 수단으로 바꾸어 두었다. 스톤헨지는 완만한 구릉지에 있는데, 높지는 않지만 은근히 높낮이가 있는 언덕 지형이다. 스톤헨지 비지터센터와 주차장은 바로 그 언덕 너머에 있다. 즉,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입장하지 않고는 스톤헨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쳐다볼 수조차 없도록 기가 막히게 배치해 두었다. 심지어, 돈을 안 낸 사람은 주차장에도 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멀리서 왔다 하더라도 돈을 안 낸 사람은 그냥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스톤헨지를 못 보고 돌아가야 한다. 딱 내가 그랬었다.

물론 이곳까지 오가는 길가에서 멀찍이 보이긴 하나, 그 길의 교통량이 상당해서, 거기서 차창밖으로 손 내밀고 사진을 찍다보면 자괴감이 심하게 든다. 새벽이나 저녁엔 괜찮은데, 이땐 또 다른 문제가.. 영국은 차들이 상상외로 빠르게 달린다. (시골 지방도로인데 우리나라는 60km/h 제한에 어울리는 도로를 60mi/h 즉, 거의 95키로 속도로 달리도록 허용함) 혹시 차들이 느리게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이심전심으로 용자 한 명이 앞에서 슬로우로 지나가면 다들 올타꾸나 그걸 뒤따르며 구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방식은 비추다. 이렇게 차에 앉아서 슬쩍 보고 지나가도 되는 그런 것일까? 스톤헨지가?? 그럴려구 여까지 왔나??? 스톤헨지는 '그 것'이 위치한 '그 곳'에도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설령 그 자체의 의미는 후대에 잊혀졌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그 곳을 향해 걸었던 그 흔적 자체도 인류가 생성해온 문화의 일부 아닐까.



사실, 아주 옛날 옛적부터 스톤헨지로 향하는 길Avenue은 따로 있었다. 이 고대 도로는 현재 연구진들에 의해 대충 어느 방향이겠구나 짐작해서 알려져 있지만, 그 지역 전체가 지금은 양떼 목장으로 '인클로저' 되어있는 지역이라 사람들이 출입하기 쉽지 않다. 도로를 내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도 안 된다. 관광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용도로 그 도로를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로마의 아피아가도를 따라 8차선 도로를 깔겠다는 발상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비지터센터를 멀찍이 설치한 것을 좋은 의도로 해석해 봐줄 수도 있겠다~)

자,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고대 Avenue를 따라 스톤헨지까지, 순례자의 마음으로 걸어가보는 코스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완전 무료이며, 합법이다. 다만 두 다리가 고생을 좀 한다! 

1. 우선 차를 타고 이곳까지 가야 한다. (오른 쪽 빨간 화살표)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 가능.

이곳은 버거킹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고 잠잘 숙소도 있는, 일종의 고속도로 휴게소 지역이다. 관광객들이 스톤헨지를 구경하러 가기 전이나 후에 여기서 햄버거와 칩스를 사먹곤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런던 중심부에서 차로 대략 2시간 걸린다. 위치는 Travelodge Stonehenge로 검색하면 편하겠다.

이 지역 전체적으로, 주차는 무료다. 다만 주말엔 매우 붐빈다.

2. 이 지역 뒷쪽에 있는 마을로 접어들어서 조금 걷다 보면, 길 가에 초라한 나무로 만든 오래된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거기엔, "스톤헨지 가는 길, 3과 1/2마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자, 눈치를 채셨는가. 여기서 잠시 21세기 현대인의 정상적 사고를 접어놓고, 저 길을 따라 순례를 해보자는 것이다. 3과 1/2마일이면 왕복으로 치면 11키로에 달하는 꽤 먼 거리다. 족히 3시간은 걷는다.

한국에서 구글맵 위성사진으로 코스를 짤 때, 이렇게 목장 지대를 가로질러 가면 보이긴 하겠다 생각은 했는데, 확대를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여기저기 철조망으로 막혀있어서 실제로는 길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럼 그렇지, 돈 버는 곳에서 허투루 하겠나 싶어서 애초에 포기했던 옵션... 그런데 막상 실제로 예약을 못해서 스톤헨지 비지터센터에서 쫓겨난(?) 상황이 되고 보니, 그리고 마침 저 이정표를 발견하고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저 길로 들어섰다. 목장길로 비공식 경로로 어디서부터 막힐지도 모르고 제대로 보일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정표 하나 믿고 걷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불안하기는 했지만, 왠지 이런 미친 짓이라도 해야 그날 일정이 덜 섭섭할 거 같아서 걷고 또 걸었다. 결과적으로 이 포스팅을 올릴 수 있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3. 처음엔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는 매력에 빠져서 힐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이 가면 갈 수록 멀다.. 사방으로 펼쳐진 공간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양, 소, 개, 파리, 바람, 구름, 그리고...... 이런 시간은 도시인들로서는 쉽게 해보기 어려운 귀한 경험이다. 다만 땡볕이나 혹한기에는 하지 마시길...  

개 산책 시키는 분들, 자전거 타는 분들이 종종 보인다.

한참을 가면서도 한구석 불안감이 있었는데, 천사가 나타났다. 중간에 시베리안허스키를 데리고 걷는 멋지게 생긴 아저씨가 마주 오는데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 데어 스톤헨지? 캔 아이 씨 댓?? 물어보니 맞다고 저기서 뭐 대충 이리저리 가면 된다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ㅎㅎㅎ 


4. 중간에 목장 주인들이 쳐놓은 철조망을 만날 때마다 소심해지면서, 내가 이 길을 진짜 가도 되나 불안감이 엄습하고, 꼭 이렇게까지 해서 가야 하나 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순례자의 길이 바로 그러하다는 사실... 자, 힘을 내보자. 저 철조망은 양들을 못 나가도록 한 것이지, 이곳을 지나는 사람을 막는 것이 아니다.

가다 보면 아래 사진처럼 이정표가 한 번 더 나와서 더욱 확신을 준다. ㅋㅋ

철조망을 만나도 두려워 말자.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닫혀있는 문은 당신을 가로막기 위한 문이 아니다. 길을 따라 사람은 지나가는데 양들은 열지 못하는 잠금장치가 된 문에 불과하다. 과감하게 인간답게 지능을 발휘해서 문을 열고 당당히 지나가자. 다시 말하지만, 합법적인 순례길이다.


그런 심리적인 난관만 극복한다면, 나머지 문제는 아마도 따가운 햇살이거나 혹은 비가 오는 것, 둘 다 아니라면 양들이 싸놓은 똥밭을 잘 피하는 일일 것이다. 걷고 또 걸어서 언덕을 오르내리며 철조망 몇 개를 더 지나야 한다.


5. 중간쯤 와서 이제 지칠 때 쯤, 저 멀리 스톤헨지가 보일 것이다. 까마득하다. 여기서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걸으면, 고대 스톤헨지 Avenue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낡은 안내표지판이 보일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구글링으로 보충하시자.


6. 여기서 또 다시 철조망 문을 열고, 바로 그 Avenue를 따라서 걸어가보자. 보기에는 거의 평평해보이는 구릉이지만, 오프로드를 두 발로 걷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게 바로 순례자의 길이다. ㅎㅎㅎ 운이 좋다면 당신과 같이 정신 나간(?) 또 다른 순례자가 이 지루한 길을 동행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런 자를 발견한다면 속도를 조절해서 만나서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며 심신의 상태를 함께 북돋우며 걸어가보자.

7. 마지막 철조망을 넘으면 경사가 꽤 되는 언덕이 나오는데 이곳엔 양들의 똥이 지천이다. 잘 피해서 조금 오르다보면 갑자기 눈앞에 스톤헨지가 똭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연출을 경험할 것이다. 


8. 여기서부터는 빨간 금줄이 쳐져 있고 양들이 너 뭔데 라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우두머리 양이 경고성으로 짜증 섞인 메에에~~~를 시전할 수도 있다. 양짜증이다. 해서, 여기서부터는 안 들어가는 게 좋다. 게다가 조금 더 들어가면 입장료 내고 들어온 사람들이 당신을 보게 될텐데, 그러면 그들의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직원들 입장에서도 거슬릴 것이고... 어디서나 적정과 절도의 원리. 적당히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이것도 순례자의 덕목이다.


9. 스톤헨지를 고대 순례자의 태도를 가지고 만나보았다. 문제는 이제 3과 1/2마일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ㅎㅎㅎ 원래 이것까지 생각하고 걷는 것이 바로 순례자의 마음이다. ㅋㅋㅋ 싫어도 이젠 어쩔 수 없다. 스톤헨지를 찾아오는 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다시금 묵상하며, 왔던 길을 차분히 되돌아가자. 당신의 가슴에 벅찬 감동과 뿌듯함이 오래오래 남게 될 것이다.


내 경우에도, 돌아오는 길은 정말 힘들었지만 뭔가 이뤘다는 생각에, 그리고 고대 애브뉴를 통해 찾아갔다는 벅찬 마음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 아까 그 시베리안허스키 아저씨를 또 만났는데 잘 다녀왔냐고 해서 엄지 척을 해드렸었다. ㅋㅋㅋ

 

10. QnA

Q. 목장길로 그렇게 들어가는 거 목장 주인에게 실례 아닌가?
A. 목장 주인 할아버지와 직접 대화한 내용을 참고하시라.
"너 여기 어떻게 왔냐."
"네, 이래저래 휴가차 왔슴다."
"휴가를 뭔 이런 시골 구석에서 보내냐. 딱하다."
"스톤헨지 예약 못해서 여기로 들어왔슴다."
"오! 잘했다. 원래 이게 제대로 된 길이다. 자동차 타고 와서, 저렇게 줄 서서 한바퀴 도는 것에 무슨 필링이 있겠냐. 네가 제대로다."
"이 길로 맘대로 지나다녀서 쏘리하다."
"무슨 소리. 살다보니 목장이 스톤헨지 구역을 차지한 것이지. 원래 스톤헨지의 땅이요, 이 길은 순례자의 몫이다."
 
Q. 이런 거 알려지면 스톤헨지 영업에 지장 있는 거 아닌가?
A. 부자 걱정은 뭐다?? ㅋㅋ 그리고 왕복 11키로를 양똥을 피하며 걸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전혀 지장 없다.

Q. 다시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도 이렇게 갈텐가?
A. 내가 미쳤나. 그 짓을 또 하게... ㅋㅋㅋㅋ

Q. 어차피 멀찍이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굳이 이 고생을 해야 하나? 
A. 한 가지 방법은 위에서 소개한 마을에서 하루 자고 담날 새벽 동트기 직전에 차를 타고 스톤헨지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로 가는 것이다. 그땐 교통량이 없으니 괜찮다. 아래에 사진으로 안내하겠다.

새벽에 차를 몰고 가면 이렇게 한산한 가운데 스톤헨지가 보인다.

서행하면서 이렇게 차를 잠깐 멈출 지점을 잘 찾아보자. 아래 지도에 표시해 놓겠다.
* 도로 넓이에 비해서, 새벽에는 차들이 매우 빠르게 달리므로,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나도, 구름 속에서 해가 뜨면서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는 그 순간에, 스톤헨지 곁에 서있을 수 있었다. 

 

인간이 스톤헨지를 찾아갈 때 취해야 할 바른 자세 편, 끝. ^^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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