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부터 푹푹 찐다. 어제 무리한 것도 있고 해서 온 몸이 뻐근하고 뻗쳤다. 하지만 아내랑 만나서 놀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노는 일 말고도 노리치에서 내가 해야 할 중요한 미션은, 아내의 기숙사 짐을 모두 빼서 새 기숙사를 배정받을 때까지 보관해놓는, 일종의 '포장이사'를 하는 일이다.
슬슬 짐을 싸둬야 될 거 같아서, 불필요한 짐을 줄이는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그냥 놔둬도 된다는 아내를 닥달해서 도서관에 책 반납 시키고 다시 방에 와서 더위를 견디다보니, 샤워를 몇 번씩 해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차라리 나가서 놀자! 하면서 뛰쳐 나왔다. 영국에 와서 이렇게 더위 땜에 할 일을 못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기에, 좀 당황스러웠다. 지구촌 이상기온... 정말 문제다 싶다.
차를 내 숙소 근처에 대놓고 20분쯤 걸리는 노리치 시내로 걸어갔다.
이곳 까페에 왔더니 일단 에어컨 덕에 시원하고, 월화수 반값이라 엄청 저렴하다. 아내가 여기는 고급스러워서 못 들어와봤다며 좋아했다. 영국은 일본의 '먹어서 응원하자'와 비슷한 컨셉인지, 월화수에 식당/요식업체 50% 할인 정책을 펴고 있다. 이걸 잘 이용하면 여행경비 엄청 줄어든다.ㅋ
저녁에는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내의 살림이 엄청나게 늘어 있었다. 아내가 미리 아마존에서 사놓은 종이박스를 조립하고, 물건을 담았다. 저녁 식사로는 지친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주었다. 막판에 마늘을 너무 많이 넣어서 국물맛이 좀 이상해진 거 빼고는 간만에 꿀맛이었다.
짐을 조금 더 싸다가, 이번엔 내가 지쳐서 먼저 숙소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바로 꿀잠을 잤다. 내일은 이삿짐을 스토리지 업체에 보관하고 아내랑 브리튼 섬 중북부로 올라가는 여행을 떠난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모든 짐을 챙겨서 학교로 이동했다. 오늘 드디어 아내 기숙사 방을 빼고 아내와 여행을 출발한다. 오늘도 푹푹 찐다.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 더위. 아내가 아침 준비할 동안 어제 미리 포장해놓은 박스4개를 차에 싣는데 땀이 뻘뻘.
아침 먹고 박스 한두 개를 더 포장한 뒤, 계약해두었던 인근 스토리지 업체에 갔다. 주의사항 등을 듣고 공간을 할당받고, 짐을 넣었다. 빅뱅이론에서 개인 스토리지를 쓰는 쉘든을 보고 인상깊었는데, 우리가 그 서비스를 이용할 줄이야 ㅋㅋㅋ
짐을 넣어놓고 다시 학교로 와서 냉장고 청소(?) 차원에서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 점심을 차려먹고 그 사이에 포장을 더 하고... 오후 2시쯤 거의 모든 짐을 박스로 만들었는데 계산해보니 토탈 14개의 박스와 24인치 캐리어 2개가 설이의 모든 짐이었다... ㄷㄷㄷ
다시 학교로 와서 마지막 정리와 열쇠반납 등을 하고, 여행짐을 모두 차에 싣고는, 드디어 출발!
아내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 시간 반 정도를 운전해서 오늘 예약된 숙소로 향했다. 이 시점에서 아내는 무척 기분이 이상하다고 자꾸 말했다. 하긴 그렇겠지. ㅎㅎㅎ 아내와 둘이서 노리치 시내를 벗어나서, 나 혼자 여행하면서 잔뜩 봤던 그 시골 풍경을 만나자, 나 역시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원래 계획은 노팅엄 근처에서 첫 여행을 출발하려 했으나 아내가 가고싶은 곳이 있어서 그 지역 근처로 숙소를 잡다보니 피크 디스트릭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잉글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삼림 지역이다. 우리 숙소는 행정구역상 매틀록이라는 지역에 속한 로슬리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자, 이번 여행이 두 사람에게 또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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