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이번 영국 여행의 시즌2가 시작되었다. 시즌1은 이 카테고리의 앞부분에 있는 포스팅이다.
시즌2의 첫 거점은 영국의 첫 번째 국립공원 '피크 디스트릭' 지역 근처, 더비 셔에 속하는 작은 마을 로슬리. 도착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훠얼씬 아름다운 동네였다.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을 서포트하는 마을 중 하나. 가장 대표적인 마을은 인근에 있는 베이크웰이고, 이곳은 차로 8분 거리에 있는 조금 더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을 고른 이유는 아내의 일기 중 일부를 인용함으로 대신한다.
"그이가 에딘버러 올라가기 전 중간 기착지에 숙소를 잡으라고 해서, 망설임없이 'Peak District'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영국 최초의 국립공원에서 맑은 공기를 맛보며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변 관광지를 찾아보니, 내가 꿈꿨던 'Chatsworth House'가 근처에 있다는 것 아닌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녀의 소설을 드라마/영화화한 것을 소설별, 시대별로 거의 찾아봤는데, 그 중에서 오만과 편견은 베스트 중의 베스트였다. 다아시 성으로 알려진 Chatsworth house는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배경으로서 남녀 주인공의 갈등이 극적으로 해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북쪽으로 좀 올라와서 그런가, 그간의 더위는 이제 한풀 꺾인 느낌이다. 바깥 공기가 서늘하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창밖에 손을 내밀면 차가운 느낌까지 든다. 아내는 오늘이 여행 첫째 날이지만, 나는 나홀로 여행 시작 후 1주일이 흘렀고, 이사를 하고, 운전을 오래 했더니, 많이 피곤했다. 방에 들어와서 구석구석 소독하고 온 몸을 샤워하고 물건을 정리하고 저녁을 차려먹고는... 배 깔고 엎드려서 저녁 내내 푸욱 쉬었다.
우리 부부는 7개월만에 만났고, 서로 '쉼'이 필요했으므로, 시작부터 너무 빨빨거리고 돌아다니지 않고, 이 휴양지에서 4박 5일을 지낸다. 숙소는 주말에 방이 없는 관계로 2박씩 나눠서 두 군데(바로 옆에 붙어있음)를 이용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 지역을 고른 이유 중 하나는 아내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와 영화 "오만과 편견"의 촬영지 중에 미스터 다아시(Mr. Darcy)의 집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제인오스틴의 소설 원작으로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재미도 재미지만 영국의 당시 생활상을 너무도 잘 묘사해서 나 역시 관심있게 봤었다. 작품 속에서 다아시의 대 저택으로 소개한 이곳은 '챗스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라고 하며, 구글 지도상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현재 숙소의 위치와 오늘 방문할 챗스워스 하우스, 그리고 내일 방문할 베이크웰 마을과 피크 디스트릿의 한 지점을 모두 아이폰 한 화면에 담아봤다. 대략 4박5일간 이 지역 내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림으로 그린 관광지도도 있는데, 오른쪽 아래에 푸딩 그림과 함께 베이크웰 마을이 보인다. 숙소는 그 아래 마을이고, 오른 쪽에 어제 갔던 챗스워스 하우스가 반쯤 짤려 보인다. 내일은 왼쪽 위에 있는 Peak Forest 지역에 있는 Mam Tor라는 봉우리에 간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서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챗스워스 하우스 주차장에 도착했다. 곧 투어 시간이 되어,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렸다. 우리는 거의 첫 입장객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한다는 것은 많은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우선 실내 관람이 포함된 곳을 예약할 때는 가장 첫 시간대로 정한다. 다른 관광객과의 동선이 겹치는 것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및 제균티슈를 지참하는 것은 필수! 다행히 대부분의 공적인 장소에서 Staff들은 방역 지침을 잘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어디서나 철없는 일부 관광객들이 마스크도 없이 막 떠들면서 돌아다니는 것...... 그들을 발견하면 저 멀리서부터 피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멀찍이 비켜 지나가야 한다.
그야말로, 호.화.롭.기. 그.지.없.다.
우리 부부는 이런 대저택 관람을 다른 나라에서도 두어 번 해봤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 있는 브레이커스 대저택 관람도 해보았는데, 이곳은 그런 것들이 비할 바가 아니다. 역시 오리지널은 다르다. 방마다 꾸며진 것들이 그야말로 각잡고 이를 악물고(?) 작심하고 꾸며놓은 것처럼 대단한데, 그게 또 억지로 해놓은 느낌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다.
정말 어마어마한 저택이다. 궁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이런 엄청난 부를 소유한 남자인 줄을 모르고, 처음부터 대판 싸우고 청혼을 거절했던 여주인공이, 나중에 이곳에 와보고서 느끼는 당혹스러운 순간, 그게 '오만과 편견'의 킬링포인트 중 하나 ㅋㅋㅋ
하우스 투어를 마치고 나와서 식사 장소를 찾는데, 언덕 윗쪽에 과거에 마구간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푸드코트가 있어서 찾아갔다. 마구간이라고 하지만 웬만한 저택 수준이다. ㅎㅎㅎ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가 메뉴에 보이길래 오랜만에 시켰다. 비주얼은 그럴 듯한데, 내 인생에서 가장 맛 없고 비싼 햄버거였다. 이걸 억지로 먹으면서 어느 영국 식당의 구글맵 리뷰에 한국인이 적은 댓글이 생각났다. "영국 놈들이 만드는 음식이 다 그렇지 뭐..."
제인오스틴의 작품의 팬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대저택의 방문은 문학적 감수성과 심신의 힐링을 위해 인생에서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인 듯하다. 오늘의 기록을 마치며, 다시 아내의 일기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프랑스 샹티성의 주인인 콜리니 제독의 가문의 재산은 이 저택의 소유주보다 훨씬 많을텐데, 왜 샹티성은 그 부유함을 성 내부에 꽁공 숨겨둔 느낌일까? 아마도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인해 봉건제가 무너지고 수많은 귀족들이 처형 당했던 사건 때문 아닐까? 당시에 그 소식을 접했던 영국 귀족들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싶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영국은 일찌감치 찰스 1세를 처형하는 청교도 혁명을 겪었고 공리주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귀족들을 포함해서 각 계층의 사유재산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왠지 불평등에 지친 성난 민중들의 분노를 무마시키기 어렵다고 느꼈을 것 같다. 노블리스 오블리쥬 문화는 이를 위한 대안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그리하여 Chatsworth house가 예전의 규모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상상했다. 1800년대 프랑스 시민혁명이 영국 귀족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 서치해서 확인해봐야겠다."
빈과 부의 격차가 날로 증가하는 요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가치가 더 보편적인 가치가 되고 인정받고 실천되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더 우리 시대에 퍼지기를, 빈과 부의 경계에 서 있는 1인으로서 소망해본다!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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