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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섬 남해안 일주(?)를 마치고 이제 이스트앵글리아 지역으로 이동한다. 앞의 글(https://joyance.tistory.com/366)에서 소개한 그 다리를 건너서 얼마동안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아름다운 시골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달려서 프램링햄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프램링햄은 그닥 유명하지 않은 동네다. 일단 동네 이름부터가 발음하기 힘들다. 구글맵에는 프램링햄이라고 나오지만, 현지인에게 직접 하우 투 프로넌스? 더.. 넴옵 캐슬?? 이렇게 물어보고 들은 발음은 "프램링험"에 가깝다. (이걸 왜 발음 못하느냐는 표정으로 알려주심....)

이곳은 노리치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를 곳을 찾다가 얻어걸린 곳이다. 저 유명한 블러디 메리가, 에드워드 사망 직후에 왕권을 차지하려고 깃발을 올렸던 도시가 노리치였다. 하지만 실제로 군사를 모으고 커맨드센터를 차린 곳은 이곳이다. 프램링햄 캐슬에서 일단 방어진지를 구축한 뒤, 군대를 모으면서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결국 - 다들 아시다시피 - 그녀의 판단은 적중했고, 영국은 다시금 카톨릭 왕국으로 돌아갔으며, 종교개혁자들의 꿈은 일시적으로 좌절된다.

그 스토리에 이끌려서 방문을 결정했다. 차가 없으면 누가 이런 데까지 오겠나 싶은 깡 시골이다. 허스몬큐 성이랑 또 비슷한 컨셉의, 그러나 스타일은 꽤 다른, 특별한 - 유니크한 장소의 방문이라 하겠다. 왜 자꾸 이런 데를 찾아서 기어들어가느냐 묻지 마시라. 내가 원래 그렇다. ㅋㅋㅋ

사실 중세의 캐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번에 내가 돌아보는 성들 가운데도 세 가지 유형이 있다.

1. 지금 방문하는 프램링햄 캐슬은 높고 튼튼한 외벽을 둥그렇게 둘러치고 우두머리 그룹만 보호하는 성채 스타일이다. 나머지 병력과 시설은 바깥에 있다. 유사시 보호를 받을 수는 있으나 평소에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야말로 전시 상황에 적합하다.

2. 허스몬큐 캐슬도 규모나 컨셉은 비슷한데, 다른 점은 평소에 내부에서 생활하기 좋도록 해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꼭 전쟁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거주하는 집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한 시설도 되어준다. https://joyance.tistory.com/365  

3. 도버 캐슬은 그야말로 전체가 방어진지로 구축되어 있다. 바다 가까이에 있는 성으로, 배를 타고 건너와서 포위하는 적들로부터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하므로 내부 면적이 넓어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이 경우 방어병력 모두가 성곽 안에 주둔하고 생활한다. https://joyance.tistory.com/371

※ 주의 : 위 분류는 내가 그냥 내 나름대로 한 것이므로 인용은 하지 마시길... 그러다가 숙제 망치는 수가 있다. ㅋㅋㅋ

위 분류상 1번에 해당하는 프램링햄 캐슬은, 겉에서 보기엔 성곽만 남아있고 내부에는 뭐 그냥 아무 것도 없을 거 같은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들어가보면... 실제로 그렇다. ㅋㅋㅋ 정말 놀랍도록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걸 보러 일부러 먼 길을 가야 하는가, 질문하고 싶을 것이다. 근데, 바로 그 둥그런 성곽이 아주 매력적이다.

얘들도 그걸 아는지, 이 캐슬의 메인 볼꺼리가 결국 그 성곽을 올라가서 한바퀴 따라 돌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걸 해주고 입장료를 받는다. 나 역시 올라가봤는데 꽤 흥미로웠다. 성당 탑이나 무슨 거대한 성곽의 꼭대기 전망대에는 자주 올라가봤지만 이렇게 둥그런 성곽을 한바퀴 돌아보는 맛은 색달랐다. 한국의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과는 또다른 스타일이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번호를 받아두면 편하다.

입구에서 이렇게 티켓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홍보도 한다. 나름대로 입장객이 몰리지 않도록, 한 번에 들어가는 인원을 조절해주는 역할과 함께, 주차비 냈는지 확인하는 역할도 한다;;; 그냥 들어가려다가 딱 걸렸다.

입구 옆에 이렇게 생긴 건물 옆에 보면(사진상 왼쪽) 주차비를 정산하는 머신이 있다. 신용카드로 하면 된다.
드디어 입장한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와 성문, 성벽과 감시탑이 위압적이다.
해자는 꽤 깊다. 지금은 물이 빠져있지만, 물이 있든 없든, 저 성문 앞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공격하기가 영 까다로울 듯하다.
해자 쪽으로 걸어갈 수 있는 통로. 너무 더워서 여기까지 가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오면 이런 모습이다. 코로나 시국에 무질서하게 돌아다니지 않도록 나름 관리를 하고 있다.
성곽 윗쪽으로 시설물을 설치해서 한바퀴 돌면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림과 사진으로 비교해 놓았다.
현재 박물관 및 카페 용도로 쓰고 있는 건물. 한쪽 벽이 성곽에 붙어있다. 정확하게는, 한쪽 벽이 성곽 그 자체이다.
키친이 있던 자리라는 설명. 뭘 보고 그렇게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명이 있으면 좋겠구만.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코로나 땜에 개업휴점. 이 성과 관련된 여왕이 누구냐는 질문. 정답은??

 

특히 이곳은 과거의 유적과 현대 시설물이 아주 잘 어울리도록 응용하고 살려서 - 혹은 저 까페 건물처럼 성벽에 기대어 함께 - 세팅해놨단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유적의 보존 차원에서 안 좋게 볼 수도 있겠는데, 어차피 보존이라는 것이 그냥 그대로 놔둔다고 해서 될 일인가 싶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이미 엄청나게 손상된 상태다!) 그래서 내 경우엔 이렇게 활용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내부에는 나름대로 역사 컨텐츠를 소개하고 전시물을 갖추어 두었다. 다만 코로나 시국이라 제한된 부분이 많았다.

이런 게 맘에 든다. 에어컨 기계를 벽 모양에 맞춰서 썰었(?)다. 난 왜 이런 걸 보면 막 짜릿하지??

성곽 둘레길 걷기 시작점.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라고 안내해준다. 평소에도 이렇게 해야 질서가 있지만 코로나 시국에 영국에서는 어딜 가든지 이런 안내판이 많이 붙어있다. 입구와 출구를 철저히 구분해서 사람이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그걸 잘 따르느냐는 또 다른 문제...

타워에 올라가서 보면 프램링험의 넓은 영지가 한눈에 보인다.
성곽에서 바라본 외부와 내부
프램링햄 마을 쪽 전경
이 성채의 특성상 외부와 통하는 일이 극히 중요하므로, 이를 위해 설치했었던 다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지금은 교각만 남아있다. 프램링햄 캐슬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로였을 것이다.
뒷쪽 서비스 지역. 이곳에 '아마도' 대부분의 병력이 주둔했을 것이고, 이곳을 통해 보급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냥터'라고 되어있으나 기본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는 지역이다. 물론 주로 단백질 확보를 위한....

문제는 사실 아까부터 엄청난 땡볕이었다는 거... 솔직히 1시간도 더 버티기 힘들었다. 그늘로 들어와서 무념무상 쉬는 수밖에. 그래도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메리 여왕의 인생 타이밍을 생각해본다. 자기 인생에 어쩌면 다시는 안 올 기회를 잡았을 때, 거기에 목숨을 걸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귀족들의 충동에 휩쓸리는 건 아닌지 하며 마음 졸였을 수도 있고, 원래 자기의 것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을 빼앗겼다가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흥분했을 수도 있겠다. 이단(?)에 빠진 왕실을 다시 정통 믿음으로 돌려놓아야겠다는 의분을 가졌을 수도 있겠고... 당시 군대는 또 어떤 식으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모여서, 어디서 어떻게 지냈을지 등등...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나에겐 참 좋은 순간이었다.

프램링햄 캐슬을 끝으로 나홀로 여행은 여기서 일단락 시키고, 이제 노리치로 향해 출발한다.
희상이의 나홀로 여행은 여기서 일단락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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