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영국 렌터카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굳이 여기까지 가야 하나 고민될 정도로 깡 시골에 위치한 안워쓰를 그래도 굳이 가야 했던 것은 이곳이 스코틀랜드 제2차 종교개혁의 주역이자 웨스트민스터 총대였고 언약도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사무엘 러더포드'와 관련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에서 마을을 검색했는데 나오는 거라고는 온통 풀밭이고, 집도 몇 채 보이지 않는데 공동묘지는 두 개나 있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동네였다. 지리상의 위치도 그 어떤 대도시에서도 머얼리 떨어져 있어서, 정말 큰 맘 먹고 가야만 하는 그런 동네였다.
그래도 우리는 갔다. 근처에 어느 지점에서 숙박을 잡으면서까지. 왠지 가봤자 별 것 없을 걸 알면서도 안 가보면 후회할 거 같은 그런 동네랄까. 이것도 일종의 순례라면 순례이고, 종교개혁에 관심 많은 부부의 답사 장소로서 사무엘 러더포드의 첫 목회지라고 하면 빠지지 않을 포지션이기도 하고....
사실 이게 단순한 첫 목회지가 아니라... 상황이 좀 복잡하지만 그냥 한줄로 압축하자면... "시골에서 목회 잘 하고 있었는데,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탄압을 위해 영향력 있는 목사들을 유배시키는 바람에 강제로 떠나가게 되었던 동네"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러더포드를 보냈다고 한다.
※ 사무엘 러더포드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특강 종교개혁사" 및
동 출판사에서 나온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제2부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새 예배당이라고는 하지만 1826-7년에 지어졌다. 그나마 더 이상 운영되지 못하고 2004년에는 폐쇄. 출석할 성도가 없으면 교구 교회는 의미가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이 건물은 지역 주민의 개인 소유가 되어, 행사나 파티용 장소로 종종 쓰인다고 한다.
다시 조금 더 들어가니, 진짜 옛 예배당이 나타났다. 어디에 주차할까 하다가 그냥 바로 돌담 앞에 주차하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이렇다 할 안내판조차 없고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어서, 맘 먹고 훼손하려면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입구에 사무엘 러더포드에 대한 소개문이 붙어있었다. Build AD 1627이라고 적힌 연도를 보니 목회 시작과 더불어 이 예배당도 지어진 듯하다. 물론 그 전에도 안워쓰 교구에 예배당은 있었다. 전임 목사님이 은퇴하면서 러더포드를 후임으로 불렀다.
내부는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다. 신성한 곳이란 인식 때문인지 후대에 누군가가 여기에 무덤을 쓰거나 기념비를 두어서 내부가 복잡해 보이지만 원래는 교구민이 모여서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던 깨끗한 장소였을 것이다. 가만 보니 나중에 영화를 찍는다고 기존 무덤을 옮겨놓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관광객들은 그냥 "올드 처치"라는 이름과 기괴한 해골 사진에 이끌려 오는 듯했다. 약 50년 쯤 전에 어떤 컬트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된 적이 있고, 아래 사진의 해골과 교차된 뼈도 그 영화의 주요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 어떤 신비로운 혹은 공포스러운 장소를 탐험하는 코스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ㅠㅠ
실제로 이곳을 답사하면서 '왜 이게 여기 있지?'라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대부분 영화 촬영 때 헤짚어놓은 것이거나, 오랜 세월 속에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것들을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리저리 옮겨놓은 탓이 아닐까 추측한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돌아오는데, 길을 따라 보이는 풍경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차차 정돈되었다.
안워쓰 답사는 한국 교회를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날의 복잡했던 심경은, 추후 기회가 있으면 정리해서 업데이트 하기로 한다.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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