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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체스터가 많다. 체스터라는 말은 고대 로마군의 야영지(Castrum)를 뜻한다. 맨체스터, 콜체스터, 윈체스터 등 뒤에 체스터가 붙는 도시들은 대부분 그렇게 형성된 도시들이다. 온갖 '뭔체스터'가 있지만 그거 다 떼고 딱 체스터만 있는 도시가 있다. 리버풀 근교에.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도시 중 하나가 바로 이 체스터였다. 그런데 체스터 도착을 며칠 앞두고 숙소 예약을 하려고 부킹닷컴에 들어갔더니 생각보다 가격대가 높았다. 그래서 플랜B로 리버풀 일정을 늘이고 체스터는 리버풀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면 번거롭게 체크인 체크아웃을 하거나 짐을 싸고 풀고 하지 않아서 좋다.

다만 가는 길에 강을 건너야 하는데 지하 터널을 통과하면 이렇게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내야 한다. 잠깐 당황했으나, 무인 시스템으로 카드 결제가 잘 된다. 

터널은 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킹스웨이터널이고 다른 하나는 퀸즈웨이터널이다. 왕이나 여왕 급은 되어야 다니는 길인 모양이다.ㅋ 갈 때는 킹즈웨이로 갔고 올 때는 퀸즈웨이로 왔는데 요금소는 모두 강 건너편 비컨헤드 쪽에 있다.


체스터 도착!
정말로 중세 느낌이 물씬 났다. 그런데, 요크나 스털링 때와는 또 다른 점이 보인다.
바로 이것. 이것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2층 올라가는 계단인데...

유럽 도시 중심지는 보통 1층은 상점이고 2층부터 일반 집인 경우가 많고, 상업이 발달한 도시는 1층에 아케이드를 설치해서 비를 맞지 않으면서도 쇼핑이 가능하도록 해놓는다. 이게 생각보다 멋지다. 도시의 품격을 올려준다랄까. 오늘날로 치면 삼성동의 코엑스라든지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등이 그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 유럽을 다니다 보면 뭐 그런 아케이드가 발달한 도시는 많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 도시 체스터는, 아케이드가 2층까지 발달해 있다! ㅎㅎㅎ

이렇게 2층까지 발달된 복합 아케이드 쇼핑타운이 도시 중심부 전체에 설치된 경우는 한 번도 못 봐서 너무 신기했다.

체스터의 가장 중심부에 도착했다.

거리의 악사가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이곳이 버스킹 장소인데 우리나라 TV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을 여기서 촬영했다.

 

워낙 버스킹을 많이 하는 곳이라 누가 해도 존재감이 별로... ㅎㅎㅎ

 

이 근처 2층 아케이드에서 비밀통로(?)을 따라 나가면 대성당 쪽으로 가는 좁은 골목이 나온다.

 

우연히 발견한 이 골목이 무려 중세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옛 골목이라고 한다!
골목을 지나서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발견의 기쁨. 뿌듯한 아내.
성당의 외형은 복원의 흔적이 뚜렸했다. 통상, 사암으로 만든 외벽은 풍화에 약해서, 보통 근현대 시기에 복원을 많이 거치곤 한다.
마침 무슨 행사를 하는지 방송 촬영을 하고 있었다.

 

오호~ 상당히 역동감 있는 모습들 ㅎㅎㅎ 일반적인 '가고일'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교회 묘지가 없길래 두리번 거렸는데 비석을 죄다 바닥에 깔아서 공원처럼 만들었다. 이런 것도 참 인상 깊은 모습~
다시 중심부 거리로. 이번에 갈 곳은 저 체스터 성곽의 동쪽 문이다. 성문 바깥쪽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올라가서 바라본 성벽 바깥쪽 경치.
안쪽

 

여기서부터 성벽 따라 돌기 코스를 시작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남쪽은 공사중이라 막혀있었고 북쪽으로 걸었다. 이거 한 바퀴를 다 돌려고 했었는데 아쉬웠다. 사실 체스터 최고의 명물은 바로 이 성벽 돌기 코스이다. 

구도심을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이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것이 주요 관광 코스!
바로 성곽 바깥쪽에 널널한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은 장애인이나 노약자 전용이다. 멋진 아이디어다. 우린 외곽에 주차하고 기꺼이 걸어왔다.
성벽을 따라 도는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대성당 뷰가 가장 멋있다.

성벽을 따라 돌다가 발견한 멋진 장소. 바로 찰스1세의 이름이 붙은 타워. 청교도 혁명(잉글랜드 내전) 때 찰스1세가 이곳에서 전투 장면을 지켜봤었다고 되어 있다. "특강 종교개혁사(흑곰북스)"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한 찰스1세의 이름을 느닷없이 여기서 만나니 꽤 반가웠다. ㅋㅋㅋ

조금 더 걸어서 북쪽 성문에 도달했는데, 공사중이라고 더 진행하지 못하게 막혀있었다.
이쯤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이 사진이 북쪽 성문의 남아있는 부분이다. 메인 도로로 남북을 뚫어서 시청 광장으로 이어진다.
광장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이 광장이 항상 중심인데 체스터는 약간 다르다.
여기서 다시 대성당 쪽으로 가는 통로에 또 다른 문이 있다. 아내는 마차가 달리던 길의 흔적을 추적 중이다.
광장 쪽에는 또 다른 관광 명소, 아기 코끼리 '자냐'. ...자냐?? 고등학교 때 아내 친구의 별명이 '또자'였다는데 비슷한 친구인가...
광장은 포럼과 마켓의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지금도 '만남의 광장' 역할이 강하다.

이제 슬슬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오래된 집들을 구경한다.

 

남쪽 성문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강이 보인다. 강 이름은 디(Dee) 강이다.
그래서 이 오래된 다리의 이름은 Old Dee Bridge. 상하좌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제 다시 호젓한 골목길을 골라 걸으며 중심지로 돌아온다.

2층 아케이드는 이렇게 골목을 건너 뛰어 연결통로(Rows)까지 놓았다. 도대체 얼마나 활발했던 상업지구였을까...

 

이 탑(?)에 얽힌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다 적기 귀찮아서, 아내의 일기를 인용해본다. ^^;;

우리 부부가 샌드위치를 먹던 벤치 앞에 있던 기둥. 기둥 맨 위 꽃봉오리같이 생긴 돌에 원래 성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16세기에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체스터 역시 성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다. 군인들이 이 성상이 있는 부분을 끌어내리면서 "우상이다!"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돌을 몰래 숨겨 두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 돌을 원상복구할 날을 꿈꾸며. ㅎㅎㅎ 그들의 소망대로 기둥 위에 돌은 다시 복구됐다. 성상있는 부분들만 깔끔하게 제거된 채로.

우리가 돌아다닌 동선을 지도에 그려봤다. 성벽 둘레길이 공사중이라 막혀서 일부분(1/4정도)만 걸은 것이 아쉽지만 나머지는 대충 다 잘 보면서 돌아다닌 듯하다. 다음에 혹시 방문하실 분은 주차장을 Market Place 쪽으로 잡으셔도 좋을 듯하다. 조금이라도 덜 걷는 것이 유리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체스터는 넘나 매력적인 곳이니 반드시 하루 온종일,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을 투자하시라. 우리는 네 시간 반 정도 있었는데 떠날 때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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