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리버풀 여행을 준비하면서 좀 헷갈렸던 것이 있었다. 보통은 그 도시의 대성당을 구글맵에서 찾을 때, 따로 검색을 하지 않아도 대충 중심부를 확대하다 보면 딱 눈에 띈다. 근데 리버풀 지도를 본 나는 혼란에 빠졌다. 대성당이 두 개다. ㅋㅋ 하나는 로마가톨릭 대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교회(성공회) 대성당이다. 그런데 이게 또 건축양식이 엄청 특이하다. 둘 다 말이다. ㅋㅋㅋㅋㅋㅋ 나는 너무 궁금증이 일어서 따로 시간을 투자해서 두 곳 모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둘이 서로 딴 데 보고 있다. ㅋㅋㅋㅋㅋ


먼저 간 곳은 로마가톨릭 대성당. 정식 명칭은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Liverpool Metropolitan Cathedral)이다.

사진으로 보면서도 신기했지만, 직접 와보니 진짜 희한하게 생겼다. 성당 건물에 대한 나의 모든 배경지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성공회 대성당 첨탑이 보인다. 저것도 희한하게 생긴 건 마찬가진데, 뒤에서 언급하겠다.
내가 들어간 남쪽 입구 ㅎㅎㅎ 입구가 양 쪽에 있다.
입구에 방문객을 위한 디스플레이가 꽤 자세히 되어있다. 신경 써서 만든 듯했다.
건축이 이렇게 되기까지의 기구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ㅎㅎㅎ 나를 위한 전시물인가!? ㅋㅋㅋ

※ 기구한 역사에 대해서 길게 쓰고 싶진 않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허영심과 경쟁심이다. 내가 남의 종교에 대해 이렇게 평가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내 개인적인 견해가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주시길. 아래에서 소개할 영국교회의 대성당이 대규모로 건축되자, 그에 걸맞게(?) 로마 가톨릭도 큰 성당을 설계한 것이다. (물론 영국교회의 대성당 역시 새로 생긴 리버풀 교구에 걸맞는 규모로 지어야 한다고 고집부려서 무리한 설계를 했다가 지금의 희한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니 둘 다 허영심 부린 것은 동일하다.) 어마어마한 건축비는 대부분 리버풀 부두 노동자 계층의 가톨릭 신자들이 댔고... 하지만 세계대전 발발로 경제가 폭망하면서 (그리고 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ㅠㅠ) 대폭 축소된 형태로 지금의 대성당이 된 것이다.

내부 모습은 더욱 충격적이다. 와.. 이게 성당이라니???
어쩌면 웬만한 개혁파 교회보다 더욱 개혁된(?) 형태로, 회중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넓다. 
그러면서도 신전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와 진짜 신박...
국내 개신교 대형교회가 지향하는 건축 모델이 딱 이런 거 아니었나? 사랑의교회 보는 줄...
5파운드씩 기부할 수 있도록 카드결제기까지 마련되어 있다.
개신교인줄...
큰 도로에서 본 모습. 까페 바는 물론이요, 무려 비지터센터가 있다.
다른 날 리버풀 대학 쪽에서 찍은 사진.
또 다른 날 대학가에서 찍은 사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가톨릭 성당이 추구하는 신비주의와 교회론이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설계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웠는데, 리버풀에 와서 또 다른 맥락에서의 충격을 받는다. 급격히 국제화 되고 진취적으로 팽창된 도시가 가톨릭 인구를 포용하면서도 미래적 가치를 제시하기 위해 스스로를 쇄신할 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준 현장이 바로 이곳 아닐까 싶다.

이곳에 대한 소감을 대신해서 아내의 일기 한토막을 인용한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설계가 4번 정도 바뀌었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기념하는 건축물과 기념물들을 영국 전역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전쟁 때문에 일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성당 건축이 어려웠다는 건축 역사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세계평화가 그저 허울뿐인 구호가 아니라, 매일매일 개개인이 노력해야할 삶의 목적 중 하나가 되면 좋겠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 갈등을 후손에게 이어주지 않는 것, 역사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것, 내가 먹고 소비하는 모든 행위가 다른 나라와 세계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등등의 것들을 인식하는 것 자체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 아닐까 싶다.

다음은 영국교회 대성당에 가본다. 이곳도 외형이 워낙 특이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앞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을 가보니 이유를 알겠다. 이곳도 1880년에 리버풀 교구가 새로 생기면서 주교좌에 걸맞는 대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후 실제로 건축을 시작했을 때는 현대인들에게 영국 국교회가 뭔가 새롭고 활기차고 다정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 속에서 나름 엄청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겉은 평범해 보여도 내부는 굉장히 세련되고 열려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대성당 모습이 특이해진 더 큰 원인은 결국 돈 문제, 예산 부족으로, 서브 채플과 고딕 첨탑이 애초 설계대로 두 개씩 대칭으로 되지 못하고 하나씩만 남았다. 그래서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위에서 봐도, 전형적이고 평범한 성당의 모습은 아니게 되었다.

북쪽 출입구에 요상한 청동상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입구에도 청동상이 있던데, 이것도 경쟁인가 싶다. 그리고 이곳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딕 아치가 있다는 것인데 정말 높긴 높았다. 파리의 유스티노 성당에 갔을 때도 아치가 높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곳은 아치가 높기만 한 게 아니라 넓기도 해서, 오히려 높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세계 최고 높이가 맞긴 맞는 모양.

영국 국교회의 리버풀 교구를 책임지는 주교좌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높긴 높다. ㅎㅎㅎ
큼지막한 세례반이 있다. 로마가톨릭 성당의 성수반처럼 꾸며놓았다. ㅎㅎㅎ 사람들은 분명 혼동할 것이다.
교리는 정말 깔끔 담백하다. 교회론이 로마가톨릭과 다를 바 없어서 그렇지, 이런 기초 교리의 전수는 복음주의 교단들보다 훨씬 낫다.
교리에서 그런 거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봤자, 이런 거 해놓으면 여기 와서 촛불 붙이며 소원 빈다. (그러라고 아예 안내하고 있었다.)
교리에서 그런 거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봤자, 이런 거 해놓으면 저곳이 지성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제들만 들어간다.)
성경 낭독을 위한 자리라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원래 어떤 모습으로 지으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모형. 내부에 불도 켜진다.
리버풀 대성당의 초대 주교였던 존 C. 라일(한국에서도 유명한)의 무덤이 내부에 안치되어 있다. 역시 이런 것도 로마 가톨릭과 같은 모습.
아마 이 성당에서 가장 찬란한 장소가 아닐까 싶은 레이디 채플. 지형 때문에 들어갈 때는 반지하 처럼 되어있는데 반대쪽을 보면 1층이다.
가톨릭에서 마리아를 대접하고 공경하지만, 이곳은 다 비슷한데 마리아라고 하지 않고 세계의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제단화도 그냥 그림이 아니라 정교한 조각작품으로 되어 있다.
대성당의 다른 공간들 역시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을 살리는, 센스 넘치는 인테리어로 점철되어 있다.
설교단. 그리고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별도의 소 채플실.
그리고... 대박! 성당 내부에 거대한 기념품샵이 있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리버풀 답다! ㅎㅎㅎ
다시 들어왔던 입구 쪽을 보면, 매우 현대적인 핑크빛 타이포 작품이 눈에 띈다. "I felt you and I knew you loved me".

찾아보니 Tracey Emin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걸 성당 안쪽에 걸다니..  참고로 Tracey Emin은 기발하지만 기존 정서로는 무척 불편한 작품들을 남기기로 유명한 선구적인 예술가였다. (작품을 낼 때마다 사회적 논란ㅋㅋ)

역시 리버풀 답다. ㄷㄷㄷㄷㄷ

밖에서 본 대성당 남쪽 창과 레이디 채플(왼쪽).

 

백 년 전에 시작된 두 대성당의 배틀은 전쟁과 대공황 등을 거치면서 리버풀이 한풀 꺾일 때 양쪽 모두 절도와 겸손을 배워야 했다. 지금 두 공간은 교인들이 별로 없지만 대신에 관광객들에게 심리적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교회들도 한때 예배당 건축과 디자인에 열을 올리던 적이 있다. 지금은 역시 돈 문제로 그런 기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하지만 정작 꺾여야 할 것은 예배당 건축 열정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허영과 교만이며, 그것을 꺾는 주체는 재정 문제가 아니라 마음 속 깊은 회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다음 글에서 계속

 

[영국] 리버풀(4) - 리버풀 대학 '놀리지 쿼터'와 다종교구역 '프린스애비뉴'

오늘은 리버풀에서 좀 특이한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웬만한 한국인 관광객이라면 이런 코스로 절대 다니지 않을 것이다. 리버풀 대학은 그래도 아시안들이 좀 보였지만, 두 번째 소개할 코스는

joyanc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