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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허스토리(현재는 폐간됨)

1999년 10월호 [데스크칼럼] "광주에 뭐 볼 게 있어?"

시에서 발행한 관광홍보물을 살펴보면 으레 ‘가사문화권(歌辭文化圈)’이라 하여 면앙정가로 유명한 정철 선생의 소쇄원․식영정을 비롯 여러 가지 문화재와 유적지들이 소개되어 있다. 광주에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무얼 보여줄까’, ‘어디에 데려갈까’하고 고심하는 사람들에게 가사문화권은 내심 위안을 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가사 문화권’은 광주의 것이 아니다. 꼽아보면, 그것은 광주보다는 담양․창평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지역문화재를 모아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가사문화권을 광주와 연관시켜 홍보자료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광주라는 도시를 관광도시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럴싸한 문화재나 유적지가 별로 없고, 태생적으로 광주는 전남의 행정도시로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개화기와 일제치하를 거쳐 광주가 전남의 중심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광주가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산재한 의미들 속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아내어, 그것을 한 두 가지로 이름 붙여 규정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다. 그것이 질서가 되어 혼란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규정한 인간이 잠깐만 방심을 하면, 도리어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해가 될 수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갖가지 상징들과 명문화된 규정들로 인해 실제의 풍부한 의미들을 망각하고 기호화 된 그것만 기억해버린다면 말이다. 끊임없이 상징과 실제를 접목시키는 작업과 사고 작용은 그래서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렇다면 ‘광주’라는 상징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언제부턴가 ‘광주’를 단 두 가지만으로도 표현해낼 수 있는 놀라운 상징화 작업을 습득해냈다. 누군가 광주를 대표할만한 게 무어냐고 해온다면, 광주에 사는 여러분은 무슨 답을 하겠는가. 아마도 ‘예향(藝鄕)’과 ‘의향(義鄕)’일 것이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이 시대에, 무심한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놓을 수 있는 매우 그럴듯한 상징들이다. 매스컴과 대외 홍보자료들의 홍수 속에서 광주의 문화는 어느새 두 개의 단어로 충분히 함축할 수 있는 그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면 예향과 의향이란 상징 뒤에서 그 배경이 되어주던 것들은 어떤 것일까? 따뜻하고 푸근하며 온갖 풍파를 다 감내하던 어머니와도 같은 무등산과, 뜨거웠던 80년 5월, 그리고 광주비엔날레, 예술의 거리 등등…. 예향과 의향이란 표현도 이만하면 구색을 갖춘 듯 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현실을 보자. 무등산은 군부대 시설작업과 건설업체들의 공사현장으로 들쑤셔지고, 비엔날레는 경직적인 관료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떠들썩하더니 전시기획위원회와 총감독이 전격 해임되는 등 우울한 경험을 했다. 이곳 저곳 행사용으로만 떠들썩하다가 때가 지나면 금새 시들해지는 5․18 역시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얼마 전엔 5․18 기념재단이사회가 제멋대로 비밀투표를 감행, 이사들이 자기 자신을 찍어 연임을 인정한 어처구니없는 선거를 치렀다. 그 정신과 무관해지는 움직임으로, 보는 이들이 더 심란한 지경이다. 궁동에 위치한 예술의 거리, 그곳에 사는 예술인들은 그들의 거리를 기꺼이 ‘화구방의 거리’라 표현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까닭일까. 매스컴과 홍보물의 메시지들과는 달리, 광주인들은 예향과 의향이란 대명사를 주체하기 어려워한다. 당당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잠깐 시장에서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시내 중심가와 가까웠던지라, 시장 앞 도로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날이면 이건 마치 전쟁터를 연상할 정도로 격렬했다. 그러나 좌판이나 리어카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은 수건으로 얼굴과 코를 가린 채 여전히 장사를 하셨다. 최루탄 냄새가 어린 나의 약한 살갗을 파고들면 신나는 오징어 놀이도 그만두고 방안으로 쏘옥 들어가 화장지에 치약을 묻혀 코에 대야 했던 때에도 그들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최루탄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그 다음날,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에 가득 차 있다. 생선 비릿내와 과일․야채의 싱싱한 내음,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손님을 부르는 소리들이 뒤섞인 그 공간을, 난 나의 오감을 총동원하여 즐기곤 했던 기억이 난다.

겉만 번지르한 예향과 의향의 남발. 이 때문에 우리가 손해본 것이 있다. 두 가지 상징을 막연하게 상상하다가 결국 현실감각을 잊어버린 것이다. 5․18의 기억은 온통 잿빛으로만 남겨놓고, 또 도시의 소외감과 후진성, 경직성과 폐쇄성만 탓하며 그 형상을 온통 잿빛으로 남겨 둔 광주인들이 많다. 그러나 그 잿빛 우울함은 우리가 하루하루 광주에서 살아가는 현장의 색깔은 아닐게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익숙해졌던 의식의 문제, ‘물 먹은 솜’ 같은 정체성만 가득하다. 현실에선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실감과 실망감은 왜 그리도 커다랗게 작용하는지…. 내게 ‘광주에 뭐 볼 게 있어?’, ‘광주에 대해 무슨 할 이야기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던 사람들의 심사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이번 호 광주비엔날레에 관한 우리의 작은 기획은 이런 자조적인 반문에서 조금 심각한 기분으로 시작한다….

글 : 정설 편집장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 아내가 대학 시절 여자친구였던 시절에 쓴 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