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추운 날씨였지만 집에만 있기엔 너무 지쳐서(?) 평소 가보고 싶던 과천 과학관(이정모 관장)에 갔다. 미국 여행 때 캘리포니아 사이언스 센터 등 어마어마하게 찬란한 곳을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었기에, 우리 한국의 과학전시관은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을까? 궁금했다. 또 평소에 이정모 관장에 대한 팬심 비슷한 것도 있었기에, 운영은 또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위치는 4호선 대공원역 6번출구. 지하철역과 연계가 잘 되어있어서 찾기 쉽다.
오늘은 메인 전시건물에 있는 5개의 상설전시관만 둘러보았다. 하루에 다 보기엔 체력의 한계가 있다. ㅎㅎㅎ
1. 한국과학문명관
첫 번째 전시관은 우리 전통문화 속에 담겨있는 과학 기술에 대한 것이다.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 컨텐츠가 아닐까 싶다. 이곳은 뭐 기중기나 활, 화약 정도나 있겠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다채로운 전시물이 잘 꾸며져 있었다.
옛날에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이런 과거의 것들을 약간 무시하는 투로 설명하곤 했다. 예를 들어 봉화는 "불과 연기로 신호를 전하던 시설", 화차는 "화약의 힘을 이용해서 화살을 한꺼번에 많이 날리는 무기" 이런 식이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지금은 약간 국뽕(?)이 섞이는 설명이 유행이다. "신호체계", "국가통신망", "다연발 로켓" 이런 식의 표현을 사용해서 시대적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2. 자연사관
이번에는 자연사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한국에서 그나마 공룡 뼈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다.
쓴소리 좀 하자. 명색이 국립과학관인데, 분리수거 정책이 한마디로 말해서 "개판"이다. 플라스틱, 종이 등등 다양한 분리수거를 할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설치해 주어야 할 교육적인 장소에서 달랑 이렇게 해놓은 것은 문제가 크다. 여기가 무슨 맥도날드 매장도 아니고... 특히 현 관장님이 기후위기 관련해서 대중적인 강연을 하고 계신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더욱 실망스럽다. 물론 행정상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이곳이 국립과학관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핑계가 될 뿐이다. 속히 개선되기를 바란다.
3. 첨단기술관
이곳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과학관이라고 하면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컨텐츠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관 이름은 '첨단'이지만, 대한민국의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 첨단을 한껏 익숙하게 누리며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이 전시물 하나만큼은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가성비 최고의 전시물이랄까? ㅎㅎㅎ 단지 바닥을 약간 기울임으로서, 사람의 인지감각에 어색한 느낌을 주어, 무중력 공간의 우주정거장 안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건 어떻게 정확한 설명이 곤란한데... 직접 경험해보면 면 알 것이다. ㅎㅎㅎ
4. 과학탐구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공간이다. 직접 만져보고 타보고(?) 망가뜨려보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캘리포니아 사이언스 센터의 영향을 많이 받은 티가 역력하다. ㅎㅎㅎ 오히려 더 좋은 기획도 보인다.
다만... 그래도 미국의 전시관들과 비교해서 아쉬운 점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핵심은 스토리텔링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딱 하나만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의 경우 아이들에게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 중 하나인 "공포"라는 감정이 있으며, 그것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이며, 또한 인간은 그것을 기술의 발전으로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를 하나의 큰 스토리 가운데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준비된 도구를 만져보고, 그 원리를 파악하고, 자연재난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기술을 이해하는 흐름을 타게 된다. 과천과학관에도 그런 비슷한 것들이 거의 다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흐름이 없다보니, 아이들은 이곳 저곳 이 시설물 저 전시물을 그냥 뛰어다니며 만져보다가, 잘 안 되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밖으로 나가고, 남는 것이 별루 없다. 좋은 전시관은 하드웨어만 갖춘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과천과학관의 수준이 낮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런 수준의 전시관이 한국에 있다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다. 유럽이나 다른 웬만한 선진국보다 나을 것이다. 다만, 여전히 미국 전시관이 갖춘 철학이나 교육 효과에 비교해보면 우리가 더 나아갈 지점이 분명히 보인다.
5. 미래상상SF관
첨단을 너머서 미래의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가본다. 전체적으로 가장 만족도가 높았고, 가장 선진적인 전시기법이 많이 활용된 곳이었다. 생각할꺼리도 많이 던져주었다. 다만 초등 이하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론과 의견제시,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반작용(위험성) 등을 함께 이야기하는 이런 전시 기획이 마련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아직은 한쪽 구석에 소극적으로 놓여있을 뿐이다. 자꾸 말해서 좀 그렇지만, 미국의 모범적인 전시관들에서는 이것을 아주 핵심 기획으로 삼고, 질리도록 풀어먹는 방식이다. (ex. 톨러런스 박물관)
또 하나 지적 사항 : 점검 중이라며 작동하지 않는 전시물이 왜 그렇게 많은지...? 보통 이렇게 인터랙티브한 전시관의 경우에는 관람객의 에티겟 문제로 시설물이 망가지거나 오염되어서 보수작업에 들어가는 전시물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거, 많아도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입장료 깎아준 것도 아니면서...... -_-+ 내가 날을 잘못 잡아서 온 것일까? 아니면 뭐, 정권이 바껴서 예산이 줄었나?? (전국의 도서관 예산이 줄어든 거 보면 왠지 이것도 가능성 있는 스토리...)
미래상상SF 전시실의 끝부분에는 영화나 게임, 메타버스 등의 전시물도 마련되어 있다.
시간과 체력의 한계로 오늘은 우선 상설전시관만 보고 나왔다. 일찌감치 귀가를 서둘러야 한다. 퇴근시간에 딱 걸리면 지하철에서 고통스러우므로 ㅎㅎㅎ
오늘 소감은 한마디로, 한국에도 어엿한 과학전시관이 있다!라는 자부심... 마이스터 고교에 진학하는 조카가 여길 꼭 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역시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그리고 철학이라는 생각... 앞으로 국립과천박물관이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고민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교육의 장이 되길, 두 주먹 불끈 응원한다!
끝으로, 아내가 페북에 쓴 글을 캡쳐해 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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