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토 시내를 답사하는 날이다. 본격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전에 우선 숙소 자랑 좀 하려고 한다. 아래 그림은 우리 숙소 방에 걸려있던 것이다. 멋진 숙소 부지와 주변환경과 건물까지 정말 흥겹게 잘 표현했다. (지짜 딱 이렇게 생겼다!) 누가 그렸을까? 설마 집주인이 만화가?? ㅎㅎㅎ 혹은 이곳에 묵었던 만화가가 선물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식을 먹으러 갔다. 저택 1층의 육중한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니 복도가 나왔고, 거기서 다시 문 하나를 더 열었더니 잔잔한 경음악이 흐르는 홀이 나타난다. 이 분위기 어쩔~!! 무슨 귀족의 자택에 식사 초대 받은 기분이다. 이거, 어떻게, 글이나 사진으로는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해서 서럽고 억울하다.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다양한 B&B를 경험해본 우리 부부로서도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메뉴 구성이나 인테리어 같은 것으로 따지자면 고급 호텔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1박에 12만원짜리 B&B. 가성비로 비교가 안 된다. 어제의 그 점잖은 신사 주인장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독특한 발음으로 너희를 위해서 "ㅎ에그"를 만들어줄까냐고 묻는다. 예쓰! 예쓰!! 대답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온다. "ㅎㅔ그"는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주는 스크램블 에그였다. ^^
숙소 창문 뷰 클라쓰 ㄷㄷㄷ
동네 앞산 봉우리 만년설 ㄷㄷㄷ
마침 부킹닷컴 특가로 나오기도 했고, 구글맵에서 지형을 확인해보니 약간 높은 언덕배기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꽤 괜찮을 듯해서 덜컥 계약한 곳인데... 와서 보니 정말 이곳을 숙소로 잡기를 넘나 잘했다. 경치로 따지면 이제까지 내 인생 탑 티어 숙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냥 숙소 위치 자체만으로도 이곳에 온 값을 한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곳에 한국인 투숙객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하니, 이 글을 본 다른 분들이 많이 가셨으면 좋겠다. 추천을 겸하여 구글맵 위치를 링크 걸어둔다. https://goo.gl/maps/j69bFHYNfJ7nA7X1A
식사를 마치고 트렌토 시내 답사를 시작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25분 정도 가면 된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보이는 경치도 진짜 미쳤기 때문에 그 시간이 단 한 순간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바닥(?)까지 다 내려왔다. 시내가 정말 깔끔하고, 사람들도 단정하다. 그리고 이곳은 다른 인종이 거의 안 보였고,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슬쩍 슬쩍 우리를 쳐다봤다. 그만큼 외국인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하긴 트렌토가 딱히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니까... 아시아인들에게 더 잘 알려진 도시 볼차노가 바로 윗동네니까 대부분 관광객은 거기로 갈 것이다.
구 성벽의 흔적.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구간이 남아있었고,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근처에 있는 트렌토 대성당도 이 시기에 복원 공사중이었다. (사진으로 남기긴 했으나 미관상 블로그에 올리지는 않기로... 화장하고 있는데 사진 찍는 기분이 들어서 미안했다. ^^)
도시가, 뭐랄까...
그동안 지나쳐온 이탈리아 동네들에 비하면 '청결' 그 자체 ㅎㅎㅎ
여기도 넵튠 분수 광장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지나가 봤는데, 젊은 친구들이 늘 북적거리던 곳이었다.
분수대의 조형미가 아름답고, 바닥 돌의 배치도 예사롭지 않다. 작업하시는 분들이 이걸 어떻게 다 맞춰서 하나 싶었다.
지금까지 말을 안 하고 참았는데, 우리 부부가 트렌토에 온 이유는 바로 이 성당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곳은 저 유명한 반동종교개혁 종교회의, "트리엔트 종교회의"가 열린 산타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성당이다.
뭔가 품격이 느껴지고, 중세 느낌이 전혀 없고, 르네상스의 기운이 확 느껴지면서 이쁘장 이쁘장 하다. 알고보니 바로 그런 이유에서 당시 완전 새 성당이었던 이곳에서 트리엔트 종교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신교의 등장에 대처하는 종교회의에 어울리는,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최신 건축물에서 모이기로 한 것. 신중하고 꼼꼼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문이 닫혀있는 줄 알고 그 앞에서 머뭇거리는데 마침 어떤 할아버지가 들어가시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갔다.
내부를 돌아다니는데 몇몇 그림이 익숙하다. 트리엔트 종교회의와 관련된 그림과 천상화가 있다. (앞쪽은 진입 금지)
그리고, 트리엔트 종교회의가 이곳에서 있었음을 알리는 간판이 별다른 안내문 없이 자랑처럼 딱! 서있다.
500년 전에 로마 가톨릭의 자존심을 지켰던, 그리고 나름대로 스스로의 종교개혁을 이루었던(자체 평가) 트리엔트 종교회의가 이곳에서 열렸음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이 팍팍 느껴지는 그런 내부 모습이었다.
우리 부부는 잠시동안 흩어져서 각자 볼 일을 마치고, 다시 광장에서 만났다.
식사를 하러 구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으로도 걸어가 보았다.
도심 외곽으로 나오면 주변 경치가 그저 감탄만 나오게 만든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보며 사는 사람들이야 무감각하겠지만, 우리 눈은 핑핑 돌아갔다.
점심은 인근에 있는 첨단산업센터...처럼 생긴 웬 비즈니스 구역이 있길래 거기서 먹었다. 구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신도시 느낌이다. 트리엔트 종교회의 당시 중세인들에게 새로 들어선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ㅎㅎㅎ
그냥 동네 공동묘지 뷰(?)가 대충 이런 식이다...
골목 골목을 답사하면서 발바닥은 아팠지만 정신은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뇌'가 힐링되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둘이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다리를 쉬면서 정말정말 행복했던 잊을 수 없는 1시간......
부온콘실리오 성 앞을 지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름다운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자유롭게 걸었다.
숙소로 향하는 오르막길에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다리 위로 건넌다.
숙소 전경. 그냥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집 주인은 정체가 무엇이며, 왜 B&B를 하고 살까 계속 궁금해지게 만드는 저택...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트렌토의 오후.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트렌토의 저녁.
- 언제쯤 또 이런 곳에서 머물러 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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