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절반이 벌써 지나버렸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로미티를 떠난다. 떠나는 길에 날씨가 넘 좋아서 기왕이면 어제 못 갔던 멋진 곳을 찾아서 빙 돌아갈까 하다가, 무리하면 안 될 듯해서 그냥 지름길을 택했는데, 그 길조차 아름다웠다.
그냥 국도 주위가 계속 이런 식이니 정신이 팔려서 운전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어차피 베네치아 숙소 채크인이 오후 2시 이후라서 바로 가봤자 시간이 남는다. 식사도 할 겸, 중간에 '바사노 델 그라파'라는 도시에 들러가기로 했다. 흔한 주차장일 뿐인데 경치가..... 이 도시가 얼마나 예쁠지 벌써부터 감이 온다.
이 도시도 나름대로 교통의 요충지에 있어서, 이탈리아 순례길에 속한다. 로마 -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코스.
이 도시의 핵심은 바로 이 베키오 다리. 미리 사진을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본 순간 그 아름다움에 경탄했다. 이 다리 및 그 주위 풍경만으로도 이 도시의 매력에 풍덩 빠질 수밖에...
※ '베키오 다리'라고 하면 피렌체의 그것을 얼른 떠올릴 수 있지만, 이건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베키오라는 말 자체가 '오래된'이란 의미가 있어서, 동네마다 오래된 다리가 있으면 그게 베키오 다리일 수 있다.
그림이 아니다. 폰카로 찍은 사진이다.
다리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꽉 차 있었지만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들을 다니면서 계속 경험하는 것인데, 이런 곳은 흔한 관광지와는 달리 타 인종이 드물어서 아직도 외지인을 약간 신기하게 (살짝 경계하며) 바라보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특히 깔끔하고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ㅎㅎㅎ)
천천히 도심지를 구경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허름한 골목길도 예뻐 보인다. 흐린 날 이런 곳은 또 우중충한 느낌일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는 날씨가 거의 다 하는 듯하다.
중간에 뭔가 포스가 느껴지는 약국이 있길래 들어가서 이런저런 상비약을 좀 보충했다. 닥터 뽀찌 ㅎㅎㅎ 둘러보니 단순한 약국이 아니라, 동네 이머전시 역할까지도 어느 정도 하는 듯했다. 우연히 발견했지만 아주 요긴했다.
좀 더 하류 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숨막히는 경치를 구경하고 시내로 향했다.
중간에 만난 성당. 전몰장성들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주요 전쟁들을 보니 대부분 침략전쟁;; 약간 국수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도시가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구시가 중심지 성당에 가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곳은 바사노 델 그라파의 중심 광장, 피아짜 리베르타, 즉 '자유 광장'이다.
이곳에 있는 성 지오반니 성당에서는 난민 관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재단화 느낌이 심상치 않더니만, 역시 카라바쪼의 작품.
관계자로 보이는 분에게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허락.
전시회를 보다가 울컥 눈물을 흘리는 아내.
라이프 사진전에서도 느꼈지만, 사진이 지닌 강렬한 힘은 한 순간의 팩트 그대로를 영원히 남기는 데 있다.
의도치 않았던, 낯선 도시, 낯선 성당에서, 의도치 않게 맞닥뜨린 전시회, 거기서 오는 예기치 않았던 감동... 이런 것도 자유 여행의 맛 중에 하나다.
다시 나와서 생각하니 이 광장의 이름이 참 공교롭게 느껴진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라서, 골목길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발길이 오래된 성으로 향한다.
뭔가 어마어마한 위용을 갖춘 그런 곳은 아니었지만, 지친 여행자에게 마치 뜻밖의 선물을 주는 것처럼 조용하고 아늑하고 예쁜 공간이었다. 게다가 끝까지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베키오 다리 경치는 정말 최고였다.
저만큼에서 막다른 길임을 발견하고 여길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버리는 관광객이 있었는데, 소리쳐서 불러세우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말았다. ㅎㅎㅎ (무슨 언어로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도시 구경이 금방 끝나버렸다. 식사는 이 도시 외곽의 맥도날드를 이용했다. 구도심 안에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외곽으로 나오니 - 한국의 아울렛 느낌 - 거기에 바글바글했다. 그럼 우리가 다녀온 곳은 약간 '종로' 느낌일까??
계속되는 그림같은 풍경을 지나치며 베네치아까지 가는 평원을 달렸다.
어제부터 아내가 운전을 계속 해준 덕분에 나는 몸을 쉬어줄 수 있었고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근데 이제 감기는 아내에게 옮겨가고 있었으니... ^^;;; 내가 큰 죄를 지었다.
주유기마다 다른 형식, 다른 결제방식에 혼란스러운 이탈리아 ㅎㅎㅎ 그래도 슬슬 적응이 된다.
피렌체 글에서 이미 설명했던 'Hu 캠핑장' 베네치아 지점에 도착했다.
이곳은 일찌감치 저렴할 때 예약한 덕분에 추가요금을 내고 3인용 고급형 텐트(?)로 업그레이드 해둘 수 있었다. 그래봤자 1박에 5만원이었다. (피렌체 때는 늦게 예약해서 시즌 바가지에 걸린 바람에 이보다 못한 텐트가 1박에 12만원이었다.)
약간의 넓이 차이가 주는 편리함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덕분에 감기환자 둘이서 편안하게 잘 쉴 수 있었다.
내일은 대망의 베네치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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