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를 떠나 아씨시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를 곳이 있다. 그것은 바로, 루비콘 강이다. (응?)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카이사르가 운명을 걸고 건넜다는 루비콘 강이 대체 이탈리아의 어디쯤에 붙어있는지 궁금해졌다. 구글맵을 켜고 찾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뭐 로마 북쪽 어디쯤 있겠지, 피렌체 부근이거나 그 남쪽 어디쯤이겠지... 했는데, 엇?? 엉뚱하게 이탈리아 반도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었던 것이다. 갈리아 지방에 주둔하던 로마군이 귀환할 때 왜 그쪽 코스로 왔지?? 고대 로마의 군대가 이동하던 경로가 피렌체 쪽이 아니라 산맥을 넘어서 동쪽이었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다.
아무튼 마침 동선이 맞으니, 루비콘 강을 우리도 한번 건너보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정확히 어디로 건널까를 찾으려고 강줄기를 따라 구글맵을 더 뒤져보니, 이게 이제는 과거의 그 루비콘이 아니었다. 지금은 하천 수량이 너무 약해져서 강줄기랄 것도 없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논두렁 옆의 개울 수준이었고, 그냥 사람이 점프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해진 상태였던 것. 얼추 강처럼 보이게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반드시 하류 쪽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바닷가에 접한 하류 끝부분에 네비를 찍고 와서, 인근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가 보았다.
루비콘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 다리는 차량 통행을 하지 못하도록, 사람만 통과되는 울타리로 막아놓았다.
기어코 루비콘 강을 건너고야 마는 우리...... ㅎㅎㅎ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다리 중간에 이곳이 과거 그 역사 속의 유명한 루비콘 강이었음을 표시하는 기념물로서의 카이사르 동상이 있다. 우리도 함께 비슷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ㅎㅎㅎ
자, 이것이 오늘날의 루비콘 강 하구이다.
인근에는 대규모 캠핑장이 있고, 대형마트가 있으며, 해수욕장이 있고, 보트 선착장이 여러 곳 마련되어 있다.
https://goo.gl/maps/u2w5EjZ46BUrjMtB6
다시 차를 몰아 아씨시로 향했다. 도중에 점심은 휴게소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보기엔 단촐하지만 겁나 비싸다. ㅎㅎㅎ
아씨시 숙소를 야심차게(?) 골랐다. 역사적인 순례길 바로 옆에 숙소를 구해놓고, 걸어서 아씨시까지 들어가보려는 의도였다. 아씨시 내부에 있는 숙소는 비싸기도 했지만, 차를 타고 훅~ 들어가버리기엔 아씨시는 왠지 좀 아까운 동네다. 안동의 병산서원을 차를 타고 순식간에 들어가는 태도에 대해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넌지시 깐 부분이 있는데, 아씨시도 약간 그런 느낌이랄까. #핑계가좋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집 앞에서 보는 아씨시의 전경은 정말 감동 그 잡채였다. #집앞경치 숙소에 가방만 던져놓고 나와서, 당장 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은 일부러라도 해보시면 좋겠다.
카톨릭 신자들의 순례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간다. 벽돌 한 장마다 사람 이름이 적혀있다. 절에 가면 기왓장에 이름을 쓰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훨씬 고급스럽다. ^^;; 그들의 수많은 사연들과 신앙의 행태를 다 비판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그런가부다 하면서 우리도 이 길을 걷는다.
아씨시에 도착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곳으로 먼저 향하게 된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앞마당 및 주위를 둘러싼 아케이드가 방문자에게 편안함을 선물한다.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앞마당과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포스가 있다.
왔노라, 보았노라, 앉았노라 ㅎㅎㅎ
성당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었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막 찍어대다가 직원들에게 제지당하고, 또 저쪽에서 찍고, 잡으러 가고...의 무한 반복이었다. 밖으로 나와서 한 층 올라와서 내려다 본 경치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그냥 동네 앞에 대충 지은 것 같으면서도 주변 지형과 완벽한 어울림을 갖춘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몇 장 더 감상하시자.
성당 구역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San Francesco 거리를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약간 출출해서 중간에 간식을 먹었다. 식당 내부에 아씨시 전경 사진이 멋지게 걸려있다. 제노바 숙소에도 이런 식으로 사진이 걸려있었다. 전경을 담으면서도 디테일을 담고 싶을 때 우리는 파노라마를 찍는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파노라마가 아니면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는 아씨시의 전경......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Piazza del Comune Assisi에 도착한다. 한글로 찾으면 '코뮤네 광장'이다. 광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어쨌거나 아씨시 도시 전체의 중심지역이다.
이곳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이 있다. 이름을 좀 풀어보자면, 과거에 미네르바 신전이 있던 곳 위에(소프라) 지어진 성 마리아 성당이라는 뜻이 되겠다. 쭉 뻗은 기둥이 멋있어서 발길을 끌었다.
내부는 평범해서 금방 나왔는데, 여기서 아주 못볼 꼴을 보고 말았다. 비둘기들이 부리를 맞잡고(?) 딥키스를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화려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동영상으로 찍어놨다.
저러다가 더한 짓도 했지만 차마 영상에 담을 수는 없었...
구글맵으로 볼 때 짐작하기로는, 그리고 다른 블로거들의 여행기에서도, 아씨시는 오르막길로 다니기 힘들어서 오늘은 절반만 봐야지 했지만, 생각보다 구도심이 좁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아서 금방금방 다닐 수 있었다. 광장을 지나서 조금 더 걷다보니 넓은 광장과 멋진 건물이 또 보인다.
산타 키아라 성당이다.
아씨시라고 하면 프란체스코 신부가 유명하지만, 사실 이곳은 키아라(영어로 클라라)라는 여성의 사연이 담긴 도시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에서 성녀로 추앙받는 키아라는 귀족 신분으로서 가진 것을 다 버리고 프란체스코 교단(?)에 귀의해서 좋은 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다보니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도시의 빛깔이 점점 더 예뻐졌다. 이러면 사람이 욕심이 생긴다. 일찌감치 들어가서 쉬려던 계획을 바꿔서, 석양을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다만 아직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결국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아씨시에 3일을 할당했는데, 주요 장소를 반나절만에 다 보게 생겼다. ㅎㅎㅎ
가도 가도 멋진 장면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자 어느덧 분위기가 잡히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멍 때리며,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그 시간을 즐겼다.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겠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아까 그 순례길을 따라 내려왔다.
오늘도 많이 걸었으니 숙소까지 걷는 길이 힘들만도 한데, 기분이 좋아서인지 몸이 거뜬했다.
숙소 앞마당에서 바라본 아씨시의 야경. 손각대라서 좀 흐릿하다. 내일은 삼각대 출격이다!
다음 글 : [이탈리아 19편] 아씨시(2) - 로카 마조레 성 & 아씨시의 뒷골목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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