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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후기

category 위즈덤 프로젝트/ETC 2024. 11. 30. 03:08
어느 소설가가 5.18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뭔 재주로 소설로 쓴다고... 웃기고 있네... 나중에 작가가 광주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그랬다. 나는 강의하러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그때 그 작가가 바로 '한강'이라는 걸 알고는, 그럼 잘 썼겠네, 어떻게 썼을까, 얼마나 가슴 죄이게 썼을까, 했다. 얼마 후 서점에서 집어들어 중간쯤을 펼쳤다가... 황급히 내려놨었다. 활자가 눈과 뇌를 거치지 않고 곧장 심장으로 직격하여 후벼 파는 듯했다. 이거 읽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한강 작가가 이런 저런 상을 받더니 결국엔 노벨상을 받았다. 이제 그 소설책은 어딜 가나 굴러다니며 부지런히 눈에 밟혔다. 아무리 힘들어도 읽긴 읽어야겠구나 싶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예행연습을 했으니, 어쩌면 해낼 수 있겠다 싶었다.

광주에 다녀오는 KTX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첫 장을 펼쳤다.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해서 울컥 감정이 몰아친다. 이럴 줄 몰랐던 것도 아닌데, 하면서 꾹 참으며 읽어 나갔다. 하지만 소설의 2장 '검은 숨' 부분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만큼 그렇게 바짝 말라버린 영혼은 아니었는지, KTX가 고작 익산역에 이르렀을 때, 벌써 나는 더 이상 책장 넘기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옆에 앉은 이가 계속 힐끔힐끔 내 쪽을 봤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은 나는, 며칠 후인 오늘 새벽, 인천공항 제2터미널 한 켠에 둥지를 틀고 밤을 보내며, 누구의 방해도 없이 차분히 소설을 마저 읽었다. 옆 자리 노숙자 아저씨가 갑자기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시는 바람에 리듬이 깨졌을 때를 빼고는, 집중해서 꾹꾹 눌러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맥북을 열고 후기를 쓰는 중이다.



소설 속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많이도 등장한다. 아니, 그냥 소설 전체가 내 고향 마을이다. 문장마다 그려지는 그 동네는 내 기억 속에서 낮이기도 하고 저녁이기도 하고.... 비 내리는 경관이기도 하고 버스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그림이기도 하다. 심지어 작가가 살던 동네조차 나 살던 그곳이다. 5.18을 직접 겪지 않은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작품을 위해 이사 가기 전에 살던 그곳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하필 나도 5.18 당시 그 동네, 그 골목에 살았다. 소설 속 그 소년의 모델이 된 그가 걷던 그 길을 나도 걸었다. 어쩌면 그 형이 지나가다 날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너는 참, 어른들 말 지지리도 안 듣고 까불게도 생겼구나' 생각하며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그 동네에서 그 형은 사망자였고, 나는 생존자였다.

소설 속에는 이니셜도 꽤 등장한다. 하지만 내겐 다 아는 이름들이다. 소설 속에 언급된 끔찍한 수용소 J대 강당은 조선대였다. 소설 속에 전남대 이름은 나오지만 조선대는 이니셜을 썼다. 진압군 주둔지로 쓰였던 아픔을 배려한 것일까. 소년이 다닌 D고등학교는 지금의 동성고를 말하겠지만 당시에는 광주상고였다. 작가가 3학년까지 다녔다는 효동국민학교는 ㅎ초등학교라고 썼다. 작가가 살던 집은 효동국민학교 정문을 등지고 길 건너 왼쪽이라는데, 내가 살던 집은 길 건너 오른쪽이다..

광활하고 조용한 인천공항에서, 3장과 4장의 복잡한 시제를 따라가며, 그 속에 작가가 스치듯 언급하는 스토리들의 실제 사건이 무엇인지 머릿속 한국현대사를 뒤적여 매치시키며 읽다가, 마지막 장(5장)에서 기어코 참았던 눈물 콧물을 쏟는다. 이럴 줄 알고 물티슈를 넉넉히 구비한 것이다. 모든 감정과 묘사가 너무 리얼이고 너무 현실이라 이것은 소설일 수가 없다고, 이것을 소설이라 하면 반칙이지, 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본다.

사실 그랬다. 5.18은 소위 '진상'이 '조사'되었고,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법적'으로 '처리'되었고, '유족'은 '보상'을 받은 역사이다. 실제로 나는 2017년 5월 문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던 그날, 마음 깊은 곳의 어느 구석이 청소되고 정돈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후에도 야속한 역사는 그렇게 인생이 쉽지 않음을 뼈아프게 내 심장에 각인시키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전두환이 반성과 사과 없이 갔다는 말을 듣고 모두가 분노하던 그날, 그자가 회개하지 않고 죽은 것을 내심 안도했다. 지옥에 갈 자가 그 형벌에 합당한 행위를 쌓는 것이 솔직히 내겐 더 마음 편했다.

소설가가 고맙다. 지어낸 듯 지어내지 않고, 그 학원 강사의 부탁마냥,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어 고맙다. 상을 받도록 잘 써주어서 고맙다. 광주의 가치에 비하면 노벨상은 하찮은 것이지만, 그렇게라도 세상은 광주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리스펙을 보냈으니, 그건 그걸로 됐다. 하지만 정작 이땅에는 여전히 그 소년을 모독하는 자들이 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법의 힘과 문학의 힘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로 우리는 그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렇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