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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자로서 나는 유초등부 시절 때부터 요상한 신학에 노출되곤 했다. 창세기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구절을 보자. 이를 단순히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으로서 잘 먹고 잘 살라는 명령으로 설명하는 건 본뜻에서 벗어난 이야기였다. 이 구절은 오히려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책임을 다하라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히 누리는 삶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꽤나 성장한 뒤에사 깨달았다.

비슷하게, 대학시절 배운 '칼뱅의 사상'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라"는 식으로 왜곡된 해석이 흔하다. 칼뱅이 말한 노동의 가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부의 축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관점이 자본주의 논리와 뒤섞이며, 부를 축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오해가 민간에 퍼지게 되었다.

나중에 회사원이 되어 귀에 못이 박히게 듣게 되었던 '기업의 존재 목적'을 둘러싼 오해도 유사한 구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목적을 "이윤 추구"나 "주주 이익 극대화"로 당연시 한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었다. 알고보니 기업의 진짜 목적은 "사원의 행복 추구"였다. 여기서 '사원'이란, 경영자, 노동자, 주주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기업의 목적은 더 나아가 그 기업이 파는 재화나 용역의 소비자 및, 그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의 유익까지를 포함해 총체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에 있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유기체였던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된 '정당의 목적'을 둘러싼 논의도 흥미롭다. 흔히 정당을 "정권 창출을 목표로 하는 이익 집단"이라고 배우곤 한다. 이건 중등교육 수준의 정치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헌법적으로 보면, 정당의 본래 목적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수렴하고 이를 의회 기관을 수단으로 하여 입법을 통해 행정에 반영시키는 데 있다. 정권 창출은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정당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 전체의 정치적 의사를 조율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구인 것이다.

이 모든 논의는 근대 이후 인문학적 성과와 맞닿아 있다. 인간은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높은 가치와 목적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러 역사적 사례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이러한 정서가 깊고 넓게 담겨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흥미로운 시도가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과 온라인 의사수렴 도구의 발전은 정치적 참여와 정책 결정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래서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정책의 수립, 수렴, 토론, 합의의 전 과정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실현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정당 내 의사결정에 민주적 절차와 기본질서를 수립하는 시도부터, 심지어 국회 표결 과정에도 국민 참여를 확대하자는 구상까지도 활발히 제기되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역적 도당의 시대를 거치며 이러한 진취적 시도들은 물거품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혼이 비정상이 된 쇠퇴기로 접어든다.

말이 길어졌다. 인간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을 단순히 이익이나 권력으로 축소하는 건 현대적 가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인간 본질과 사회적 활동의 목적을 다시 바라보고,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다시금(!) 시도되는 민주당의 "모두의 질문Q" 프로젝트를, 열렬히 환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