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M이 친절하게도 읽고 설명을 해준 중국의 사본(寫本)에 따를 것 같으면 인류는 최초의 7만 년 동안은 산 짐승의 날고기를 손톱으로 쥐어 뜯거나 이로 물어뜯어서 먹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아빗시니아에서 날고기를 먹는 것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일은 위대한 공자(孔子)가 우주의 원리를 다룬 <<주역(周易)>> 제 12장에 명백히 적혀 있듯이 거기에는 일종의 황금시대라는 것을, '초황(Cho-fang)' 이라는 말로 나타냈는데, 그것은 문자대로 한다면 요리인의 휴일이란 뜻이다. 그 사본은 계속해서 일러 주고 있는데, 굽는 기술, 또는 그슬리는 기술은(나는 그슬리는게 앞선 것으로 생각되지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돼지치기 호오티란 사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돼지에게 먹일 도토리를 주워오려고 숲속으로 가고 오막살이집은 큰아들인 보보에게 지키라고 했는데, 그 녀석이 아주 칠뜨기여서 고 또래의 아이 녀석들이 좋아하는 불장난을 하다 불똥을 짚단에 튀게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불이 확 퍼져, 고 알량한 오두막집을 홀딱 불살라 버리니, 결국 몇 줌 안 되는 재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 오두막(노아의 홍수 이전의 한심스런 임시 움막이라고나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과 운명을 같이해서, 집보다 더 중요한 것, 즉 갓 낳은 한 배의 예쁜 돼지새끼 아홉 마리로 모두 요절당하고 만 것이다.
중국의 돼지는 우리가 책에서 읽는 바에 의하면 까마득한 옛날부터 동양 어디에서나 사치품으로 소중히 여겨 왔던 일이다. 당신이 생각해 볼 수 있듯이, 보보 녀석은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놀라 어찌 할 바를 몰랐으나, 그것은 집을 태워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까짓 집이야 마른 나뭇가지 몇 개로 아버지하고 한 두어시간 꿈적꿈적하면 누워서 식은죽 먹기로 어느 때고 지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문제는 돼지를 망쳐 놓은 때문이었다. 아버지한테 뭐라고 변명을 할까 생각하며, 그 비명 횡사한 돼지새끼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잔해(殘骸)를 내려다 보고 손을 마주 비비고 있는데, 무슨 냄새가 콧구멍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냄새는 아직 한 번도 맡아본 일이 없는 그런 냄새였다. 어디서 나오는 냄새일까? - 타버린 오막살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고 - 그런 냄새는 전에 맡아본 일이 없으니까 - 정말이지 이것은 그 재수가 나쁜 어린 방화자가 부주의해서 일으킨 사고의 제일 처음 저지른 사고는 아니었다. 그 냄새는 이미 알고 있는 나물이나, 잡초나, 꽃 향기하고는 같은 데가 조금도 없었다. 동시에 무언가를 미리 알려주는 군침이 그의 아랫입술을 흥건히 적셨다. 녀석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에 돼지한테 무슨 생명의 기운이 있나 싶어, 몸을 굽혀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손가락을 데어 그 덴 손가락을 식힐 양으로 밥통마냥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불에 그슬린 가죽 조각이 조금 손가락에 묻어 있다가, 난생 처음(아니 이 세상 최초로, 왜냐하면 그 녀석 전에는 아무래도 고 맛을 몰랐을 테니까) 그 맛을 보게 되었다 - 그 바삭바삭하는 돼지가죽 맛을! 또 다시 녀석은 돼지를 만지고 주물럭거렸다. 이번에는 뭐 별로 데지도 않았는데, 일종의 버릇처럼 손가락을 핥아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 느려터진 둔한 골통이 진상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냄새를 풍긴 것이 다름 아닌 돼지였다는 것과 그렇게 맛이 좋았던 것도 돼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처음 생겨난 재미에 정신이 팔려 녀석은 불에 탄 가죽과 거기 붙은 살점을 한줌 두둑히 찢어내어, 짐승이 먹는 식으로 목구멍에다 잔뜩 우겨 넣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녀석의 아버지가 혼벼락을 내주려고 몽둥이를 거머잡고 연기나는 서까래 사이로 들이닥쳐, 일이 이쯤 돼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피도 안 마른 망나니 녀석 어깨에다가 몽둥이 찜질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보보 녀석은 이런 지독한 몽둥이 세례를 파리가 기어다니는 정도로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녀석이 아랫배 있는 데서 맛보는 간질간질한 쾌감은, 제 몸뚱이 먼 구석에서 느껴지는 불편 정도는 전혀 무감각하게 해놓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두들겨 팼지만, 아무리 때려도 녀석이 깨끗이 먹어 치울 때까지는 돼지한테서 떨어져 나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녀석은 제 처지를 어느 정도 알아차리게 되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가게 되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아, 대체 무엇을 해 처먹는 게냐? 개망나니 버릇을 못 버리고 집을 세 채씩이나 불살라 먹고도 모자라냐? 이 벼락을 맞을 놈! 그런데 네 놈이 불을 처먹고 있는게 아니냐? 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거기에서 처먹는 게 뭐냔 말이냐!"
"아이고, 아버지, 돼지예유, 돼지! 와서 불탄 돼지맛이 얼마나 좋은지 맛이나 좀 보시라니까유."
호티의 양쪽 귀는 공포로 왱왱 울렸다. 그는 아들을 저주하고, 불에 탄 돼지를 먹는 자식을 낳은 자신을 또한 저주했다.
보보는 아침부터 놀랍게도 후각이 날카롭게 되어 가지고, 금방 또 한 마리의 돼지를 끌어 당겨서, 완전히 두 동강나게 찢더니, 작은 쪽 반을 강제로 호티의 손아귀에다 밀어 넣으면서, 여전히 외치는 것이었다.
"잡숴 봐유, 잡숴 봐. 아버지, 불탄 돼지를 잡숴 봐유. 맛만 보시라니까유. 아이 참!" - 그렇게 야만인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숨이 막힐 것 같은데도 줄곧 쑤셔넣는 것이었다.
호티는 이 망측스런 물건을 움켜잡고 있는 동안 뼈마디라는 뼈마디는 죄다 왈그락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제 자식이지만, 이 해괴한 어린 괴물을 죽여 버려야 하지 않을까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아들 녀석이 그랬듯이, 불탄 돼지 가죽에 손가락을 데어서 똑같은 방법으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어,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입을 버려놨다는 표정을 만들어 지으려고 하였지만, 그 맛이 아주 싫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만 것이었다. 결국에 가서는(사본에는 이 대목을 지루하게 늘어놓았지만) 두 부자가 정식으로 한 상 차리고 앉아, 남은 찌꺼기까지 싹 먹어 치우고야 일어났던 것이다.
보보는 이 비밀을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명령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내려주신 맛좋은 고기보다 더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 못된 놈들을 이웃사람들이 틀림없이 돌로 쳐죽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아다녔다. 호티의 오두막집이 그 전보다 자주 불이 난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것이다. 이 때부터는 불 밖에 나는 게 없었다. 어떤 때는 대낮에 나고, 또 어떤 때는 밤중에 나는 것이었다. 암퇘지가 새끼를 낳기가 무섭게 호티의 집은 화염에 싸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명백해진 사실은 호티가 아들을 매질하는 대신, 전보다 훨씬 더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는 점이었다. 결국에 두 부자는 감시를 받게 되고, 그 무서운 비밀이 발각되어서, 그때만 해도 하찮은 규모의 도읍이던 북경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소환됐던 것이다. 증거가 제시되고, 그 눈총을 받는 고기 자체도 법정에 제출되고 판결이 막 선고되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에 수석배심원이 범인이 고발당하고 있는 바로 그 불에탄 돼지 고기를 조금 배심원석에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수석배심원들도 그것을 만져보고, 그 밖의 다른 배심원들도 모두 그것을 만져 보았다. 그런데 보보와 그 아비가 전번에 당했던 것처럼 모두 손가락을 데었고, 그들 각자는 자연히 보보 부자와 똑같은 요법을 취하게 되었으며, 모든 사실이 뚜렷하고 판사가 내린 명백한 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 전 법정, 장안 사람들, 외국 사람들, 통신원들, 그리고 나와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게 - 배심원 자리를 뜨지 않고, 아무런 의논 한 마디도 없이 일제히 무죄 판결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원체 눈치가 바른 판사는 그 명백한 불법적인 결정을 모른 체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법정이 해산하자 남몰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 가지고 구할 수 있는 돼지를 모조리 사 버렸다. 2, 3일 지나니까 각하의 시중(市中) 저택이 불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소문은 날개가 돋친 듯이 퍼져 나갔고, 사방 천지가 불길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료와 돼지는 그 지역 어느 곳에서나 굉장히 값이 올랐다. 보험 회사는 하나 둘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집을 점점 허술하게 지었기 때문에 멀지 않아 집짓는 기술이 세상에서 자치를 감추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집을 태워먹는 관습이 계속되었고, 결국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의 사본에 씌어 있는 것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로크와 같은 현자가 나와서, 돼지고기나 그 밖의 짐승고기라도 그것을 요리를 해먹고자 집 한 채를 흔적도 없이 그슬려 먹는 그따위 짓을 안해도 그것을 구울 수 있는(그들은 요리한다는 것을 불에 태운다고 말했지만) 방법을 마침내 찾아냈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최초로 엉성한 모양의 석쇠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끈으로 잡아맨다던지 쇠꼬챙이에 꿰어서 굽는 방법은 어느 왕조 때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한 두 세기 뒤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와 같이 차츰차츰 발전해서 가장 유용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명백한 기술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 보급된 것이라고 그 사본은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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