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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막 가시기 시작한 9월 하순, 아직도 뜨거운 도쿄로, 혼자서 열흘간 취재 여행을 떠났다. 더위가 지겨웠지만, 더 늦게 움직이기엔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이 시즌이 가장 저렴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많이 오고 흐리다고 해서 그나마 괜찮겠지 했는데, 막상 머무는 기간 내내 해가 쨍쨍... 얼굴이 벌겋게 탔다...

출국 시각이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이라, 그 전날 밤에 지하철로 공항에 도착해서, 올드 무비를 보면서 버티다가, 새벽에 출국장에서 쪽잠을 잤다.
남자 혼자 여행이라 짐이 가볍다. 노트북 가방 하나에 모든 짐을 넣고 간편하게 출발했다. 버릴 옷을 가져가서, 올 때는 더 가벼워졌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출국장은 아주 편리하게 되어있다. 공항 노숙을 하기에 최적이다. 강추! (응?)

 

그나저나 왜 하필 도쿄인가.

첫째, 편견 깨기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본을 싫어했다. 역사적인 이유로 감정이 좋지 않았고, 일본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크게 보며 자랐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살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대체로 관심 밖이었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보니 일본에 대한 내 무지 때문에 가진 선입견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로벌 정세가 복잡해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면서, 미국과 중국만으로는 그림의 퍼즐이 완성되지 않는 느낌을 자꾸 받았다. 혹시 일본이 그 빠진 조각이 아닐까, 하는 찝찝한 느낌이 자꾸 들었고, 내가 이걸 모르고 넘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큰 손해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직접 경험으로 넘어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공항철도. 정확한 시각에 출발하고 깔끔하게 운행했음. 가끔 전면 모니터 화면에 기차 앞쪽 영상이 보여서 흥미로웠음.

다만, 일본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장시간 유학을 할 것도 아닌데, 며칠 관광객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뭘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몇 가지 여행 원칙을 세웠다.

1. 환전을 1엔도 하지 않고 오직 신용카드만 사용해서 지낸다. 즉, 신용카드가 되지 않은 곳에서는 아예 돈을 쓰지 않는다(못한다). 수많은 국뽕 유튜버들이 일본은 미개해서(?) 아직도 현금을 쓰고...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어떠한지 확인하고자 했다. 결과는? 이어지는 글에서 차차 적어보기로..... ^^

2. 가능하면 도보로, 도쿄 중심지 모든 구역을 직접 걸어다닌다. 패키지 관광상품은 지역과 지역을 전용 버스로 워프(?)해버리기 때문에, 진짜 도쿄를 경험할 수 없다. 직접 두 발로 걸어다니며, 길을 헤매기도 하면서 고생을 해봐야... 물론 도쿄는 거대한 도시라서, 장거리 지역간의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원칙 1에 따라, 지하철도 신용카드가 되는 구간만 탈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루에 거의 20키로씩 걷는 날이 많았다..)

3.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고 편의점과 지하철 역 주변 까페 등 평범한 서민이 경험하는 일상생활공간을 이용한다. 구글맵으로 관광지 주변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걷다가 배가 고플 때쯤 주위에 얻어걸린 식당이나 편의점을 주로 이용했다.

이렇게 제약조건을 확실히 걸어놓으니 - 나중 평가지만 - 여행의 패턴이 단순한 관광객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질 수 있었다. 

공항철도가 도착하는 우에노 역 주변. 대낮부터 상점가에 사람이 엄청 많았다.
신용카드로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를 구매. 일단 카드만으로 '생존'은 가능하다는 게 곧바로 확인되었다.

 

계속 이어서, 왜 하필 도쿄인가. 둘째, 시스템 검증이다. 선진 인프라와 시스템을 직접 관찰한다.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한국은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다고 보고, 재난 대비에 특화된(?) 이웃나라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확인한다. 생존 전략을 배우는 셈이다. 도심 수변지역, 도쿄 수도국, 기상청, NHK 재난방송국, 지진 뮤지엄, 근현대건축기록관, 도시재건기념관, 쓰나미방재시설, 미래과학관 등을 방문한다.

그밖에도 구마다 존재하는 시민 도서관들을 방문한다. 



셋째, 일본 극우의 본진(?) 탐색이다. 극단적인 우파 준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된 전시나 박물관 등을 경험하기로 했다. 에도뮤지엄, 쇼와뮤지엄 등을 포함하고, 군에서 운영하는 상이용사기록관도 가보기로 했다. 그밖에도 몇 군데를 더 다녀보았다. 또, 그런 차원에서 숙소 중 한 곳은 극우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호텔 체인점으로 일부러 정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과 혐오, 극단적인 대립, 그리고 비논리적이고 다분히 종교적(?)인 잘못된 신념에 빠진 사람들로 인한 우리 사회적 리스크 상승을 생각하며 특별히 계획한 것이다. 나는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지속되거나 격화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 먹고 도착한 도쿄. 공항철도가 멈춘 우에노 역에서, 신토미 지역에 있는 숙소까지 일단 걷기로 했다. 그냥 걷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도쿄 첫 관광객이라면 무적권 들러야 한다는 센소지(사찰)를 거쳐서, 도쿄 시내를 가로지르는 스미다 강을 따라 걸으며 수변 시설을 점검(?)했다. 상당한 거리였다. 이날 2만 6천보를 걸었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

주방 그릇과 칼 등을 파는 골목을 지나갔다.
맛있는 음식들이 유혹했지만 다이어트를 해야 했던 나는 꾹 참고 무작정 걸었음.
센소지 주변에 오니까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느낌이 꼭 우리 동네 망원시장 느낌 ㅎㅎㅎ

 

센소지에는 엄청난 인파가 있어서 나는 빠르게 지나가며 사진만 찍었다.

 

 

센소지를 빠져나와 강변 쪽으로 걷는데 마침 나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 나타났다.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잘 구비된 공중화장실이었다.

사실 유럽에서는 이런 걸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데, 일본은 어딜 가나 공공 화장실이 많이 있어서 도보로 여행하기 편했다.
스미다 강
요즘 서울에서는 '한강버스'의 어설픈 운영 때문에 말이 많은 터라, 이걸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수변시설들은 낡았지만 안전하고 잘 관리되는 듯 보였다.
홍수나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역사적으로 어디까지 물이 올라왔는지 보여주는 도표. 약간 섬뜩했다.
이 지역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유추하게 해주는 옛 그림들이 붙어있었다. 그나저나 이쯤 걸으니 발이 너무 아팠다.

 

걷고 또 걸어서 중심가로 들어옴. 계속 강변만 걸었더니 좀 지루해서 이제부터 시내 골목길로 걸었다.
이 지도는 이번 열흘 일정에서 방문한 장소들 전체이다. 그 중에 빨간 선이 이날 걸은 동선이다.
익숙한 페미리마트인데 도쿄에서 보니 또 다른 맛이 있다.
ELE hotel Ginza East 도착.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시내에서 이 가격에 전용욕실 주는 숙소는 찾기 힘들었다.
휴일 저녁이 되니 길이 이렇게 한산했다. 유럽 느낌...
일찍 문을 닫거나, 아직 문을 열지 않거나, 카드가 안 되는 식당들만 있어서, 또 편의점 먹거리로 저녁 해결.

 

이제 내일 일정부터는 잡소리 삼가고 사진 위주로 업로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