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중심부에는 라 로셸 포위전 승전을 기념하는 "빅토리 성당"이 있다. (특강 종교개혁사 제4화, 129~130쪽 참조) 라 로셸은 신앙의 자유를 추구했던 앙리4세의 낭트 칙령으로 위그노에게 할당된 도피성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다음 정부는 약속을 어기고 라 로셸을 공격, 수천 명의 위그노를 학살했다. 그리고 그 승리를 기념하여 파리 시내 한 복판에 기념 성당을 세웠다.
성당 동쪽 끝 방 "레이디 채플"에는 아래 "우측"의 그림이 걸려있다. 레이디는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다는 정도는 쉽게 유추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의 명목상 주인공은 성모 마리아이다. 이단자들을 물리친 승리자 루이 13세에게 무슨 풀떼기(?)를 주면서 칭찬하고 있는 그림이다.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
왼쪽 그림은 동일한 사건을 다룬 다른 버전이다. 두 그림 사이에 차이점이 보이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빨간 망또를 걸친 사람의 "위치"가 다른 것이다. 저 사람은 라 로셸 포위전을 기획했고, 준비했고, 현장 지휘까지 했던 "리슐리외 추기경"이다. 교회의 직분자가 세속 정치에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두 번 생각할 일인데, 그는 아예 직접 전장을 누비면서, 위그노들의 도시였던 라 로셸을 철저히 압박 섬멸한 역사를 가진 자이다. 정복된 라 로셸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위그노들은 강제 개종은 물론, 조그마한 성경책 소지조차 허락되지 못했다.
리슐리외는 라 로셸을 철저히 짖밟은 뒤, 정치와 종교의 야누스가 되어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치장했다. 빅토리 성당을 세우고, 그곳 최고의 핫스팟에 기념벽화를 놓으면서 그가 채택했던 그림은 "우측" 그림이었다. 그가 바라던 어떤 조건을 "좌측" 그림은 꼼꼼하게 만족시키지 못했고, 탈락했다. 그는 어떤 포지션을 원했을까. 그것은 바로, 성모 마리아와 루이 13세 "사이"에 위치한, "중보자"였다.
교회의 직분자가 세속 정치에 맛을 들이면 더럽고 추한 예술품이 영원토록 남아서, 그의 중심의 악함을 널리 칭송(?)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의 실수도 꾸준히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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