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 중에 주일을 맞았다.
우리는 시내 한복판, 루브르 바로 근처에 있는 오라토리 개혁교회(de l'Oratoire du Louvre)에 가기로 했다.
예배당은 작지 않은 규모였는데,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그런지 1층 회중석이 거의 다 찼다. 예배는 전체적으로 질서정연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 지금은 설교 중이다. 뭔 소린지 못 알아먹었지만, 잠자코 참여했다.
성경 강해가 시작되기 직전에, 중앙에 앉았던 아이들은 예배당 앞쪽에 있는 별도의 방으로 이동했다. 어른들이 설교를 듣는 동안, 별도의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한 성경 교육 시간이 있는 듯했다.
헌금 순서 앞에 광고를 둔 순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같았다. 이때의 헌금에는 연보(자선을 위한 모금)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무엇을 위해 연보할 것인지를 광고시간을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 강복선언 순서는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교회들은 이것을 “축도”라고 해서 마치 마무리 기도인 것처럼 모두가 눈을 감는데, 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도 젊은 목사가 양손을 펴고 회중을 바라보며 축복하고, 그 모습을 회중이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강대상이 높이 들려 올려져 있기 때문에 회중을 향해 복을 선언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에피소드 하나.
걷다보니 우연히 어느 성당 앞에서 쉬게 되었는데...
안내판을 보다가 순간 갸우뚱했단다. 방금 본 문구 중에 ‘La Rochelle’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해서 다시 확인했더니 정말이었다! 놀라서 꼼꼼하게 번역해보니 ‘라 로셸 함락 후에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개축한 성당’이라는 것 아닌가! 아내의 설명에, 이게 웬 얻어걸린 고급정보냐! 하면서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봤다.
이 그림을 간단히 해설해보자. 왼쪽 그림은 동일한 사건을 다룬 다른 버전이다. 두 그림 사이에 차이점이 보이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빨간 망또를 걸친 사람의 "위치"가 다른 것이다. 저 사람은 라 로셸 포위전을 기획했고, 준비했고, 직접 현장 지휘까지 했던 "리슐리외 추기경"이다. 교회의 직분자가 세속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그는 아예 직접 전장을 누비면서, 위그노들의 도시였던 라 로셸을 철저히 압박 섬멸한 자였다. 정복된 라 로셸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위그노들은 강제 개종은 물론, 조그마한 성경책 소지조차 허락되지 못했다. 리슐리외는 라 로셸을 철저히 짖밟은 뒤, 정치와 종교의 야누스가 되어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치장했다. 빅토리 성당을 세우고, 그곳 최고의 핫스팟에 기념벽화를 놓으면서 그가 채택했던 그림은 "우측" 그림이었다. 그가 바라던 어떤 조건을 "좌측" 그림은 꼼꼼하게 만족시키지 못했고, 탈락했다. 그는 어떤 포지션을 원했을까. 그것은 바로, 성모 마리아와 루이 13세 "사이"에 위치한, "중보자"였다.
그렇다. 교회의 직분자가 세속 정치에 맛을 들이면 이렇게 추한 예술품으로 영원토록 남는다. 라 로셸을 생각할 때 우리는, 위그노들의 처절한 고난과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에서도 배울 점이 많겠지만, 그 도시를 점령했던 자들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오늘날 우리 주위에 그런 욕망을 가진 자들이 여전히 있지 않은지, 나 자신은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말이다...
잠깐의 놀라운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숙소로 걸었다. 골목을 잘 골라서 걸었는지, 예쁘고 신기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날씨도 좋았고, 도시는 깨끗했고, 간판과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는 깜찍했다. 루브르 근처 루이 14세 기마상 있는 곳에서부터 첫째 날 지나갔던 쁘띠 까호 거리까지 사이에 있는 작은 골목길들을 걸었다.
눈과, 두뇌와, 가슴이 호강했다.
이제 잠시 쉬었다가, 오후엔 프랑스 국립도서관(미테랑 도서관)에 가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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