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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 발생한 중세 교회의 안타까운 실수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2회에 걸쳐, "금욕주의와 수도원 생활", "십자군 전쟁"에 숨은 잘못된 교리가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이번에서는 그 마지막 주제로 "공로사상과 면죄부 판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 글 :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저자

중세 교회의 사제주의는 성도들이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어요(5, 6월호). 성도들이 성경을 제대로 안 보면 복음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신자의 삶이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7, 8, 9, 10월호). 이번에 다룰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바로 "공로사상입니다.

공로사상이 뭘까요? 쉽게 말하자면 내가 뭔가 공로를 쌓으면 그 대가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보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사실 살면서 종종 경험하는 일이죠. 내가 친구에게 뭔가를 잘해주면 나중에 그 친구도 나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보답을 하는 것이죠. 물론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대체로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주위에 친구도 많고 인기도 높아지잖아요? 그래서 공로사상 그 자체로는 특별히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기독교 교리와 혼동하는 경우 문제가 됩니다. 구원을 위해 인간의 선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본래 아주 오래된 이단의 주장이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처음부터 그런 이단을 단호하게 물리쳤고, 그 뒤로 정상적인 신자라면 그 누구도 선행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표현을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요? 구원을 위해 선행필요하다고 말입니다...

, 글자 하나로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집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그럴듯하고 꽤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선행은 좋은 거니까요. 성경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런 미묘한 표현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했고, ‘그런가보다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종교심과 공명심을 그 표현 안에서 극대화 시켰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심리를 성경적으로 교정해줄 어른이 그땐 많이 안 계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된 교리는 차츰차츰 교회의 공식 입장이 되어갔습니다. 중요한 신학이 비틀어지고 망가져 갔습니다.

 

면죄부 판매 논리

비틀어진 가르침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면죄부>라는 것입니다. 혹은 <면벌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어쨌든 이것의 정확한 정체가 뭘까요? 고해성사 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말하면 사제가 일종의 벌칙(보속)을 줄 때가 있습니다. , 반성 차원에서 그런 거 좀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그게 민간에 퍼지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뭘 훔치다 잡혀서 강제노역 100일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허리를 다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에 대해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는데 실행이 불가능하니까 벌금으로 대체했다고 칩시다. 벌금을 내고 영수증을 받겠지요. 말하자면 그런 영수증이 면죄부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면죄부를 받아가지고 가다가 동네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봐, 내가 이번에 뭘 좀 훔쳤는데, 재수 없게 걸렸어! 근데 돈으로 내고 해결했다!”

오올ㅋ, 정말? 잘 됐네! 그것 참 편리하네. 돈을 내면 벌이 없어진단 말이지!?”

이런 식으로 본래의 뜻과 달리 악용되고, 또 그것이 관행이 되어 수 세대를 흐르다 보면, 어느덧 이것이 정통 교리처럼 됩니다. 면죄부 판매는 세월이 흐르면서 아주 일상적인 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경을 몰랐던 성도들은 분별력이 낮았고, 급기야 그런 황당한 소리를 믿는 지경까지 떨어졌습니다.

교회는 저런 헛소리(nonsense)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려다 보니 성경에 없는 개념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연옥개념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였지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장소가 있어서, 죽은 사람들이 살았을 때 지은 죄를 거기서 전부 속죄해야 비로소 천국에 입장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마치 대기 상태처럼 시간을 보내는 그런 장소를 설정한 다음, 거짓말을 더 보탭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거나 공덕을 쌓아서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를 모아주면’, 그만큼 그 영혼의 천국행 대기시간을 단축시켜준다는 겁니다.

 

종교개혁이 없이는 도저히 안 될 지경의, 극한의 상황

이런 논리가 성경의 어디에 나올까요? 안 나옵니다. 근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게끔 계속 살을 붙여 나갑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은혜는 각자의 분량이 정해져 있답니다. 그러면 사제나 주교에게는 그 양이 훨씬 많겠죠? 더 큰 공로를 세우면 은혜의 총량도 증가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무한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 교황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그 넘쳐나는 포인트를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됩니다. 교회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 순교자들, 고위 성직자들, 그리고 헌금으로 신앙을 증명한 - 즉 면죄부를 구매한 - 사람들에게, 교황은 그가 가진 포인트를 쏴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기막힌 아이디어를 도대체 누가 어디서 생각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참신하다 할지라도 그건 성경에 없는 거짓말입니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까요? 거짓은 계속 부풀어 갑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가족들... 생전에 죄를 많이 지었기에 분명 지금쯤 연옥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불쌍한 그분들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하자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게 바로 면죄부 비즈니스의 메커니즘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악습 중에는 이런 식으로 탄생한 것이 많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꼴을 도저히 참고 봐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속임수는 집어치우고 제발 오직 성경대로하나님을 섬기자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당시 신자들은 면죄부를 좋아했을까요, 싫어했을까요?

모두가 싫어했을 것 같지요? 아닙니다.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돈이면 편한 세상입니다. 돈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회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으로 해결 되니까요. 회개하는 게 어렵나요, 돈 내는 게 어렵나요? 만약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냥 돈으로 내고 마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우리는 징그러울 정도로 회개를 싫어합니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사실이고, 바로 이것이 끔찍한 우리들의 속내이자 죄인들의 정체입니다. 돈을 내고 나는 회개했노라스스로 속이는 거짓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못된 짓을 더 이상 계속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죄를 지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랬으면 진정으로 회개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는 더 이상 사기 치지 말자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종교개혁은 거창한 이상을 펼쳤던 게 아니라 당연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했던 것뿐입니다.

면죄부 비즈니스 시스템을 도저히 참고 봐줄 수 없었던 종교개혁가는 바로 루터였습니다. 루터는 로마서를 공부하다가 은혜의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자기 죄를 해결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선물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던 루터에게 면죄부 판매는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이었습니다.

그는 문제 제기를 위해 글을 써서 공개합니다. 이것이 바로 “95개조 반박문(1517)”입니다. 이 글이 도화선이 되어, 그동안 진리에 목마르고 성경을 사랑하던 진실한 신자들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침 2017년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서는 특강 종교개혁사(흑곰북스, 2016)”라는 책을 꼭 읽어보세요!

 

,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요? 우리가 만약 성경을 사랑한다면, 성경에서 떠나게 만드는 각종 오류를 보다 적극적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범했던 실수를 우리도 반복한다면 너무나 아쉽겠지요? 역사를 통해 지혜를 얻는 독자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청소년 매일성경에 6부작으로 연재된 교회사 시리즈 중에서 마지막 글입니다. 2016년 11-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