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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방문할 도시는 프랑스 서쪽 항구도시 라 로셸이다. 이곳을 4회에 걸쳐 비중있게 소개한다. 여기는 왜 가야 하는가. 가서 뭘 봐야 하는가... 우리 부부는 특강 종교개혁사를 쓰기 위한 취재 차원에서, 찰스1세와 리슐리외가 벌였던 전쟁의 현장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 소설 "삼총사"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했던 - 이곳까지 발길을 내디뎠다.

예매했던 티켓을 발권하는 과정에서 내가 뭘 잘못 눌러서 아내가 한참 고생했다. 엄청난 쿠사리를 먹고 30분 정도 납작 업드려 있었다.
기차는 파리를 벗어나고 ,  차창 밖으로 널따란 논밭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  평온하고 아름답고 단정하다.  (바탕화면임??)
보통 한국인 관광객이 여기까지 잘 오지 않는다. 파리에서 꽤 먼 거리라서... 기차로 5시간. 경우에 따라 중간에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머나먼 곳. 하지만 꼭 직접 가보고 싶었다.
다섯 시간이 흘러 도착한 라 로셸 기차역 (Gare de Ra Rochelle)은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 
지금은 그닥 유명하지 않지만 이곳은 수백년간 부유했던 서프랑스 끝에 있는 대표적인 해상무역 도시였다 .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차단/제어하기 위한 두 개의 탑이 이 도시의 상징이다.

 

여행의 목표는 두 개였다. 하나는 이 도시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박물관및 위그노 후예들이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도시의 슬픈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라 로셸 대 포위 공방전의 현장을 보는 것이었다. 소설 삼총사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완벽하게 막아냈던 곳이다. (여기서 삼총사는 영국군을 저격하고, 특히 주인공 아토스가 엄청난 활약을 벌인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 장면을, 찰스 1세가 라 로셸의 위그노를 구하겠다며 병력을 이끌고 왔던 실제 역사에 기반해서 썼다. (특강 종교개혁사 제4화 참조

뒤마는 작품을 위해 이 도시에서 얼마간 머무르기도 했다. 나 역시 이곳의 건물에서 적어도 하루는 자보고 싶었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바로 그 오래된 건물들 중에 지금은 호텔로 바뀐 것이 꽤 있다. 나는 그 호텔 중 하나를 골랐다.

한국에서 숙소를 고를 때, 원래는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골랐다가, 마음을 바꿔 이 숙소로 정했다. 구시가 중심에 위치한 17세기 건물이라고 해서, 여기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당시 위그노들의 마음을 상상하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옛날, 수많은 무역선박이 오갔을 라 로셸 항에는 지금도 수많은 요트들이 잔뜩 정박해 있다. 항구 쪽 뷰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도 꽤 많다요트가 잔뜩 모여 있는 항구와 식당가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면, 오래되어 보이는 석조 건물들이 빼곡이 늘어서 있다

좁은 거리에는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고 상점 앞을 지날 수 있도록 아케이드가 지어져 있다. 16~17세기 느낌이 그대로 난다. 라 로셸은 전통적으로 해상 무역이 발달했기에, 항구에 인접한 상업지구에 소매점이 번성했다. 상업 교역과 문화 교류가 도심가 상점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아케이드를 지나며 수백 년 전 진귀한 물건을 사고파는 라 로셸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 도시는 작아서 어디든 도보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시내에 숙소를 잡고 1박 2일로 다니는 것을 추천하지만, 일정상 불가피하게 당일치기를 할 경우 일찌감치 새벽기차를 타는 것은 필수이다. 가벼운 발걸음을 위해, 무거운 짐은 숙소에 두고 움직이자.
가장 먼저 가볼 곳은 라 로셸 프로테스탄트 박물관이다.
이곳에 가려면 사진촬영 허가 및 가이드 요청을 미리 메일로 신청하는 것이 좋다. 한글로 적어서 구글로 번역해서 보내면 그쪽도 구글 번역으로 답을 보내올 것이다. 방문객이 많지 않기에, 예약을 하고 가지 않으면 문이 닫혀있는 황당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웬만하면 예약하자! 
박물관 가이드와의 시간 약속은 소속 교회(라 로셸 템플 교회 https://paroisse-larochellecentre.fr)로 하자. 이름이 템플 교회당이길래 무슨 가톨릭 성당인 줄 알았는데, 프랑스어와 영어 병기된 안내판을 보니 지금까지 프로테스탄트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라고 한다.
위그노 예배당 답게 깔끔하고 단순 소박하다.
가이드는 백발의 하얀 커트 머리 할머니였다. 우리가 사우스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왜 왔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국의 장로교회 신자이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책을 쓰고 있고, 라 로셸의 역사가 궁금해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곧바로 악수를 청하셨다. 짧은 악수를 나누는 동안 큰 감동이 일었다. 같은 신앙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인종과 문화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전시물은 주로 16-17세기 종교개혁에 관한 대략의 개요, 프랑스 내부의 종교갈등, 그리고 거기에 얽힌 라 로셸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이분도 어차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천천히 해주시므로, 대충 눈치껏 이해할 수 있다. 차분하게 이루어지는 해설은 최초의 위그노 도시였던 라 로셸에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전시물 하나 하나 캐다보면 정말 엄청난 정보가 쏟아진다. 프랑스 종교개혁사를 집약해놓은 이 박물관에 갈 때는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가는 것이 좋겠는데, 아쉽게도 위그노 관련된 대중적인 책이 이 글을 쓰는 2019년 현재까지도 아직 마땅치 않다. 최소한 성 바르톨로매 축일의 학살에 관한 이야기라도 검색을 통해 읽어보거나, 영화 "여왕 마고"라도 보고 가면 좋겠다.
라 로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시물도 따로 모여 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바다에 방파제를 건설했던 당시의 흔적들과 유물들이 있고, 당시 도심과 주변 지역을 표시한 고지도 역시 보존되어 있다. 다양한 크기의 대포알도 보인다.
라 로셸 공성전 패배 이후, 라 로셸의 위그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명목상 - 그리고 법률상 - 낭트 칙령은 유효했지만,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의 자유를 드러내놓고 추구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형편. 이후 루이 14세 때에 이르러서는 낭트칙령마저 폐기되고 만다. 어쨌든 삶의 터전인 라 로셸을 떠날 수 없었던 시민들은 그들의 신앙을 잃지 않기 위해 생명을 걸고 조용히 분투한다. 그들은 작은 성경책을 만들어, 여인들은 머리장식 속에, 남자들은 가슴팍 옷깃 사이에, 집안 어느 벽장 등에 숨겨놓고 몰래 읽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 로셸 시민들은 아이들 교육 역시 그들답게 해냈다. 가이드 설명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라 로셸 시민들의 아이가 7살이 되면 가톨릭 학교에 들어가서 강제로 가톨릭 교리를 배워야했다. 위그노들은 여기에 어떻게든 맞서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개신교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4살부터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쳤다. 잘못된 교리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겨우 입이 트이는 아이들에게 3년간 치열하게 그것도 비밀리에 신앙을 가르쳤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오래된 성경들이 꽂혀 있는 책장 앞에서 가이드 할머니는 지니고 있던 아주 작은 포켓 성경을 꺼내 보여주셨다. 할아버지가 전쟁에 나가서도 품에 지니셨던 성경이었다고 한다. 손녀딸에게도 개신교 신앙을 물려 주셨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성경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 뜻을 이웃에게도 전하고 있는 손녀딸 할머니라니... 수백 년 전 위그노들의 수난과 무력해 보이는 저항과 헛된 죽음들을 절절히 간접경험하고서 가슴이 허하고 먹먹했는데, 그 열매와 결실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한때 신교도들의 위엄을 드높였던 라 로셸에서 종교개혁의 가치를 전하는 백발의 위그노 할머니와의 만남. 정말 뜻깊은 순간 아닌가...

 

우리는 유럽에서 개신교의 위세가 몰락했다며 쉽게 혀를 찬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고정된 지역에서 긴 시간 신앙을 이어가고 교세가 큰 것은 인간의 눈에나 가치로울 따름이다. 우리는 부름받은 자리에서 교회를 이루고 교회의 순결을 위해 노력할 뿐이지, 교회의 교세나 지속성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사랑과 순종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이루시고 통치하신다. 백성들을 일으키시고 불러 모으시고 찾으신다. 교회는 하나님을 좇는 백성들의 모임이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금 우리 영혼에 분명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프로테스탄트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이 날 이후 라 로셸이란 이름이 필자의 가슴에 강하게 새겨졌다. 영혼에 불씨 하나를 옮겨 받은 듯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