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방문할 도시는 프랑스 서쪽 항구도시 “라 로셸”이다. 이곳을 4회에 걸쳐 비중있게 소개한다.여기는 왜 가야 하는가. 가서 뭘 봐야 하는가... 우리 부부는 특강 종교개혁사를 쓰기 위한 취재 차원에서, 찰스1세와 리슐리외가 벌였던 전쟁의 현장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 소설 "삼총사"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했던 - 이곳까지 발길을 내디뎠다.
여행의 목표는 두 개였다. 하나는 이 도시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박물관’ 및 위그노 후예들이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도시의 슬픈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라 로셸 대 포위 공방전”의 현장을 보는 것이었다. 소설 ‘삼총사’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완벽하게 막아냈던 곳이다. (여기서 삼총사는 영국군을 저격하고, 특히 주인공 ‘아토스’가 엄청난 활약을 벌인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 장면을, 찰스 1세가 라 로셸의 위그노를 구하겠다며 병력을 이끌고 왔던 실제 역사에 기반해서 썼다. (특강 종교개혁사 제4화 참조)
뒤마는 작품을 위해 이 도시에서 얼마간 머무르기도 했다. 나 역시 이곳의 건물에서 적어도 하루는 자보고 싶었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바로 그 오래된 건물들 중에 지금은 호텔로 바뀐 것이 꽤 있다. 나는 그 호텔 중 하나를 골랐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옛날, 수많은 무역선박이 오갔을 라 로셸 항에는 지금도 수많은 요트들이 잔뜩 정박해 있다. 항구 쪽 뷰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도 꽤 많다. 요트가 잔뜩 모여 있는 항구와 식당가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면, 오래되어 보이는 석조 건물들이 빼곡이 늘어서 있다.
좁은 거리에는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고 상점 앞을 지날 수 있도록 아케이드가 지어져 있다. 16~17세기 느낌이 그대로 난다.라 로셸은 전통적으로 해상 무역이 발달했기에,항구에 인접한 상업지구에 소매점이 번성했다.상업 교역과 문화 교류가 도심가 상점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아케이드를 지나며 수백 년 전 진귀한 물건을 사고파는 라 로셸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오래된 성경들이 꽂혀 있는 책장 앞에서 가이드 할머니는 지니고 있던 아주 작은 포켓 성경을 꺼내 보여주셨다.할아버지가 전쟁에 나가서도 품에 지니셨던 성경이었다고 한다. 손녀딸에게도 개신교 신앙을 물려 주셨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성경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 뜻을 이웃에게도 전하고 있는 손녀딸 할머니라니... 수백 년 전 위그노들의 수난과 무력해 보이는 저항과 헛된 죽음들을 절절히 간접경험하고서 가슴이 허하고 먹먹했는데, 그 열매와 결실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우리는 유럽에서 개신교의 위세가 몰락했다며 쉽게 혀를 찬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고정된 지역에서 긴 시간 신앙을 이어가고 교세가 큰 것은 인간의 눈에나 가치로울 따름이다. 우리는 부름받은 자리에서 교회를 이루고 교회의 순결을 위해 노력할 뿐이지, 교회의 교세나 지속성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사랑과 순종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이루시고 통치하신다. 백성들을 일으키시고 불러 모으시고 찾으신다. 교회는 하나님을 좇는 백성들의 모임이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금 우리 영혼에 분명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프로테스탄트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이 날 이후 라 로셸이란 이름이 필자의 가슴에 강하게 새겨졌다. 영혼에 불씨 하나를 옮겨 받은 듯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