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라 로셸의 둘째 날이다. 늘 그렇듯 유럽의 도심에서 아침 일찍 가볼만한 곳이라고는 청과물 시장밖에 없다. 거주자는 물론, 관광객 중에서도 동양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프랑스 서쪽 끝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에서, 우리 동양인 두 사람은 아침부터 시장에 가서 뭘 파는지 두리번거리면서 돌아다녔다. ㅎㅎㅎ

 

이제 앞의 글에 이어서, 어제 늦어서 못 탑에 가볼 참이다. 두 탑은 내부를 박물관처럼 꾸며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선박이 항구로 진입하는 길목을 철벽처럼 방어하는 두 개의 탑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있다. 물길 아래로 체인이 연결되어, 도시로 들어오는 선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원치 않는 배가 진입할 때는 체인을 걸어버리면 된다. 리슐리외의 막강한 군대가 항구도시 라 로셸을 함부로 칠 수 없었던 이유 중에는 바로 이런 방어장치도 있었을 것이다.

타워를 겉으로만 보면 입장료가 꽤 비싸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  이런 오래된 타워에 무슨 볼거리가 있겠나 싶겠지만,  마음을 고쳐먹자 . 
사실 라 로셸에는 총 3개의 타워가 있는데, 항구에서 보이는 두 개의 타워가 성 니꼴라 타워(the Saint Nicolas Tower)와 사슬 타워(the Chain Tower)다. 사슬 타워에서 해안 성곽을 따라 더 걸어가면 조그마한 등불 타워(the Tower of the Lantern)가 하나 더 있다.

바다 쪽에서 도시를 볼 때 우측에 있는, 가장 큰 타워, 생 니꼴라 타워에 먼저 들어가자. 이곳 타워에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층은 입장료 판매와 서점, 기념품 등으로 꾸며져 있다. 타워 1개만 입장하거나, 2개 모두 입장하는 등, 티켓에 차이가 있으니 주의하자

티켓을 사면 두툼한 유인물을 한 권 준다.
생 니꼴라 타워의 층별 구조 설명과 구조적 변천사 및 라 로셸 함락전 등의 정보가 빼곡이 담겨 있다. 불어로 되어 있어서 난해하긴 하나, 사진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안내 책자를 들고서 타워 한 층 한 층 꼼꼼히 둘러보자. 밖으로 난 창을 통해 교대로 대포를 쏠 수 있는 공간, 화장실, 예배실 등.. 
타워 꼭대기에는 비록 허접한 성능이나마 망원경도 준비되어 있다. 바다쪽을 보면서 저 멀리 방파제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던 영국군 함대를 상상해봐도 좋겠다.
타워 꼭대기에서 바다쪽을 내려본 광경. 저 멀리 큰 바다가 보이고, 배들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올 수 없도록, 수로가 좁게 나있다. 
항구 방어에 유리한 천혜의 조건이다. 나중에 보니 요트 한 척이 정확히 한 가운데 수로를 따라 조심스레 일직선으로 입항하고 있었다.

 

 

생 니꼴라 타워에서 내려오면 1층의 기념품샵과 서점에 잠깐 들러보자.
특히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인상깊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초상화를 책 표지에 과감하게 그려 넣은 책이 마음에 들어 펼쳐 보았다가 경탄했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그들은 프랑스의 역사를 바꾸었다(Ils ont change l’Histoire de France)” 이런 류의 역사책은 보통 표지만 그럴싸하고 속지는 글자만 가득하거나, 그림 몇 장 삽입된 게 전부인데, 완전히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프랑스 역사에 관한 인물과 사건 등이 사진과 그림, 글 등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군데군데 기름종이로 만든 편지봉투가 내지에 붙어 있는데, 그 안에는 역사적 자료가 될만한 편지와 선언서 등이 원본 형태로 디자인되어 꽂혀 있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 책의 제작비가 도대체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앙리 4세의 암살 순간을 그린 그림.

 

밖으로 나왔다.

썰물로 바닷물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항구에 물은 풍족했다. 수문이 닫혀있었다. 그러고보면 아직도 라 로셸은 자신들의 도시를 체계적으로 잘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이건 그냥 길 가다가 이뻐서 찍은 사진. 이제 라 로셸에서의 공식 일정은 다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