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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선이 좀 길어지기는 하지만 - 그리고 나는 라 로셸에서 다친 발이 무척 아픈 상태였지만 -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 도서관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막막한 짓이었으나, 어쨌든 그때 우리는 거기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모든 정확한 정보를 다 알아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

가는 길에 요런 것들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로마의 수도교 형상 분수는 이곳이 문명국가였다는 자부심을 나타내려는 듯했다. 다리 건너편도 무척 아름다워 보였지만 우리가 지금 저기까지 가서 놀 상황은 아니었다.
스트라스부르 도서관에 들어갔다.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는 듯했다.
로비에 안내 직원이 있기에 무턱대로 질문했다. 칼뱅 생가가 어디냐!? ㄷㄷㄷ 당황한 직원은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찾아주었다.
칼뱅과 관련된 자료가 쭉 나온다. 불어는 물론, 영어로도 제공되었다. 여기서 그 정체 모를 소녀가 알려준 주소를 더 정확히 확인했다.
푸셀레 거리10번지!
우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푸셀레 골목으로 들어갔고, 10번지 앞에서 멈췄다. 굳게 닫힌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
칼뱅은 이 저택을 소유했던 귀족의 법률 사무를 보조하면서 이곳에서 좀 살았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 아직은 교차검증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칼뱅의 스트라스부르 시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이 뛰었다. ^^
칼뱅은 스트라스부르에서 한 교회에서만 목회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를 다니며 설교했다. 칼뱅이 사역했던 교회들은 생 니꼴라 교회, 생 마들렌 교회와 뇌프 교회 등이 있다. 지금 방문한 곳은 뇌프 교회 예배당.    
세월이 많이 흘러서 지금은 그때의 모습과 달라졌으니, 시간이 나면 들러보고 아니면 그냥 지나치자.
교회 앞 광장. 아름드리 나무들의 입사귀가 햇빛을 적당히 차단해서 싱그러운 공간을 창출하고 있었다.
다시 광장으로 이동해서, 아까 점심 때라며 닫혀있던 대성당에 살짝 들어가보았다.
굳이 안 들어왔어도 됐었을 공간이다.
오히려 성당 남쪽에 특이한 것이 있었다. 이 성당을 건축하느라 수고한 석공들을 위한 기념비였다. 와우~! 이런 거 조아.
강 건너엔 마들렌 거리가 있다. 칼뱅이 결혼식을 했던 성 마들렌 교회당이 저곳에 있다.
아픈 다리를 끌고 강을 건너갔다.
굳이 안 와봤어도 됐겠다. 100년쯤 전에 화재로 전소되어,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어쨌거나 이 자리도 역사의 한 장소이기는 하다.

칼뱅은 이 도시에서 이들레트 드 뷔레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들은 스트라스부르의 골목길을 함께 걸었을 것이다. 어쩌변 아까 그 푸셀레 거리를 자주 지나갔을 것이다. 그 거리를 걸으며 그들은 무슨 대화를 했을까. 그들이 언약했던 마들렌 교회당 건너편 강변에 서있을 때 그들은 무슨 미래를 그렸을까. 제네바 돌아가는 상황, 본국 프랑스에서 핍박받는 형제들에 대한 슬픈 뉴스를 들으면서 가슴아파 했을까. 스트라스부르에서 일어나는 개혁의 결실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뻐했을까. 스트라스부르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카피토 등의 형제들을 떠나보냈을 땐 또 얼마나 절망스럽고 힘겨웠을까.

그 동안 글로만 접했던 개혁자들의 삶이 바로 이곳 예배당과 길거리와 광장에서 펼쳐졌다. 지금 걷는 바로 이 돌길 위에서 말이다.
솔직히 이때쯤 발이 너무 아파서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이제 슬슬 기차역으로 돌아가다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제네바에서 쫓겨난 칼뱅은 아마 실의에 잠겼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부터 동역하던 형제, 뒤 틸리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섰으니 말이다. 하지만, 온갖 모욕을 뒤집어쓰고 탈진한 상태로 돌아온 칼뱅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목도한 것은, 김나지움의 시작이었다제네바에서 쫓겨난 칼뱅에게, 이것은 그 아픔 너머에 존재하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생활은 젊고 혈기 넘쳤던 칼뱅을 낮추고, 더욱 노련하게 만들었다칼뱅은 그의 편지에서 제네바 시절 자신의 혈기를 반성한 바 있다.

또한, 스트라스부르에서 칼뱅은 슈투름을 만났다. 경건과 지혜를 갖춘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김나지움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평범한 도시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꿈꾸었을 것이다.

사실, 이것만이 종교개혁의 희망이다. 
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소망의 원동력은
결국 다음 세대의 맑은 눈빛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

 


 

스트라스부르에 다녀온 다음 날. 우리는 짐을 챙겨서 파리의 어느 지하철역에 맡겨놓고, 파리와 이별을 시도했다. 떠나기 싫을까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이별은 생각보다 쉬웠다. 벼룩시장에 갔었는데 딱히 볼 것이 없었고, 급 실망한 우리는 간단한 점심 후 짐을 찾아 일찌감치 공항으로 옮겼다. 이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ㅎㅎㅎ

샤를 드골 공항을 우리 비행기가 박차고 나오고 있다. 이 비행기는 로마에서 우릴 내려준다. 로마에서 다시 인천으로 비행기를 갈아탔다.
긴긴 여행에서 우리가 챙긴 것은 과자와 사탕과 껌과 치약이었다. ^^ 그러나 훨씬 많은 것이 우리 가슴에 담겨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우리 두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함께 뭔가를 탐험하며 온전히 몰입하는 기쁨을 오랜만에 한껏 누렸다. 로마와 파리는 여행지 자체의 매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문헌으로만 접하던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건축물과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실감나게 확인했다. 한국에서의 온갖 걱정 근심은 날려버리고 온전히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대화하고 설계하는 그 순간들도 참으로 행복했다.

바로 이것이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 선물하는 기쁨이고 유익이고 또한 행복이며
또한 우리 부부가 늘 흔쾌히 여행을 떠나는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