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선이 좀 길어지기는 하지만 - 그리고 나는 라 로셸에서 다친 발이 무척 아픈 상태였지만 -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 도서관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막막한 짓이었으나, 어쨌든 그때 우리는 거기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모든 정확한 정보를 다 알아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
칼뱅은 이 도시에서 이들레트 드 뷔레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들은 스트라스부르의 골목길을 함께 걸었을 것이다. 어쩌변 아까 그 푸셀레 거리를 자주 지나갔을 것이다. 그 거리를 걸으며 그들은 무슨 대화를 했을까. 그들이 언약했던 마들렌 교회당 건너편 강변에 서있을 때 그들은 무슨 미래를 그렸을까. 제네바 돌아가는 상황, 본국 프랑스에서 핍박받는 형제들에 대한 슬픈 뉴스를 들으면서 가슴아파 했을까. 스트라스부르에서 일어나는 개혁의 결실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뻐했을까. 스트라스부르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카피토 등의 형제들을 떠나보냈을 땐 또 얼마나 절망스럽고 힘겨웠을까.
제네바에서 쫓겨난 칼뱅은 아마 실의에 잠겼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부터 동역하던 형제, 뒤 틸리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섰으니 말이다. 하지만, 온갖 모욕을 뒤집어쓰고 탈진한 상태로 돌아온 칼뱅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목도한 것은, 김나지움의 시작이었다. 제네바에서 쫓겨난 칼뱅에게, 이것은 그 아픔 너머에 존재하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생활은 젊고 혈기 넘쳤던 칼뱅을 낮추고, 더욱 노련하게 만들었다. 칼뱅은 그의 편지에서 제네바 시절 자신의 혈기를 반성한 바 있다.
또한, 스트라스부르에서 칼뱅은 슈투름을 만났다. 경건과 지혜를 갖춘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김나지움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평범한 도시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꿈꾸었을 것이다.
사실, 이것만이 종교개혁의 희망이다.
주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소망의 원동력은
결국 다음 세대의 맑은 눈빛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스트라스부르에 다녀온 다음 날. 우리는 짐을 챙겨서 파리의 어느 지하철역에 맡겨놓고, 파리와 이별을 시도했다. 떠나기 싫을까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이별은 생각보다 쉬웠다. 벼룩시장에 갔었는데 딱히 볼 것이 없었고, 급 실망한 우리는 간단한 점심 후 짐을 찾아 일찌감치 공항으로 옮겼다. 이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ㅎㅎㅎ
이번 여행은 우리 두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함께 뭔가를 탐험하며 온전히 몰입하는 기쁨을 오랜만에 한껏 누렸다. 로마와 파리는 여행지 자체의 매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문헌으로만 접하던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건축물과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실감나게 확인했다. 한국에서의 온갖 걱정 근심은 날려버리고 온전히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대화하고 설계하는 그 순간들도 참으로 행복했다.
바로 이것이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 선물하는 기쁨이고 유익이고 또한 행복이며
또한 우리 부부가 늘 흔쾌히 여행을 떠나는 이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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