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블로그에서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했으나 이는 과거의 습관에 의한 것으로, 가능한 "원주민"이라는 용어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은 이후로는 그렇게 실천하려 노력 중입니다. 다만 과거에 쓴 글의 본문 중에 종종 이런 표현이 고치지 못한채 남아있을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그랜드 캐년의 석양을 보고 나와서, 그날 밤에는 플래그스태프라는 동네에서 잤다. 그런데 여행을 준비할 때 동선을 잡으면서, 지도상에서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운석이 떨어져서 생긴 구덩이(크레이터)가 있는 것을 봤다. 이런 걸 직접 볼 기회가 흔치 않으므로, 좀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가보기로 했다.
근데 여기서 조금 부끄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이 길로 쭉 가다가 북쪽으로 꺾어서 나바호 자치구역 쪽으로 가는 89번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아래 사진) 구글 네비가 조금 더 지름길을 안내하면서 "로드" 등급의 지방도로로 접어들게 되었다. 나는 지금 시차를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한 상황이어서, 도로의 등급이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도로로 바뀐 경우엔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했고, 잠시 후 뒤에서 하얀 차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바짝 따라오는 차를 보고, 처음엔 내가 너무 느리게 가니까 뒤에서 트럭이 붙는구나 싶어서 더 밟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좁은 길에서 속도를 더 내는 것은 위험하겠다 싶었고, 다음 순간, 아차! 저게 지금 경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총기 휴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경찰이 길에서 차를 세울 때 얼마나 피차 긴장하게 되는지를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뒤에서 세우기 전에 내가 먼저 자수(?)하는 게 낫다 싶어서, 비상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줄였다. 그 즉시 뒷차도 사이렌을 켜면서 나를 세웠다.
레인저 복장의 경찰(카운티 보안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우리는 짧은 영어로, 와우! 웁스! 하면서, "이 길 처음이라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경찰은 이거 렌터카냐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냐 등을 물어보다가 면허증을 가져가서 보고 오더니, 결국 "고 슬로우! 낫 페스트!"라는 귀한 말씀으로 권면하시며 훈방조치를 해주시었다. ㅋㅋㅋ 아마 발빠른 자수(?) 때문에 좋게 봐준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미국에서 살았던 분들께 이야기 했더니, 럭키한 케이스라며, 무서운 경찰에게 걸리면 아주 험한 꼴을 당한다고 알려주셨다.
이제 우리는 파월 호수(Lake Powell) 근처의 페이지(Page)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가까운 곳에 요즘 뜨는 관광지 "엔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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